사라지는 것들과 사라지지 않는 것들

비 내리는 신주쿠의 하루

by자크슈타인


비가 내린다. 아침부터 그치지 않는 비다.

도쿄의 하늘은 하루 종일 낮게 내려앉아 있었고, 빗소리는 좀처럼 멈출 생각이 없었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신주쿠의 골목을 걸었다.


출장을 와서 맞는 비는 조금 귀찮다.


젖은 우산을 접었다 폈다 해야 하고, 택시를 잡는 일도 번거롭고, 구두 끝은 어느새 축축해진다. 일정을 소화하며 오갈 때면 날이 맑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데 기온이나마 상당히 내려가서일까. 눅눅한 습기는 어쩔 수 없지만 이상하게도 어제의 비는 그리 싫지 않았다. 비에 젖은 아스팔트 위로 흐릿하게 번지는 네온과 간판들, 투명한 비닐우산 너머로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 맑은 날이면 그냥 지나쳐버릴 풍경들이 비 오는 날에는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출장이라는 단어는 아무래도 무미 건조하다. 명함과 악수로 이루어지는 시간들. 그러나 그런 건조한 일정의 틈새로, 흐르는 비는 자꾸만 내 마음에 스며들어 왔다.


- 튀김옷 속에 담긴 백 년, 츠나하치(つな八)

점심으로 찾아간 곳은 1924년에 문을 연 튀김집, 츠나하치 총본점이었다. 백 년이 넘은 집. 그러나 내가 도착한 곳은 원래의 그 자리가 아니었다.



있어야 할 자리에는 주소이전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오랜 세월을 버틴 목조 건물이 재건축으로 문을 닫고, 가게는 걸어서 일 분 거리의 새 건물로 잠시 옮겨가 있었다. 그곳을 안내해 준 같이 간 형님께서 웹에서 찾아 원래 있던 옛 건물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목조 건물 특유의 느낌과 그 세월이, 사진 속의 이미지인데도 만져질 것만 같았다. 가게는 2028년 여름에 그 자리에서 다시 재개장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새롭게 오픈하는 그곳은 같은 자리에 같은 이름이지만, 결코 사진 속의 그 가게는 아닐 것이다.


오랜 세월을 버텨온 어떤 것이 눈앞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왠지 모르게 서글프다. 건물은 헐리고 가게는 말끔하게 단장해 새로 들어설 게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기름 냄새는 그대로일 것이다. 올해 5월까지는 원래의 자리에서 영업을 했었다 하니, 삼대에 걸쳐 이 집을 드나든 단골들의 기억 속에서 그 목조 건물은 여전히 기억되고 있을 터.


자리에 앉았다. 흰 조리복에 넥타이를 단정히 매고, 모자를 쓴 셰프들이 말없이 튀김을 튀기고 있었다. 왠지 정갈하고 기품이 있어 보였다. 넥타이를 매고 튀김을 튀긴다는 것. 그것은 기름에 튀김옷을 입히는 작업 앞에서 기름의 온도, 반죽의 상태, 재료에 따라 넣어야 할 시간을 달리하며 흐트러지지 않겠다는, 백 년 간의 약속 같은 느낌. ‘장인정신’이라고 부르는 그것이었다.



우리는 흔히 ‘일본에는 장인정신이 있어’라고 말하며 몇 대에 걸쳐 가업이 승계되어 내려오고, 백 년 이백 년을 넘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노포들이 많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일본의 모습을 존경하고 이를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얘기들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순서가 뒤바뀌었다고 해야 할까.


‘기리스테고멘(切捨御免)’. 혹은 ‘부레이우치(無礼討ち)’


오래된 막부정권의 역사 속에서 일반 서민들은 알 수 없는 실수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언제든 무사들의 칼날 아래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물론 무사가 그에 대한 정당한 이유와 상황을 입증해야 했고 절차와 바카라임이 뒤따랐다. 명백한 무례가 있었음을 사후에 입증해야 했고, 조사에서 그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무사가 할복이나 가문이 단절되는 처벌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칼을 차고 다닐 수 있는 법적 특권을 독점한 신분슬롯에서 평민과 무사 사이에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권력의 격차가 존재했다.


평민들은 자신의 직업을 마음대로 선택하거나 떠날 수도 없었다. 목수는 건축을 위해, 요리사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안정적으로 슬롯에 자신의 역할을 공급해야 했기 때문에 마음대로 직업을 바꿀 수 없고 대대로 그 일만 해야 했다.


특히 마지막 막부정권인 도쿠가와 체제는 슬롯적·직업적·지리적 이동성을 더 정교하게 최소화하도록 설계되어 신분과 직역의 이동을 의도적으로 억제했다. 무사 신분은 세습적이었고 무사·농민·장인·상인의 역할을 각각 슬롯적 기능으로 규정했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후 신분의 상승과 이동을 전국시대와 같은 혼란의 원인으로 보고 이를 억제하려는 정바카라적 흐름이 강하게 작동한 것이다. 고용관계를 옮기거나 이전하는 데 있어 약간의 자유는 있었지만 가문·신분·직역의 연속성을 중시하고 이동을 억제하는 슬롯적·제도적 압력이 매우 강했기 때문에, 그 결과로 같은 업이 대체로 가족과 집단 안에서 대를 이어 장기간 계승되었다.


여기에 개인보다 집안의 지속을 중시하는 가족제도도 중요하게 작용해, 가업을 이어갈 친아들이 없으면 양자를 들여서라도 상호와 기술을 존속시키는 관행이 합쳐졌다. 유전적인 혈통보다는 가문을 중시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 집안과 업종 길드와 같은 공동체가 같은 일을 오랫동안 이어가는 구조 속에서 업에 대한 전문성이 누적되며 자연스럽게 축적되었고, 열심히 해서 그 분야에서 인정받는 것만이 자신이 오롯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한 사람이 평생 같은 일을 하고, 그 기술이 다음 세대로 건너가고, 다시 그다음 세대가 그것을 다듬었다.


따라서 일본의 장인정신은 단순히 일본인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진 특성이나 미덕이라기보다, 신분제와 가업승계, 도제제도, 도시경제, 그리고 ‘이에(家)’라는 가족제도가 오랜 시간 만들어낸 역사적 결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처음부터 장인정신이 있어서 백 년을 이어온 것이 아니라, 백 년 동안 같은 일을 이어가야 했던 어쩔 수 없는 슬롯적 환경 속에서 장인정신이 만들어지고, 이후 그것이 다시 하나의 문화적 가치가 되어 다음 세대를 붙잡았던 것은 아닐까. 한 사람이 평생 하나의 일을 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리 슬롯가 만들어낸 운명이었고, 그 운명이 여러 세대를 지나면서 어느 순간 자부심과 전통으로 바뀌어 간 것일 테다.



기름 냄새가 피어오르고, 새우가 황금색 옷을 입고 접시 위에 놓였다. 청백의 문양이 그려진 접시, 그리고 바삭한 소리. 전 날의 숙취로 몸이 힘든 상태지만 젓가락에 계속 손이 갔다. 에라 모르겠다. 에비스 맥주도 한 모금 마신다. 창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튀김은 바삭하며 따뜻했다. 이 느낌을 즐기며 잠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사이에 점심시간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 한국인의 꼬치 맛집, 하카타 조-몬(ジョウモン)

오후의 일정을 마치고, 도쿄에 머무르고 있는 후배를 잠시 만났다. 신주쿠 3초메의 어느 건물 7층, 하카타식 꼬치집 조-몬. 좁은 계단을 오르면 숯불 연기가 자욱하게 오르고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마중 나온다.


예약을 하고 온 것도 아니고 이미 만석으로 자리가 없었지만, 밖에는 비가 계속 내리는지라 어떻게든 이 가게에 앉고 싶었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열리면 바로 보이는 대기실 같은 곳의 조금 불편한 테이블이지만, 여기도 괜찮겠냐는 직원의 물음에 얼른 예스로 화답했다.

직원이 어떤 메뉴를 고르겠냐며 샘플 모형을 보여 주는데, 나무 상자 가득 꽂힌 꼬치들이 각자 손글씨 팻말을 하나씩 달고 도열해 있었다. 상추말이, 가리비 베이컨, 닭날개. 삼겹살로 돌돌 만 상추의 단면이 초록 소용돌이를 이루며 예쁘게 보인다. 닭날개 꼬치를 뜯고 교자를 나눠 먹으며, 후배와 나는 지나간 일들을 얘기하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새로 들어오는 손님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문이 열리자 바로 앞에서 어정쩡한 구도로 술을 먹고 있는 우리를 본 손님들의 놀라는 눈빛을 보는 재미는 덤이었다. 이곳의 다른 지점이 한국인들 사이에서 유명해져서 네이버 등에 꼬치 맛집으로 알려졌는지, 들어오는 손님들 대다수가 우리나라 사람들이었다. 자리가 약간은 불편했지만 비 오는 날의 운치 있는 추억이 될 듯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비는 점점 더 거세져 바지와 신발이 다 젖었다. 젖은 보도블록은 군데군데 물웅덩이를 이루고, 가로등 빛은 반사되어 이를 되비추고 있었다.

백 년 된 튀김집은 잠시 제 집을 잃었으나, 여전히 사람들을 줄 세우고 있었다. 어떤 것은 헐리고, 어떤 것은 견딘다. 그 속에서 우리들은 각자의 마음속에 어떤 것들을 남기고 떠날 것이다. 도시는 그렇게 사라지는 것과 버티는 것들을 한 골목 안에 나란히 세워두고, 그 위로 무심히 비를 뿌린다.


우산을 접으며 생각했다. 타지에서의 추억은 결국 맛이나 풍경보다, 실은 그날의 날씨로 더 깊게 기억되는 게 아닐까.


2028년 여름, 새로 지어진 츠나하치에 다시 앉게 된다면, 그날도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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