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끼만 먹는다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두 끼, 세끼 챙겨 먹던 오랜 습관을 버리고, 몸에 붙은 지방을 태워 없애겠다며 스스로를 다그치는 사람들. 나 역시 어지간한 사정이 있는 날 빼고는 거의 일일일식 중이다. 비우는 일에는 그토록 독한 세상인데, 난 채우는 일 하나가 어려워 계속 서성이고 있다.
하루 한 편의 글. 일일일문(一日一文).
글을 좋아하고, 바카라 냄새를 좋아하고, 읽는 재미와 쓰는 재미를 아직 잃어버리지 않은 세대라고 스스로 믿어 왔다. 그런 나에게조차 하루 한 번의 글쓰기가 왜 이렇게 버거워졌는지 모르겠다. 놀러 간 곳, 먹은 음식, 풍경 사진 몇 장에 짧은 단상을 붙이는 그런 글 말고. 어떤 생각이, 어떤 감상이 마음 한구석에서 일어나 이걸 글로 옮겨 봐야겠다 싶어지면, 이상하게도 그 순간 만사가 귀찮아진다.
다음에 쓰지, 뭐.
그 한마디로 몇 번의 계절을 흘려보내는 중이다. 세평이나 판매부수 같은 외형적 성과를 떠나서, 평소에 계속 지켜보던 바로 정말 매 순간 사색하며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는 사람들, 글을 사랑하는 작가들은 이렇게 말하더라. 아무 생각 말고 일단 무작정 쓰기 시작하라고. 글은 엉덩이로 쓰는 거라고.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게 정말, 말처럼 쉽지가 않다.
난 활자와 함께 살아온 사람이다. 스마트 기기 하나 없이, 바보상자라 불리던 텔레비전이 전부였던 어린 시절. 만화바카라과 소설바카라과 시집 속으로 빠져들어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밤들이 있었다. 바카라장을 넘기는 소리와 손끝에 배어들던 질감, 종이 냄새 같은 그런 것들.
그러다 짧은 영화를 누린 PC통신의 세상이 왔다가 다시 인터넷이 나오고, 활자가 아닌 이미지와 동영상의 시대가 왔다. 생각해 보면 난 그 시대마다 새로 출현한 매체와 플랫폼을 곧잘 따라 썼다.
이메일, 홈페이지, 블로그, 카페 같은 커뮤니티.. 기술 발전과 통신 인프라의 진화에 따라 도구는 쉼 없이 바뀌어 왔지만, 그러면서도 그 틀을 채우는 콘텐츠의 중심은 여전히 텍스트였고, 사고의 중심은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
곰곰 생각해 보니 글쓰기가 귀찮아지고, 생각을 외주화 하기 시작한 것은 아무래도 인공지능(AI)의 습격 이후가 맞겠다.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시대를 살아온 내 아이들에게 유튜브와 틱톡은, 내가 읽던 만화바카라이나 소설바카라과 같은 자리에 놓인 매체다. 그런 아이들을 걱정하며 나는 늘 잔소리를 해 왔다. 바카라을 읽어야 한다, AI를 쓰더라도 네가 중심이 돼서 보조적으로만 써라.. 그렇게 훈수를 두던 나 자신이, 어느덧 이 괴이한 녀석의 포로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아이디어와 컨셉을 잡고, 필요한 정보를 퀄리티 있는 데이터로 넣어 주면 제안서 하나가 깔끔하게 만들어져 나온다. 과거 SI 및 웹에이전시 사업을 하던 시절, 고객사의 RFP를 분석하고 과업 분야별로 필요한 업체와 솔루션을 소싱하고, 시장조사 및 관련자료를 찾고 만들고 하느라 고생 고생을 했더랬다. 폰트 하나, 이미지 하나를 매만지며 내용을 채우고 RFP와 비교하며 조견표를 만들어 검증하느라 지새우던 그 수많은 밤들.. 그 지난했던 시간들이 무색하게, 이제는 며칠 밤을 지새울 노동이 몇 번의 프롬프트로, 몇 분으로 압축된다.
편리하다. 분명히 편리하다. 그런데 그 편리함을 추구한 대가로, 나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생각할 줄 모르는 멍청이가 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 서서히 끓는 물속의 개구리처럼. 내 뇌의 주름이 차츰차츰 평탄하게 펴져 가는 느낌이랄까. 골짜기마다 고여 있던 생각들이, 매끈해진 표면 위를 미끄러져 그 순간만 지나면 어디론가 훌쩍 흘러가 버린다. 온전히 내 것으로 남지 못하고 그렇게 사라진다.
나야 슬롯에서 사람 구실하며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쳐도, 앞길이 창창한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비슷한 세대가 다 함께 겪는 변화이니, 우리와는 조금 다른 모습일지언정 그들의 삶도 그런대로 무난하게 이어질까. 아니면 스스로 사고할 줄 모르는 채 기계의 노예가 되어 버릴까. 그 기계를 통제하는 극소수의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면서도, 일하지 않고 놀아도 기본적인 생활은 영위되는, 그런 세상..? 뭔가 찜찜하다. 뭔가 암울하다.
어느 쪽이든 마음이 편치 않다. 걱정은 잔소리가 되고, 잔소리는 어느새 방향을 돌려 스스로에 대한 물음이 된다. 너는 지금, 온전한 네 생각으로 살고 있느냐고.
마지막으로 글쓰기에 불꽃을 태웠던 시기는 아마 작년, 재작년이었지 싶다.
하던 일에 대한 회의가 극심하게 몰려오던 때였다. 거래하던 대기업과의 트러블로 이런저런 사건 사고가 생기면서 회사가 휘청였고, 뭔가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고 싶은데 당장의 밥벌이는 해야 하는, 그 어정쩡한 스트레스 속에서 찾았던 탈출구가 바로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드는 것이었다.
새롭게 맞는 사춘기처럼 밤마다 감상이 많아졌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자다가도 일어나 폰을 열고 글을 써 내려갔다. 그렇게 쓴 글 중 2편으로는 노랫말로 다듬어 멜로디를 붙이고, 노래를 만들어 내가 직접 부른 싱글 음원도 세상에 내어 보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는, 힘들었지만 분명히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내가 가수가 된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고, 그것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리라 기대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 안에 아직 이런 마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일 뿐. 일과 바카라임과 생계 속에 파묻혀 있지만 나는 아직 살아 있다고 말이다.
그런 일탈(?)을 해 본 덕일까. 이제 다시 일에는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하던 일과 새로운 일 사이 어디쯤에서 마음 한켠이 자꾸 허하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쓰고 싶다는 욕망이 다시 조금씩 사그라져 가는 것 같아 슬프다.
한때는 가슴속에 차오르는 말이 너무 많아 잠들지 못했는데, 이제는 쓰려고 해도 귀차니즘의 무게에 다시 주저앉고 있다. 할 말이 없어진 것인지, 너무 많은 말을 삼켜버린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그저 우울하고, 서글프다.
'하고 싶은 것을 그때마다 마음 가는 대로 원 없이 다 하고 사는 삶'이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가.
그런 삶이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도 어렵지만, 그것을 오래도록 사랑하며 해 나가는 일은 더욱 어렵다. 그리고 사랑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자신과 가족의 삶을 지켜내는 일은 그보다 훨씬 더 어렵다.
그래서 오늘, 오랜만에 이 글을 쓰고 있다.
하루 한 끼로 몸을 비우는 사람들처럼, 나는 하루 한 편의 글로 머리와 마음을 비우고 또 채우고 싶다. AI가 대신 뽑아 주는 매끈한 문장이 아니라, 서툴러도 내 뇌의 주름진 골짜기를 지나온 문장으로. 매일이 어렵다면 사흘에 한 편, 일주일에 한 편이라도 꾸준히 말이다.
내게 남은 시간 동안 바라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 가는 대로 원 없이 하며 사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돈으로 그렇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그건 가능할지도 모르겠고 바람직하지도 않을 것이다.
AI가 아무리 좋은 답을 내놓더라도 스스로 질문하고 판단할 수 있기를,
세상이 정해놓은 길보다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길을 믿고 따라갈 수 있기를,
해야 하는 일에만 매달리느라 하고 싶은 일을 잃어버리지는 않기를..
이 작은 바람이 공허한 잔소리로 끝나지 않으려면,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주는 것.
먼저 내가 그렇게 살아 보이는 수밖에.
오늘의 일일일문(一日一文)은,
그렇게 겨우 한 술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