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M.케인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민음사
포스트 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이 제목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보지 않으셨나요?
바로 전 세계 영화계와 문학계에 거대한 충격을 안겨주었던 제임스 M.케인의 소설 이름인데요.
제목만 보면 마음씨 좋은 우편배달부가 주인공인 이야기 같지만 놀랍게도 이 바카라에는 집배원이 한명도 나오지 않는답니다.
그렇다면 작가는 대체 왜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요?
인생을 뒤흔드는 운명의 순간.
이야기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캘리포니아의 한적한 도로에 위치한 간이식당. 이곳에는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부부 '닉'과 '코라'가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돈 한 푼 없이 전국을 떠도는 젊고 거친 청년 '프랭크'가 이곳을 방문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프랭크는 배가 고팠지만 돈이 없었기에 적당히 말로 때워볼 참이었습니다. 마침 일손이 부족했던 식당 주인 닉은 프랭크에게 이곳에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한 곳에 묶여있는 건 딱 질색이었던 프랭크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닉의 아내 코라가 나타납니다. 그녀의 눈빛에는 권태로움이 가득했죠. 그녀에게 반한 프랭크는 흔쾌히 일을 하겠다고 말을 바꿉니다.
두 사람 사이에 불꽃이 튀는 건 시간문제였습니다. 닉이 시내로 외출했던 어느 날, 식당에는 둘만 남겨졌고 그날 이후로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됩니다.
두 사람은 함께 도망칠까도 생각을 했지만 식당이라는 안정적인 기반을 두고 떠날 수는 없었습니다. 사랑이 밥을 먹여주진 않으니까요.
결국 두 사람은 남편을 살해하기로 결심을 합니다. 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두 번째 시도를 감행합니다.
그들의 자작극이 발각 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뜻밖의 인물들의 탐욕으로 인해 간신히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죠.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은 남편이라는 걸림돌을 치워버리고 그토록 원하던 돈과 자유를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모든 장애물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두 사람 사이가 예전 같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단단한 결속 대신 서로를 향한 불신. 그들은 추악한 범죄를 저지른 공범인 동시에, 서로의 범행을 지켜본 목격자이기도 했던것이죠.
프랭크.
응?
그가 내일 집에 와. 무슨 뜻인지 알지?
알아.
당신 대신 그와 자야해.
그래야겠지. 그가 여기 왔을 때 우리가 사라져 버리지 않는다면 말이지.
다음에 내가 아는 건, 그녀와 함께 저 바닥에 있었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고, 서로를 품에 꼭 끌어안았고, 더가까이 가려고 잡아당겼다는 것이다.
그때 지옥문이 내게열렸을 수도 있었겠지만, 상관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로인해 교수형을 당한다 해도 나는 그녀를 가져야만 했다.
나는 그녀를 가졌다.
빌어먹을 놈의 신. 그러니까 우리도 그를 비웃고 있잖아, 안 그래? 그가 우리에게 붉은 정지 신호를 보냈지만우리가 지나쳤잖아. 그런 다음엔 뭐야? 막다른 골목에서빠져 나왔잖아? 정신없이 해치웠어.
깨끗하게 빠져나왔고 일을 한 대가로 1만 달러를 얻었지. 그러니 신이 우리의 이마에 키스했다고? 악마가 우리와 함께 침실로 가는 거야. 여봐, 당신과 날 믿고 악마는 아주 잘 자고 있어.
이 소설의 저자 제임스 M.케인은 신문사 기자 출신이었습니다. 이후 <뉴요커> 편집장을 거쳐 1931년 영화사의 시나리오 작가 제의를 받고 할리우드로 건너가게 되었죠. 기자 출신다운 군더더기 없는 문체에 할리우드 영화 감각까지 갖추게 된 그가 1934년 처음으로 발표한 바카라이 바로 이 소설이었습니다.
발표직후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동시에 보스턴에서는 외설 혐의로 재판에까지 넘겨지기도 했었다고 해요. 하지만 금지를 당하고 나니 오히려 더욱 유명해졌고, 그 이후 여러 작품을 선보이며 누아르 소설의 거장이 되었습니다.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것은 1927년 미국 전역을 떠들썩 하게 만들었던 실화였습니다. 유부녀가 정부와 공모해 남편을 살해한 사건이었는데요. 저자는 이 사건을 신문에서 접하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는 <이방인>을 쓸 때 이 소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날것의 범죄기사가 문학사에 남을 소설의 씨앗이 되고, 그렇게 탄생한 미국 범죄소설이 프랑스 실존주의 문학의 뿌리가 된 셈이니 문학의 세계는 참 예측할 수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남자의 아내를 훔치는 건 별일 아니지만, 차를 훔치는 건 절도죄야.
케인은 프랭크와 코라를 욕망에 솔직했던 보통의 인간으로 그립니다.
프랭크는 자유를 원했고 코라는 더 나은 삶을 원했습니다. 그 두 가지 욕망이 만나는 교차점에 닉이라는 장애물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게 바로 이 소설의 가장 불편한 지점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원하는 바를 이루겠다고 살인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 앞에 놓인 장애물을 치우고 싶은 충동,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보고 싶은 유혹, 원하는 것을 손에 넣고 싶은 욕망. 이런 감정자체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케인은 그 보편적인 욕망이 극단으로 치닫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일체의 도덕적 판단 없이 보여줍니다.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태양이 눈부셨기 때문에" 방아쇠를 당겼듯이, 프랭크도 자기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렇게 되었을 뿐인거죠. 인간의 가장 극단적인 행동이 사실은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마치 미끄러지듯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섬뜩하기도 했습니다.
우린 세상에 있는 그 어떤 두 사람보다 더 많은 걸 갖고 있었어. 그런 다음 무너져 내렸어.
소설을 끝까지 읽어도 우편배달부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음에도 이러한 제목을 지었던 이유는 영국과 아일랜드의 옛 관습 때문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우편배달부가 방문을 하면 벨을 두 번 울리거나, 문을 두 번 두드리는 전통이 있었다고 합니다. 처음 벨을 눌렀을때 반응이 없더라도 한번 더 벨을 울려서 수취인이 우편물을 놓치지 않게 한 것입니다.
케인은 그것이 주인공 프랭크의 운명에 딱 맞는 비유라고 느꼈습니다. 한 번은 운좋게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라 운명은 기어코 다시 문을 두드리고야 만다는 것이죠.
90년 전에 쓰인 소설이 지금까지도 강렬하게 읽히는 것은 이 바카라이 다루는 것이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질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욕망, 충동, 후회, 이런건 1934년이든 2026년이든 달라지지 않는 이야기니까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누가 누구 편이고,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여러 번 되짚어 읽어야 했다는 점이었습니다.
번역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특히 재판 관련된 장면에서 유독 흐름이 끊기는 느낌이었는데요. 그래도 스토리 자체가 속도감 있으니 혹시 읽다가 막히시더라도 포기하지 마시고 넘어가 보시길.
제 예측을 빗나갔던 프랭크와 코라의 운명. 그들의 마지막에는 어떤 벨이 울렸을지 꼭 한번 바카라으로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바카라 읽는 제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불륜의 끝은 철창엔딩
-제이의 한마디-
오늘도 한 권의 소설을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바카라은 혼자 읽을 때보다 함께 이야기할 때 더 오래 남는 것 같아요.
여러분은 이 작품을 어떻게 느끼셨나요?
짧은 감상이나 마음에 남는 장면도 좋습니다. 댓글로 편하게 이야기 나눠 주세요~
다음 작품도 놓치지 않고 함께 읽고 싶다면 온라인카지노를 팔로우해 주세요.
새 글이 올라올 때 바로 알려드릴게요♡
-바카라 읽는 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