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인사가 될 줄 알았더라면

김애란 <바깥은 여름> 문학동네

by바카라읽는제이

오늘은 제가 읽으면서 몇 번이나 눈물을 훔쳤던, 가슴 먹먹해지는 소설집 한 권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김애란 작가님의 단편집

<바깥은 여름>입니다.


언젠가 제 이웃님이 김애란 작가님을 참 좋아한다고 하셨는데요. 저 역시 이분의 바카라을 읽을 때마다 마음속 깊은 곳이 일렁이곤 합니다.




남겨진 이들의 계절

이 소설집에는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요. 그중에서 유독 눈물이 멈추지 않았던 건 첫 번째 이야기 <입동>입니다.


자정이 넘은 시간, 두 부부의 대화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남편이 이제 그만 잠자리에 들까 하고 고민을 하고 있는 찰나 아내가 불쑥 말을 꺼냅니다. 도배를 하자고.


지금?

응.


복분자액이 튀어서 시뻘건 얼룩이 번져있는 벽, 올리브색 벽지 위에 번져있는 그 붉은 자국을 아내는 가리고 싶었습니다.


베란다에 있던 벽지를 꺼내어 설명서를 읽으면서 아내에게 묻습니다.

"정말 지금 할거지?"


부부에게는 영우라는 귀여운 아들이 있습니다. 십년의 전세살이를 끝내고 얼마전 아파트로 이사를 와서 처음으로 아이 방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서투른 젓가락질을 배우고, 때로는 말썽을 부렸습니다. 세 개의 칫솔, 건조대에 널려있는 각기 다른 크기의 양말, 앙증맞은 유아용 변기커버. 그런 시시하고 소소한 것들이 쌓여서 그들의 계절이 되고 인생이 되어갔죠.


작년 봄, 영우는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치여 숨을 거두었습니다. 봄이란 걸 채 다섯 번도 보지 못한 채로 하늘의 별이 되고 말았죠.


어느 날 영우가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소포 하나가 도착합니다. 복분자 액이었습니다. 실수로 보낸 건지 의도한 건지. 벽에 번졌던 그 시뻘건 얼룩의 정체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 얼룩을 덮으려고, 그 기억을 덮으려고 부부는 도배를 합니다. 이 집에서 다시 살기 위해. 다시 살아보기 위해.


세 번째 벽지를 바르기 위해 수납함을 치우고 물걸레 질을 하던 아내가 갑자기 꼼짝을 하지 않습니다.


아내가 마주한 것은 벽에 남아있던 아이의 낙서. 자기 이름을 삐뚤게 써두었던 영우의 흔적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정말 크는 게 아까울 정도로 빨리 자랐다.
그리고 그런 걸 마주한 때라야 비로소 나는 계절이 하는 일과 시간이 맡은 몫을 알 수 있었다.
지난봄, 우리는 영우를 잃었다.
영우는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치여 그 자리서 숨졌다.
오십이 개월. 봄이랄까 여름이란 걸, 가을 또는 겨울이란 걸 다섯 번도 채 보지 못하고였다.
가끔은 열불이 날 만큼 말을 안 듣고 말썽을 피웠지만 딱 그 또래만큼 그랬던, 그런 건 어디서 배웠는지 제 부모를 안을 때 고사리 같은 손으로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던, 이제 다시는 안아볼 수도, 만져볼 수도 없는 아이였다. 무슨 수를 쓴들 두 번 다시 야단칠 수도, 먹일 수도, 재울 수도, 달랠 수도, 입 맞출 수도 없는 아이였다.
화장터에서 영우를 보내며 아내는 ‘잘 가’라 않고 ‘잘 자’라 했다.
여기 이사 오고 참 좋았는데. 당신도 그랬어?
어.
우리가 살아본 데 중에 제일 좋았잖아. 그렇지?
그랬다. 잠이 안 올 정도로 좋았다.
어딘가 가까스로 도착한 느낌. 중심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원 바깥으로 튕겨진 것도 아니라는 거대한 안도가 밀려왔었다.
우리 분수에 이 정도면 멀리 온 거라고. 욕심부리지 말고 감사하며 살자고 다짐한 게 엊그제 같은데. 영우가 떠난 뒤 갑자기 어마어마하게 조용해진 이 집에서 아내와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은 도배지를 들고 있자니 결국 그렇게 도착한 곳이 ‘여기였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타인의 삶에 건네는 김애란식의 인사

김애란 작가님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숨은 그늘을 누구보다 섬세하고 정직한 시선으로 포착해 내는 분입니다. 특유의 절제된 문채 덕분에 슬픔이 과장되지 않고 오히려 더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작가님의 또 다른 소설집인 <안녕이라 그랬어>를 감명 깊게 읽으셨던 분이라면 아마 이 작품도 깊이 공감을 하실 것 같은데요.


<바깥은 여름>도 제목에서부터 그 의미를 곱씹게 합니다.


세상은 온통 눈부시고 활기찬 '여름'을 보내고 있는데, 왜 소설 속 주인공들의 시간은 여전히 차가운 '겨울'에 멈춰 서 있는 걸까요?




상실을 쓰다

두 사람만 쓰던, 두 사람이 만든 유행어, 맞장구의 패턴, 침대 속 밀담과 험담, 언제까지 계속될 것 같던 잔소리, 농담과 다독임이 온종일 집안을 떠다녔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 바카라에 실린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그 시기를 전후해서 쓰인 이야기라고 합니다.


직접 소설 안에서 세월호를 호명하지는 않지만 제자를 구하다가 목숨을 잃은 선생님의 아내 이야기가 나오는 이 소설은 읽는 내내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김애란 작가님은 그 시기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은 이런저런 사건들로 여전히 상중(喪中)이다. "


그러니까 이 소설집은 안과 밖의 차이를 온몸으로 느끼던 시기에, 그 시간을 비켜가지 않고 천천히 걸어 나갔던 한 작가의 기록이었습니다.




홀로 겨울을 견디는 이들에게

휴대전화 속 부고를 떠올리며 문득 유리 볼 속 겨울을 생각했다. 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이 바카라에 담긴 일곱 편의 소설에는 상실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고통을 겪은 누군가에게 "시간이 약이다" , 혹은 "이제 그만 털어낼 때도 됐다"라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당사자에게 상실이라는 건 벽지 뒤의 얼룩처럼 가린다고 해서 쉽게 가려지는 것도, 잊으라고 해서 쉽게 잊히는 것도 아니겠죠.


어쩌면 우리는 따뜻한 여름 속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타인의 겨울을 방관하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요?


아픔을 쉽게 위로하려 들기보다,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묵묵히 옆에서 기다려 주는 것도 진심의 위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푸른빛의 시원해 보이는 표지 안에 담긴 차가운 겨울. 바카라장을 덮고 나면 바깥의 여름이 다르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바카라 읽는 제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제이의 한마디-



오늘도 한 권의 소설을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바카라은 혼자 읽을 때보다 함께 이야기할 때 더 오래 남는 것 같아요.

여러분은 이 작품을 어떻게 느끼셨나요?

짧은 감상이나 마음에 남는 장면도 좋습니다. 댓글로 편하게 이야기 나눠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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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글이 올라올 때 바로 알려드릴게요♡

-바카라 읽는 제이-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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