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운곡 람사르 습지에서

인간이 간섭하지 않으면 자연은 스스로 회복한다

by루미상지
고창운곡람사르습지 생물들에게 "안녕"


고창 운곡람사르습지를 가는 길이다. 습지생태공원 주차장에 주차하고 운곡저수지 둘레길을 걷기 시작하는데 어디선가 달콤하고 향긋한 향기가 난다. 우리는 코를 킁킁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향기의 정체를 찾았다. 연보랏빛 오동나무 꽃과 하얀 찔레꽃이 시치미를 뚝 떼고 앉아 웃고 있다. 누구의 향기일까?


단비는 벌써 신났다.

“난 왠지 오동나무가 좋아. 이름도 예쁘잖아. 오~동”

넓은 운곡저수지의 맑은 물 위로 햇살이 부서져 내린다.

“저기 봐. 호수 위에 다이아몬드가 빛나고 있어.”

맑은 하늘, 신선한 공기, 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우리 기분은 출발부터 최고 좋음이다.

연두에서 초록으로 짙어가는 나뭇잎들이 밝은 햇살에 반짝이며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뻐꾸기와 꿩, 붉은 머리오목눈이(뱁새)는 즐거운 노랫소리로, 연보랏빛 오동나무는 은은한 색으로, 하얀 찔레꽃은 향기로 우리의 방문을 환영해 주고 있다. 나도 두 손 높이 올려 흔들어 주었다.

조용하던 운곡습지에 걸음 동무들의 수다 소리와 웃음소리가 잔잔하게 퍼진다. 습지 데크길에는 이 습지에 사는 생물들을 작은 모형으로 만들어 놓아 눈길을 붙들었다. 걸으며 만나는 곤충과 새, 양서류의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휴대폰을 들고 사진 찍느라 걸음이 자꾸만 늦어졌다.


이곳은 43년 전까지만 해도 주민들이 사는 마을과 논이었단다. 1980년 초 한빛원자력발전소(구 영광원자력발전소)의 물 공급을 위해 운곡저수지를 만들면서 9개 마을 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켰다. 사람들이 떠나고 농사를 짓지 않은 채 30년이 흐르자 자연스럽게 습지로 복원되었다. 습지에는 온갖 생물들이 살기 시작했고 어느새 830여 종으로 다양해졌다. 생태계의 보고가 된 운곡습지는 2011년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었고, 2013년에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선정되었다. 습지에 잠겨있는 나무들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서 있었다.

우리는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눈을 크게 뜨고 하늘을 바라보고, 나무와 나뭇잎을 살피며 말없이 습지를 관찰했다. 그때 갑자기 풀숲에서 괴상한 큰 소리가 들렸다.

“우아앙, 우아앙~~”

깜짝 놀라며 다시 들어보니 황소개구리울음소리다. 모습은 보이지 않고 커다란 울음소리만 들렸다. 황소개구리는 외래종으로 왕성한 먹이활동과 번식력으로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생물로 알려져 있는데 이곳 습지까지 왔다는 게 속상했다.

조금 더 들어가니 작고 순한 우리나라 참개구리 소리도 들렸다.

“고골 개갤, 고골 개갤~~”

개구리울음소리 사이로 여러 새소리도 들렸는데 새 이름을 잘 몰라 미안했다. 다행히 소란스럽게 지저귀는 붉은 머리오목눈이 뱁새 소리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찌집 찌집 째째 찌지지집~~”



우리는 또 다른 생물도 찾고자 오감을 열고, 귀를 쫑긋 세우고, 코를 벌름거리며 조용히 걸었다. 그때 옆에서 걷던 단비가 내 어깨를 톡톡 건드리며 손가락으로 나무 위를 가리키며 귀에 대고 속삭였다.

“다람쥐가 나무 위로 올라갔어.”

나무 위로 재빠르게 지나가는 걸 보고 도망가거나 숨어버릴까 봐 말 대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는데 아쉽게도 보지 못했다.

둠벙 앞 벤치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둠벙에 피어있는 노랑꽃창포를 보며 딸기와 참외를 먹었다. 어떤 아저씨가 이어폰을 낀 채 바쁘게 걸어갔다. 단비와 나는 눈빛을 교환하며 안타까워했다. 얼마나 바쁜 일이 있기에 눈부신 초록도, 아름다운 새소리 못 보고, 안 듣고, 이어폰을 낀 채 바쁘게 지나가는 걸까? 안타까웠다.

습지 중간에는 43년 전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도 만날 수 있었다. 허물어진 시멘트벽과 막대기 세 개로 막아놓은 대문 모습, 짙어가는 초록 잎들 사이로 연한 연두색 감나무 잎도 보였다. 중간중간 논에 물을 가두기 위해 막아놓은 논둑의 모습도 보이고 논 속에서 자라는 버드나무도 있었다.


생태둠벙을 지나 고인돌 박물관 쪽으로 내려오는데 나지막한 언덕에 청동기 시대 고인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게 보였다. 선사시대 무덤인 고인돌은 국가가 형성되기 전 이미 강력한 부족 집단이 이곳에 살았다는 흔적이기도 했다.

고창 고인돌 유적지는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평야와 인접한 구릉 지대에 움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어 살며 농업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고인돌이라는 거대한 무덤을 남긴 그들은 태양, 산, 강 등 모든 자연물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으며 자연을 신성시하고 숭배하며 살았다.

오랜 시간이 흐르며 지구는 개발되었고, 인류 문명은 발달되었다. 안타깝게도 인간의 삶이 편해질수록 자연환경은 빠른 속도로 파괴되었다. 결국, 많은 동물과 식물이 멸종되거나 사라졌고 이제는 인간까지 위협받게 되었다. 더 늦기 전에 다시 자연을 예전의 모습으로 돌려놓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인간이 떠난 고창운곡람사르습지는 30년 만에 스스로 복원되었다. 간섭만 하지 않아도 자정 된다.

3,000년 전에도 지금도 봄은 오고 삶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가 습지를 보존하고, 환경을 보호하고 잘 지키면 앞으로 더 찬란한 봄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람사르 습지: 생물 지리학적 특징이 있거나 희귀 동식물의 서식지로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어 ‘람사르 협약’에 의해 지정된 습지. 람사르는 이란의 한 도시 이름으로 이곳에서 습지를 보호하기 위한 람사르 협약이 체결되었다. 우리나라에는 한강 밤섬, 창녕 우포늪, 순천만 보성 갯벌 등 26곳(2024년 기준)이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어 있다.


* 5월 10일 고창 운곡 람사르습지 탐방

생태탐방안내소(친환경주차장)~안덕제~운곡서원~습지생태공원~조류관찰대~용계마을~생태둠벙~고인돌공원~고인돌박물관. 1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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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