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소원을 품고 있나요?’
공주를 위해 세 가지 소원을 빌었던 임금의 이야기 《너무너무 공주》. 임금은 공주를 너무너무 사랑했지만, 너무너무 평범하다는 까막까치의 말에 깊은 고민에 빠진다. 그러던 중 잉어에게서 소원을 이루어 준다는 수염 세 가닥을 받게 된다. 임금은 첫 번째 소원으로 ‘세상에서 가장 예쁜 공주’가 되라고, 두 번째 소원으로 ‘세상에서 가장 착한 공주’가 되라고 빈다. 소원을 빌 때마다 임금은 점점 늙고 야위어 갔고, 공주도 점점 생기를 잃어 갔다. 결국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임금은 마지막 남은 한 가닥의 수염에게 마지막 소원을 말한다. 그림바카라에 임금의 마지막 소원이 무엇이었는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공주는 처음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 순간 임금은 깨닫는다. 자신의 소원만 세 번 바뀌었을 뿐, 공주는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아이와 그림바카라을 읽고, 임금이 무슨 소원을 빌었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공주를 원래대로 해 달라고 빌었을 거라고 말했다. 아이의 말에 문득 임금이 ‘원래대로’ 바꾸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세상은 마음먹기에 달렸고, 믿는 대로 보인다는 말이 있다. 원효대사가 동굴의 어둠 속에서 마셨던 달콤한 물도, 해골물인 걸 알고 구역질을 했다는 깨달음 ‘일체유심조’. 살아가면서 가장 필요한 게 자신을 믿는 마음인 것은 알겠지만 그 믿음은 자주 흔들린다. 처음 무언가를 시작할 때 주변에서는 ‘할 수 있다’라고 응원해 주지만 그 마음만으로는 원하는 걸 얻을 수 없다. 글쓰기도 그랬다. ‘나는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열정으로 자신을 믿어야 계속 쓸 수 있다고 모두가 말했다. 그 응원의 말에 힘입어 열심히 쓰고, 또 썼다. 그렇게 기말 과제 제출 기간이 시작되기도 전에 과제를 전부 해치웠다. 하면 할 수 있구나, 쓰면 써지는구나 생각하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러나 한 달 만에 간 글쓰기 합평 모임에서의 반응은 ‘재미없다, 구성이 별로다, 캐릭터에 매력이 없다, 문체에 문학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등의 신랄한 평가였다. 세상은 역시 마음먹은 대로 될 리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내가 글을 써도 되는 사람인지 스스로를 의심했다. 그렇게 다시 자유롭게 떠다니는 풍선을 닮은 나를 마음대로 날아가지 못하도록 돌덩이에 묶어 두었다. 그러자 재미가 없어졌다. 안 그래도 재미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재미없는 사람인데 마음까지 재미가 없어져서 눈앞에 있는 현실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 생각의 깊이에 빠져드는 자신을 내버려 둘 수 없다는 마음에 우울의 무게를 글자로 만들어 꺼내 놓았다. 그러나 머리에 새겨진 그날의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늘 아이에게 말하면서, 정작 나는 배부름을 원했던 욕심을 부린 건 아닐까 생각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오랜만에 지인과 차를 마셨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는 물음에 바닥을 뚫어 저 아래 깊은 곳에 살고 있다고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렇게 말해 놓고 그곳에 있을 내 마음이 가여웠다. 갈 길이 너무나도 아득하기에 천천히 어둠에 익숙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오래도록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야 겨우 세상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사소하게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생각들을 새롭게 발견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고, 덕분에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이 조금씩 다르게 느껴졌다. 그렇게 머릿속 고민이 점점 복잡해지던 어느 날 밤, 내가 쓴 글이 꿈이 되어 나타났다. 꿈속에서 내가 쓴 이야기 속 아이와 뛰어놀았다. 나를 위로해 주던 그 아이를 위해서라도 더는 글쓰기를 이어가고자 하는 마음이 작아지지 않도록 소원을 빌어야겠다. ‘글쓰기를 처음 만났을 때, 그때의 마음을 돌려주세요.’라고.
+ 이야기 나눈 그림바카라
너무너무 공주 (2018)
허은미 글, 서현 그림, 만만한 바카라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