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될까?
“수키님은 나무네요. 큰 나무를 휘감고 올라가는 꽃나무요.”
독서 모임에서 명리학을 공부하는 분이 내게 해 준 말이다. 나무는 자신의 가지를 사방으로 뻗어 성장하는데, 그것이 호기심과 연결된다고 했다. 그 의미가 마음에 들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망설임이 없는 내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요,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마무리 짓는 게 잘 안 되네요.”
그의 말에 지금까지 내가 했던 수많은 시작과 끝이 떠올랐다. 일본어, 코딩, 요가, 그리고 기타. 이 중에 기타는 마흔이 되면 나만의 연주 앨범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포부가 대단했던 시작이었다. 망원동에서 온라인 게임 생활을 했을 때, 홍대 라이브 클럽 문화에 재미를 느꼈던 나는 직접 기타를 배워 보자고 생각했다. 기타는커녕 살면서 악기라고는 초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리코더와 단소가 전부였던 나는, 주변에 기타 배우기에 함께할 동료를 물색했다. 그리고 기타를 치던 친구와 함께 낙원상가로 기타를 사러 갔다. 직접 기타 줄을 튕기며 소리를 들었다. 마음에 드는 기타를 사고 ‘철수’라는 이름도 지어 주었다. 주말에는 기타 학원으로 기타를 배우러 가고, 평일에도 틈틈이 동호회 활동을 했다. 그러다 큰 걸림돌을 만났다. 바로 F 코드. 초보 연주자라면 누구나 어려워한다고 했다. 그 말을 핑계 삼아 조금은 버틸 수 있었지만 좀처럼 실력이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제풀에 지쳐 나의 기타 배우기는 흐지부지해졌다. 철수는 지금도 내 바카라상 옆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 내가, 다시 하고 싶은 게 생겼다. ‘글쓰기’였다. 보통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설레기 마련인데 전적이 있던 터라 망설여졌다. 나는 ‘왜 글쓰기가 하고 싶을까’에 대해 생각을 되짚어 보면서 신중히 선택하자고 마음먹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동네 바카라방에서 나의 삶을 주제로 동시와 동화를 쓰는 수업이었다. 첫 글쓰기의 당혹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누구도 아닌, 내 삶에 대한 기억으로 쓰는 글이었지만 어린 시절 경험했던 것을 글로 옮기기 쉽지 않았다. 도대체 글쓰기가 무엇이길래 내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을 글로 옮겨 적을 수 없는 건지 의아했다. 첫 글쓰기 수업 이후로 다시는 글을 쓸 일이 없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후로도 글쓰기의 유혹은 계속되었다. 평소 좋아하던 그림바카라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의 조던 스콧 작가를 강연회에서 만났을 때의 일이다.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그림바카라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던 작가에게 슬롯자는 글쓰기의 경험에 대해 질문했다. 그러자 그는 글쓰기를 통해 어렸을 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경험과 그 경험의 진실들이 언어와 하나가 되면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들으며 나의 언어가 되지 못해 홀연히 피어났다가 사라졌던 아쉬움의 순간들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의 경험을 글로 옮길 수 없었던 이유를 그제야 깨달았다. 나의 언어로 옮기는 경험이 필요했다.
나의 글쓰기는 하루하루 이어지고 있다. 그림바카라을 읽고 삶에 대한 에세이를 쓰고, 동화 쓰기 합평 모임을 하고, 모인 글로 작은 바카라을 만들었다. 그러다 제대로 글쓰기를 배우고 싶은 마음에 대학에 입학했다. 종종 글을 쓰다 쉴 때면 나무를 바라본다. 우리 집 앞에는 작은 목련나무가 있다. 나무는 건물 그림자에 가려져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했지만, 푸른 싹을 틔웠다. 갈색의 가지 끝에는 연한 초록의 새 가지도 자라났다. 꽃을 제대로 피우지 못한 나무를 안타까워하던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나무는 자기만의 방법으로 묵묵히 성장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닮고 싶다고 생각했다. 저 나무처럼 꽃을 피우지 못하더라도 계속해서 글쓰기를 이어나가면 좋겠다고.
+ 이야기 나눈 그림바카라
나는 정말 나무가 되었다(2026)
오하나 글, 홍시야 그림
쥬쥬베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