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소리

마음 조심하면서 지내고 있나요?

by수키

“모든 장소에서 울리는 시끄러운 소리를 감당하고 사랑하려는 사람이 있다. 그는 카페에서, 식당에서, 옆집에서 우는 소리를 듣는다. 나와 당신은 화가 난다. 화가 나서 툭하면 감상에 빠지는 그 버릇을 고쳐주고 싶다. 하지만 세계의 시끄러움을 견디리라 마음먹은 사람을, 이해할 것 없이 그냥 사랑하는 방법도 있다. 아주 나중에 당신이 그가 되어보는 방법도 있다.” (그냥 못 넘겼어요, 김상혁, 난다, <목소리> 부문, 49쪽)


우연히 펼쳐 든 바카라의 문장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모든 장소에서 울리는 시끄러운 소리를 감당하고 사랑하려는 사람’, ‘아주 나중에 당신이 그가 되어보는 방법’. 어쩌면 이것은 무언가와 연결되려는 강력한 연대의 마음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 대상은 사물일 수도, 사람일 수도, 세상일 수도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마음으로 동떨어져 있는 것들을 하나로 연결할 수 있다. 단, 그 마음이 다치지 않기를 조심하면서. 작은 소리를 내는 소라게의 힘겨운 하루를 담은 윤지 작가의 그림바카라 《마음 조심》에서 거북이는 친구들과 헤어지며 이렇게 말한다. “잘 지내. 특히 마음 조심해.” 그 인사는 작은 소리를 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응원이다. 사람에게 기대는 것이 구식으로 느껴지는 시대에서 나는 여전히 사람과 연결되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과의 연결에는 그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고, 그 마음이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서울장애인복지관의 시민옹호인 소모임에서 복지사, 활동가, 장애 당사자와 함께 올림픽공원으로 봄나들이를 갔다. 햇빛과 바람이 적당해서 야외 활동하기 딱 좋은 날이었다. 그녀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건 처음이었기에 그리 멀지 않은 곳임에도 설레고 긴장됐다. 그녀의 어머니와 잘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나누고, 그녀의 손을 잡고 지하철 승강장으로 향했다. 계단으로 향하는 나를 그녀가 붙잡았다. 엘리베이터를 타자고 했다. 설렘이 너무 앞선 걸까. 그제야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달라’고 말한 어머니의 당부가 떠올랐다. 그때부터 그녀의 소리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목적지로 향하는 동안 그녀는 다리가 불편해 보이는 어르신에게 자리를 양보하려고 일어났고, 휠체어를 이용하던 일행이 턱이 없는 길을 찾아 먼 길로 돌아갈 때 그 뒤를 조용히 따랐다. 나는 버스와 지하철에서 “죄송해요. 서 있기가 불편해서 좀 앉아 있을게요.”, “잠시만요, 지나갈게요!”, “기사님, 아직 안 내렸어요.”, “지금 하고 있어요. 기다려주세요.” 하고 소리를 냈다.


내가 ‘장애’에 관심을 두게 된 시작도 ‘소리’였다. 아이가 아직 내 손을 잡고 산바카라을 했던 시절, 아이는 가는 곳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나의 소리로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배울 때였다. 그날도 아이는 어딘가를 가리키며 “이게 뭐야?” 하고 물었다. 나는 아이의 손가락 끝을 따라 자연스럽게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아, 저건 걷기 불편한 사람들이 타는 휠체어라는 거야.” 하고 설명한 뒤, 그 자리를 떠나 여느 때와 다름없는 산바카라으로 마무리될 수 있는 하루였다. 그러나 그날 아이와 나눈 대화는 제법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정치부 기자로 일을 하다가 장애 아이를 낳고 제대로 배려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었다는 류승연은 저서 《배려의 말들》에서 ‘진정한 배려는 구조 내에서 내 위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래야 타인과 주변에 대한 이해의 폭이 깊어진다.’라고 말했다. 나 역시 작은 아이를 키우면서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건 바뀔 마음이 없는 사람들의 핑계다. 타고난 기질과 성향을 무시할 수 없지만, 상황에 맞춰 자신의 태도를 바꾸는 것으로 삶의 방향을 선택하는 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은 소리를 들으려 애쓴다. 나 또한 작은 소리를 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작은 소리를 내는 사람만이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있을 테니까. 작은 소리는 작은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작은 소리를 내는 사람은 안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작은 소리 사람들이 부디 포기하지 말기를. 더 나아가 용기 없이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이야기 나눈 그림바카라

마음 조심(2017)

윤지, 웅진주니어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