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얼마만큼의 거리가 필요한 걸까?
여느 때처럼 평화로운 밤이었다. 여느 때처럼 아이에게 바카라을 읽어 주다가, 하루 동안 꾹꾹 참아 두었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우리는 마주 보며 누웠다. 아이와 내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기에, 그렇게 마주 보고 있기만 해도 서로 장난을 치고 싶어 했다. 그때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광고 거나, 누군가의 짧은 메시지라고 생각하고 무시했다. 하지만 진동은 멈출 줄 몰랐다. 급한 일인가 싶어 휴대폰을 열었다. 9시 45분. 휴대폰 대기 화면에 ‘안녕하세요’라는 메시지 창이 떠 있었다. 학교 밴드의 채팅방이었다. 중요한 공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다시 이야기를 하자고 조르는 아이를 뒤로하고 서둘러 접속했다. 그렇게 입장한 사람들이 하나둘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계속해서 이어지는 인사에 그들을 따라 나도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누군가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처음 인사를 한 사람이 말했다. “봄밤이네요. 아직 춥지만 좋은 저녁 보내세요.” 봄의 설렘을 담은 인사말이었지만 나는 불쾌했다. 분명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인사말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알람이 울렸다. 누군가는 봄인데 아직 꽃내음이 나지 않아 아쉽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쑥내음으로 이행시를 짓고, 누군가는 시 한 편을 올렸다. 마치 밤의 대학 캠퍼스 같은 느낌이었다. 만약 사이버 공간이 아닌, 학교에 가서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공부를 했더라면,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이야기가 길어져 술을 마시다가 집에 가기가 아쉬워 잔디밭에 누워 까만 하늘을 바라보며 그렇게 봄을 느끼고 있었을 텐데. 하지만 어쩐지 나는 계속해서 불쾌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요, 밤이네요. 자려고 누웠는데 당신의 느닷없는 채팅 알람으로 편안했던 기분이 깨졌네요.’라고 생각했다. 그들과 함께 분위기에 취해 있기에는 너무 동떨어져 있는 공간이었다. 알람이 계속해서 울렸고, 곁에 있던 아이도 내 마음이 옮겨 갔는지 늦은 시간에 예의가 없다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늦은 밤입니다. 중요하지 않은 용건에 대한 이야기는 삼가 주세요.’라고 입력창에 텍스트를 써넣었지만 차마 보내지 못했다. 그렇게 보내려던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채팅방을 나왔다. 그런 나를 아이는 답답해했지만, ‘밤에 계절 안부를 묻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던 낭만을 느껴 본 적이 언제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공공장소가 되어 버린 단톡방에서 개인적인 안부를 묻는 건 금기시되는 행위다. 학교에 입학하고 여러 방에 초대되었다. 학과생이 모두 모여 있는 방, 봄학기 입학자를 위한 학업 코칭을 하는 방, 시를 읽는 방, 소설을 읽는 방, 그리고 선배에게 학업에 대해 궁금한 모든 것을 물어볼 수 있는 방까지. ‘방’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이 도란도란 모여 앉아 편안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이미지를 상상하게 하곤 한다. 서 있어도 되고, 앉아 있어도 되고, 편하게 누워 있어도 된다. 그런 편안한 자세에서 편안한 이야기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사람들이 문을 열고 한 방에 모였다는 것은 새롭게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한 설렘을 품게 한다. 하지만 사이버상의 방은 다르다. 들어가자마자 내가 익혀야 할 것은 그 방의 규칙들이다. 대화는 몇 시까지 가능한지, 어떤 대화만 가능한지, 어느 정도 해야 하는지, 물어보기 전에 미리 찾아봐야 하고, 사사로운 인사는 참아야 한다. 누군가가 바카라을 출간했고, 북토크를 하게 됐다고 소식을 전하면 ‘축하합니다’라는 말이 아닌 ‘하트’ 혹은 ‘표정’, ‘손가락’의 간단한 이모티콘으로 호응해야 한다. 긴 인사는 서로 간의 피로감을 유발하기 때문에 자제해야 한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누군가는 ‘웃는 얼굴’ 이모티콘이 비웃음이라고 느끼고, 누군가는 ‘엄지’ 이모티콘이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느끼기도 한다는 것을 기사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감정을 말로 해도 안 되고, 이모티콘으로 해도 안 되는 상황이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호모 사피엔스는 언어가 있었기 때문에 멸종을 면했고, 다정한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동물 연구를 통해 이야기하고, 우울감과 고립으로 사람들이 많이 아프다는데. 이제 막 말을 익히는 아이들에게 감정 카드를 내보이며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를 가르치는 시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정작 여러 상황에서 감정을 통제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런 감정은 사람이 아닌 에이아이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아, 나는 이제 옛날 사람이 되었나 보다. 이모티콘보다는 한마디 말이 더 좋고, 에이아이보다는 사람에게 말하는 게 좋으니. 늦은 밤 얼굴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방이라도 계절의 안부를 묻는 따뜻함이, 불쾌함을 느꼈던 내 마음을 부끄럽게 한다. 며칠이 지난 후 아이와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밤, 아이는 내게 ‘예의 없는 방’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방의 알람을 꺼 두었지만, 종종 그 사람들이 나누었던 늦은 밤의 봄 인사를 들여다본다. 불쑥 시작된 스스럼없는 그 대화가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잊고 살았던 청춘처럼 느껴지는 건, 나의 옛날도 그랬기 때문이겠지. 이런 내 마음을 이해할 리 없는 디지털 세대의 아이에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적당히 답했다.
+ 이야기 나눈 그림바카라
적당한 거리(2019)
전소영, 달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