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길을 선택했다

당신은 어떤 길을 선택하며 살아왔나요?

by수키

나는 그 길을 선택했다. 캐릭터 디자이너를 꿈꾸며 서울에서 학원에 다녔을 때, 같은 반에 일본어를 잘하는 한 친구가 있었다. 늘 일본어로 된 잡지를 보고, 일본어로 무언가를 끄적였다. 그 당시 내가 살던 집 앞에는 대형 서점이 하나 있었고, 학원을 마치고 집에 갈 때면 으레 그곳을 들러 일본 캐릭터 잡지를 보곤 했다. 일본어를 몰랐기에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다. 그저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캐릭터가 무엇인지, 그 캐릭터로 만들어진 다양한 상품은 무엇인지 사진을 보며 짐작할 뿐이었다. 무엇을 마음에 품든, 무엇이든 하던 시기였다. 언젠가는 그곳에서 살고 싶다고, 그렇게 일본에 대한 동경을 품었다. 그리고 이십 대 후반이 되었을 때, 지금이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말하던 아버지의 말을 듣고, 동경의 나라로 향했다. 그곳에서 K를 만났다. K는 자주 길을 잃는 사람이었다. 구글맵도 없었던 때라 다시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K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그저 K와 있는 시간이 좋아서 K를 재촉하지 않았다. K는 종종 뒤를 돌아보며 미안해했다. 분명 이 길이었는데, 괜찮아, 내가 길을 잘 못 찾아서 미안해, 괜찮아를 반복하는 대화마저도 그저 즐거웠던 시절. 우리는 그렇게 자주 길을 잃었고, 결국은 길을 찾았으며, 그렇게 각자의 길로 떠났다. 길을 잃는 것을 좋아하던, 잃은 길에서의 우연한 발견에 어린아이처럼 감탄할 줄 아는 감수성을 가진 K. 그때부터였다. 나도 우연히 만나게 된 길을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길을 선택했다. 일본에서 유학을 마칠 무렵, 대지진이 일어났다. 가족들은 나와 연락이 닿지 않아 대사관에 전화하며 애를 태웠다고 했다. 일본에 더 남고 싶었다. 그러나 대지진의 여파로 외국인의 취업이 녹록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여행을 다니고,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취미 생활을 즐기다가 돈이 다 떨어져 갈 때쯤 다시 취업을 준비했다. 부모님은 멀리 가지 말고, 자신들의 곁에서 같이 살자고 했다. 그러나 내가 있어야 할 곳은 그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다시 서울로 향했다. 서른 살의 신입 사원을 받아주는 회사는 많지 않았다. 편집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지만 나이가 많아서, 이제 곧 결혼할 수도 있어서, 결혼하고 나면 아이를 낳을 수도 있어서, 아이를 낳으면 육아로 회사를 그만둘 수도 있어서 등의 이유로 면접에서 퇴짜를 맞았다. 그러다가 일본과 중국 관광객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회사에 웹디자이너로 취직했다.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어디를 가든 지도를 보며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목적지를 향해 가는 모습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그가 선택한 길이라면 어떤 길이라도 믿고 따라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안정감이 좋아서 그렇게 나를 맡겼다.


나는 그 길을 선택했다. 아이를 낳고,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전향했다. 기존에 함께 일했던 편집자가 다른 회사로 이직했는데, 그곳에서 꾸준히 외주 작업이 들어왔다. 성인 바카라부터 어린이 그림바카라까지 출간하던 곳이었다. 그 무렵 임신을 했다. 예정일보다 빨랐던 출산으로 하던 일을 서둘러 마무리 지었다. 3개월 정도 쉬었을 때, 다시 일을 시작했다. 출산 소식을 접한 편집자는 선물로 아이와 함께 읽을 그림바카라을 한 상자 보내주었다. 덕분에 각종 기술서와 육아서, 만화바카라으로 채워져 있던 바카라장이 그림바카라으로 바뀌었다. 거실이 좁았던 탓에 소파가 없던 집에서 아이는 바카라장을 짚고 일어나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이 손에 잡힌 그림바카라들은 거실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바닥에는 유아 매트가 깔려 있었기 때문에, 그림바카라들은 통통통 몇 번 튕기다가 나동그라졌다. 그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아이는 자주 바카라장 앞에서 까르르 웃으며 놀았다. 그런 아이를 보다가 문득 어린 시절 바카라을 좋아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바카라을 좋아했지만 우리 집에는 바카라이 없었다. 하지만 어른이 된 나는 마음만 먹으면 읽고 싶은 바카라을 실컷 읽을 수 있었다. 당시에는 문해 교육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터라, 제대로 공부해 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들어갔고 잊고 살았던 그 길을 다시 마주했다. 그리고 그 길은 다시 여러 갈래로 뻗어 나와 쓰기의 삶으로 이어졌다.


하나의 길이 여러 갈래로 뻗어가고, 그 길이 새로운 길로 다시 뻗어 나가는 과정을 그린 그림바카라 《가지 않은 길》을 읽고, 내 삶의 숲에서 만났던 여러 길이 떠올랐다. 나는 새로 만난 길을 망설임 없이 들어가고, 그렇게 만난 길을 사랑했으며, 힘들 땐 누군가에게 그 길을 맡기며 살아왔다. 그리고 또다시 선택에 대한 고민을 품고 길 앞에 서 있다. 길은 무수히 많은 갈래로 뻗어져 있다. 끝을 알 수 없는 길 앞에서 한껏 설레다가도, 한편으로는 두렵고, 막막하다. 정해진 좌표가 없는 길을 계속 헤매고 다닐 수도, 대신 선택해 줄 사람도 없다.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어떤 길과 만나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해 본다. 그 선택으로 나는 또 얼마만큼 달라질까.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으며,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말한 시인의 말에 기대어, 나만의 삶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흔들리는 마음을 붙들고 용기를 내어 내가 갈 길을 선택한다.





+ 이야기 나눈 그림바카라

가지 않은 길(2026)

로버트 프로스트 글, 비비안 미네커 그림, 김난령 옮김

나무의말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