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로 예약할게."
몇 년 만인지 까마득해서, 마지막으로 영화관에서 본 영화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영화관 가는 걸 참 좋아했었다.
커다란 스크린과 어두운 조명, 영화가 시작되기 직전의 그 설레는 분위기.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 함께 본 사람과 영화와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들.
나는 그런 순간들이 참 좋았다.
그런데 어느샌가 극장과 점점 멀어졌다.
아이들 어렸을 때는 육아와 일에 치여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바빴고, 그러고 나서는 운동과 바카라 모임, 글쓰기에 시간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영화관에 가는 일은 뒤로 밀려났다.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은 여전했지만, 영화를 보러 가기 위해 시간을 따로 만든다는 것 자체가 점점 어려워졌던 것 같다.
그래도 이 영화만큼은 꼭 보고 싶었다.
좋아하는 영화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아끼는 작품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다. 앤디의 성장 스토리도 참 좋았지만, 무엇보다 에밀리의 말투와 표정, 그리고 에밀리 블런트만의 그 연기가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볼 때마다 새로운 장면이 눈에 들어와서, 열 번도 넘게 봤던 것 같다. 영어 공부할 때도 도움이 많이 되는 작품이라 학생들한테도 강력 추천하고 있다.
영화는 유독 취향을 많이 타는 분야인데, 안타깝게도 남편과 나는 영화 취향이 썩 잘 맞진 않는다. 나는 로맨틱 코미디나 심리 스릴러, 드라마 장르를 좋아하고, 남편은 좀비, SF, 액션 영화를 좋아한다. 교집합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연애 시절이나 신혼 때는 어떻게 그렇게 영화관 데이트를 자주 다녔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누군가 상대에게 맞춰 취향을 양보했던 걸까, 아니면 그 시절에는 뭘 보았어도 그저 함께 하는 게 좋았던 걸까.
그런 우리 둘의 아주 귀하고 소중한 교집합이 바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다.
무려 20년 만에 2편이 나온다니.
이건 무조건 봐야 했다.
외출 준비 중인 내게 남편이 물었다.
"지혜 결혼반지는 어디 있어?"
"왜?"
"오랜만에 끼고 나가자고."
남편과 둘이 시간을 보내긴 하지만 대부분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산바카라을 가거나 아주 가끔 한강을 뛰는 정도다.
오늘처럼 단둘이 밥을 먹고, 영화관까지 가는 건 실로 오랜만이다.
데이트다운 데이트는 몇 년만이라 남편은 반지를 끼고 가자고 했다.
그래,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반지까지 끼면 왠지 조금은 더 로맨틱할 것 같다.
화장대 깊숙한 곳에서 반지를 꺼내 손가락에 끼워보았다. 그렇게 매일 보던 내 손이 다르게 보였다.
푸석푸석하고 건조한 손등엔 생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한겨울에도 바르지 않던 핸드크림을 꺼내 듬뿍 얹었다.
훨씬 낫다.
그 모습을 보던 둘째가 "엄마 손이 예뻐졌네"라며 다정하게 말해준다.
야채와 과일을 하도 씻어댔더니 손도 금방 늙는다며, 이렇게 알뜰살뜰한 와이프 또 어디 있냐며, 남편한테 괜히 생색도 좀 냈다.
드디어 영화가 시작되었다.
남편의 로망 중 하나, 영화관에서는 무조건 캐러멜 팝콘을 먹어줘야 한단다.
방금 밥에 후식까지 먹고 왔건만, 기본 사이즈도 안 되고 꼭 라지 사이즈여야만 한단다.
뭐, 이 맛에 영화관 오는 거라는데 사야지.
1편보다 덜하다는 후기도 많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좋았다.
러닝타임 내내 웃었고, 감동적이었고, 살짝 울컥하기도 했다.
20년이라니, 영화 속 시간도 나의 시간도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르게 지나갔다.
미란다는 여전히, 아니 더 우아하고 고풍스러웠고, 앤디는 훨씬 노련해졌지만 특유의 환한 미소는 그대로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인 에밀리는 여전히 센스 있고 위트가 넘치며 사랑스러웠고, 나이젤은 정말 멋지게 세월을 지나온 사람처럼 보였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처음 봤을 때, 영화 내내 웃었던 기억이 난다.
20년 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를 보며 또 한 번 행복해졌다.
아이들이 자라 성인이 되면, 결국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끝까지 곁에 남아 있을 사람은 다시 남편이다.
그래서 요즘은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한다.
즐거웠던 기억과 추억을 많이 공유하는 부부로 나이 들어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