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의 귀환, 그리고 여전히 빛나는 그녀 (1)

“That's all."

by아름다움

내 기억이 맞다면, 영화관에서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2019년 개봉한 《마이펫의 이중생활 2》였다. 그러니까 무려 7년 만의 영화관 나들이인 셈이다.

그렇게 오랜만에 극장을 찾게 된 이유는 하나다. 영화를 좋아하던 시절, 가장 사랑했고, 10번도 넘게 봤던 영화의 후속 편이 20년 만에 돌아왔기 때문이다.



원작을 인생 영화로 꼽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인지, 후속 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는 공개 직후부터 호불호가 꽤 갈리고 있다. 기대와 반가움만큼이나 "원작에 비해 밍밍하다", "추억팔이 위주다"라는 반응들도 있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보는 내내 여러 번,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감탄했다. 무엇보다 무려 2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원작의 등장인물들이 여전히 '너무나 매력적'이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배우들뿐 아니라 감독, 스타일리스트 등 원작을 함께 만들었던 주요 스태프들까지 다시 의기투합해 2편에 참여했다는 사실도 인상적이었다.







"That's all."

Devil-Wears-Prada-1.jpg



원작에는 명대사가 정말 많지만, 내가 꼽은 1위는 바로 이 문장이다.

바로 앞에 서 있는 상대조차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고 낮은 톤에, 눈앞의 직원이 빨리 사라졌으면 하는 귀찮음까지 고스란히 묻어나는 한 마디.

"That's all."



단 세 단어로 미란다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가장 아이코닉한 장면 중 하나를 만들어냈다.

원작 속 미란다는 악마라 불릴 만큼 냉정하고 완벽주의적인 인물이다. 영화 속 수많은 씬(Scene)중 이 장면을 특별하게 만든 건 매릴 스트립(Meryl Streep)의 섬세한 연기였다. 보통 영화 속 권위 있는 인물은 큰 목소리나 강한 감정으로 상대를 압도하지만, 그녀는 반대로 감정을 덜어냈다. 처음 봤을 때는 그저 인상적인 대사였지만 영화를 보면 볼수록 이런 절제된 태도가 미란다의 차가움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



그리고 이번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에서도 매릴 스트립(미란다 역)은 놀라울 만큼 그대로였다. 물론 20년의 시간만큼 캐릭터도 시대도 상황도 변했다. 여전히 빈틈없고 차갑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이전보다 내면의 연약함이 조금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원작의 미란다가 '맵고 아린 맛 6단계'였다면 속편에서는 '3.5단계' 정도로 부드럽고 순해진 느낌이다.






이번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홍보를 위해 한국을 방문에 여러 매체에 출현한 그녀는 ‘우아하게 나이 든다’는 게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었다. 아름답고 기품 있는 외모와 스타일링은 물론, 그녀의 말투와 자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는 긴 시간 축적된 품격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었다.


image (1).png
image.png



러닝 머신을 달리다 보게 된 인터뷰에서 매릴 스트립이 상대를 대하는 방식에 매료되었다. 그녀는 상대 배우의 이야기를 찬찬히 듣고, 인터뷰어의 질문 하나하나에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중 앞에 서는 일이 익숙한 베테랑 배우인 그녀에게 자신의 생각과 이야기를 풀어내는 일은 어쩌면 어렵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언제나 그녀의 말을 듣고 싶어 하고 들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그러나 상대의 말을 끊지 않은 채 온전히 귀 기울이고, 시선과 몸짓으로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태도는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를 존중하고 있고,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품위에 가깝다.



미란다 이야기 만으로도 벌써 글이 길어졌다.


모두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세상에서, 내 이야기에 가만히 귀 기울여주는 누군가는 참 소중하다. 그녀의 인터뷰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훗날 지금 그녀처럼 70대가 되었을 때, 아이들과 손주들이 기쁜 일이나 힘든 일을 이야기하고 싶을 때 보고 싶은 할머니로 나이 들고 싶다.








[이미지 출처] Grazia, Cine 21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