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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업계 지식 제로, 흥미 제로, 패션감각은 심지어 마이너스였지만, 모든 여자들이 원하는 꿈의 온라인 게임, 최고의 패션 카지노 게임 '런웨이'에 기적처럼 입사하게 된 ‘앤드리아’(앤 해서웨이)'.
뚱뚱한 건 용납되지 않는 근무환경,
새벽이고 자정이고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휴대폰,
남자친구 생일도 챙기지 못할 만큼 계속되는 야근,
구내식당 메뉴인 크램차우더 수프를 먹는 건 죄악시되는 분위기,
오줌보가 터지기 직전이어도, 울리는 전화를 놓치면 끝장나는 현실,
하다 하다 미란다의 쌍둥이 딸들 방학 숙제까지 대신해야 하는 업무,
그렇게 그녀는 잡일 전문의 최하위 말단 비서가 되어버린다.
모두가 "A million girls would kill for this job.(모든 여자들이 이 자리를 원해.)"라고 말하지만, 정작 앤드리아의 하루는 끝없는 업무와 압박 속에서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이 모든 고난의 원흉, 악마 같은 보스 미란다. 앤드리아는 자신이 꿈꾸는 저널리스트가 되기 위해, 1년, 딱 1년만 버텨보기로 한다.
특유의 성실함으로 미란다의 인정을 받게 된 앤드리아는 마침내 '런웨이' 직원들의 꿈의 무대인 파리 컬렉션까지 동행하게 된다. 하지만 미란다의 무심하고 냉정한 태도에 크게 실망한 끝에 회사를 떠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에서 앤디(엔드리아의 애칭)는 그토록 꿈꿔왔던 저널리스트로 일하며 언론계에 영향을 끼치는 인물로 성장한다. 특집 기자상을 받던 순간, 예상치 못한 상황을 직면한다. 그리고 이 계기로 20년 만에 다시 '런웨이'의 신임 기획 에디터로 돌아온다. 이제 앤디는 미란다와도 대등하게 의견을 주고받을 만큼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프로가 되었다. 물론 여전히 감정에 솔직했고, 미란다의 인정과 칭찬을 갈구했지만 말이다.
패션 스타일 역시 한층 세련되게 변화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원작 속 앤디가 선보였던 분위기를 더 좋아한다. 처참한 패션 스타일로 미란다와 에밀리의 온갖 무시와 조롱을 당하던 앤디가, 나이젤의 손을 거쳐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등장하던 그 씬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샤넬 트위드 투피스에 니하이 부츠를 매치한 채, 환하게 웃던 앤디의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클래식한 룩인데도 신선했고, 앤 해서웨이 특유의 시원하고 환한 미국식 미소가 더해져 환상적이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내게 이토록 특별한 영화가 된 건, 에밀리 블런트가 연기한 에밀리 덕분이다. 에밀리의 대사, 표정, 제스처 하나하나를 기억할 만큼 그녀의 매력에 빠져 버렸다. 특히 에밀리 특유의 명료하고 선명하며 우아한 억양은 들어도 들어도 매력적이다. 그녀 덕분에 나의 영어 실력도 많이 늘었음을 인정해야겠다. 에밀리 블런트의 복귀가 이번 영화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 중 하나라는 기사를 보았다. 나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매력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역시나 후속 편에서도, 에밀리가 등장하는 장면들은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그중에서도 갑부 남자친구의 귓속 털 제모 같은 끔찍한 농담에 숨김없이 드러나는 그 투명한 표정 연기는 압권이었다. 거침없이 직설적이며,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미란다조차 기꺼이 배신하는 인물이지만, 그럼에도 그녀를 미워할 수 없다. 그녀는 우리 모두가 가진 모순적인 면들을 가장 유쾌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Am I having a hallucination?"을 외치며 등장하는 에밀리.
2편에서의 스타일링 역시 그녀답게 감각적이고 에지 있다. 자칫 과해 보일 수 있는 로고 플레이도 특유의 분위기로 정말 세련되게 풀어냈다. 그녀처럼 파란색 아이섀도를 잘 소화해 내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영화를 보러 갔다가 위로도 받고, 응원까지 받은 기분이다.
슬픈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눈물이 났다.
겉으로 화려하고 완벽해 보여도 누구나 마음속 고민과 역경, 저마다의 불행이 있다는 걸 깨달아서였을까. 타인을 부러워하며 살아왔던 내가, 지금의 내 모습을 좋아하고 너그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어서였을까.
20년이 흘러도 여전히 아름답고, 여전히 고군분투하며, 여전히 사랑하고 미워하는 그녀들을 보며 나의 20년이 뒤섞였다. 그 오랜 시간이 이렇게나 빠르게 지나갔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성장하고 성숙해진 미란다, 앤디, 에밀리 그리고 나이젤처럼, 밝고 맑고 흔들리고 연약했던 스물넷의 나는, 단단하고 평온하며, 조금은 우악스러운 방식으로 삶을 견디고 사랑하고 감사하는 어른이 되어 시간을 통과 중이다.
'나의 20년, 참 잘 버티고 살아왔다'
그리고 맛있는 아는 맛은 무섭다.
[이미지 출처] Screenrant, TheFilmExperi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