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 전단계
5월 15일 금요일
혈액검사 결과 '당뇨 전단계'
원장님은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 데다 정성스럽게 적어주셨다.
요즘 내 뇌는 못됐다. 세상에서 가장 악질적인 편집샵이다. 지나온 날들 중 반짝이고 쓸 만한 기억들은 죄다 창고 구석에 처박아두고 어디서 곰팡이 냄새나는 축축하고 불쾌한 기억들만 골라와 쇼윈도 제일 잘 보이는 자리에 디스플레이해 둔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그 조악한 컬렉션이 강제로 내 눈앞에 펼쳐진다.
"열심히 좀 살아봐."
나도 안다, 열심히 살면 좋다는 거. 국가대표 운동선수처럼 매일 땀 흘리고, 갓생 사는 사람처럼 미라클 모닝을 하며 생산적인 인간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내게도 분명히 있었다. 문제는 ‘열심히’라는 시동이 도통 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엔진은 이미 방전됐는데 뒤에서 자꾸 액셀을 밟으라고 등을 떠미니, 속에서 연기만 매캐하게 피어오를 뿐이다.
죽고 싶은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럴 용기도 없고, 무엇보다 억울해서 안 된다. 그렇다고 이 눅눅하고 미적지근한 일상을 온 힘을 다해 '살아내고' 싶지도 않다. 그냥 딱 중간 어디쯤, 이끼 낀 바위처럼 가만히 누워 세상이 흘러가는 걸 구경만 하고 싶다. 남들은 시속 100km로 질주하는 서킷에서 나 혼자 고장 난 3륜 자전거를 타고 페달만 헛밟고 있는 기분.
요즘은 좋은 날보다 구린 날이 훨씬 많다. 어쩌겠는가. 못된 뇌가 기억의 쓰레기통을 뒤져 안 좋은 날들을 늘어놓을 때마다 나는 그 앞에 서서 비웃어주기로 했다.
"그래, 참 부지런도 하다. 내일은 또 어떤 쓰레기를 골라올래?"
열심히 살아지지 않는 날에는 그냥 열심히 안 살면 된다. 눅눅하면 눅눅한 대로, 이 축축한 날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어차피 장마가 영원히 지속되는 법은 없으니까. 비록 내 방구석 냄새는 좀 구려지겠지만 말이다.
오늘 하루는 숨만 쉬어도 백점이다.
원시 시대에는 오늘 먹은 과일이 맛있었다는 좋은 기억보다 저 수풀에서 맹수가 튀어나왔다'는 위험한 기억을 절대 잊지 않는 것이 목숨을 부지하는 길이었을 테지.
지금 뇌가 안 좋은 날들을 자꾸 늘어놓는 것은 또 상처받으면 안 돼, 그러니까 이 위험을 꼭 기억하고 조심해!! 라며 과도하게 방어벽을 치고 있는 것과 같다.
몸을 통해 배우게 된 뇌의 이런 진화적 특성 때문에 좋은 기억을 의식적으로 더 자주 불러오고 붙잡아두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야 부정적인 기억들과 수평이 맞춰지니까.
내게 요즘 안 좋은 날들이 더 많다고 느끼게 만든,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가장 큰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설상가상, 며칠 전에는 자다 일어나다 팔이 꺾이는 충격을 받았다. 그 이후로 등 뒤 견갑골 주변에서는 무언가 걸리고 튕기는 듯한 불쾌한 진동이 멈추지 않았다. 치즈처럼 가늘게 늘어난 근육 섬유가 잔뜩 조여들며 통증을 뱉어냈고, 뒤이어 찾아온 두통은 온종일 머릿속을 유령처럼 배회했다.
소리 없는 고통은 늘 서글픈 법이다.
홀로 있을 때면 밀려오는 아픔에 눈물짓다가도, 막상 누군가의 앞에 서면 세상 가장 방긋한 얼굴로 웃어줄 수 있는 나. 울음과 웃음의 간극을 능숙하게 오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내가 걸어온 시간의 무게를 증명하는 것 같아, 나름의 베테랑이 된 나를 토닥여주고 싶어지는 밤이었다.
2년 전,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이 찾아올 때마다 한 달 남짓 진통제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나 약은 별다른 효험이 없었다. 이번에는 어떤 처치도 하지 않은 채 몸을 내버려 두었다.
약 한 알을 찾아 삼킬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은 무기력 때문이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더 이상 나를 돌보고 싶지 않다는 일종의 방치였다. 몸이 고스란히 받아내는 날것의 고통을 통과하며 슬픔이 대체 어디까지 깊어질 수 있는지 아득한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지극히 음전한 자해였다.
특정 방향으로 팔을 들어 올릴 수 없을 만큼 통증이 튀어 오를 때마다 속상했다. 그나마 손가락이나 팔 전체가 저리거나 힘이 빠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15분씩 얼음찜질을 얹어두었다. 여기에 붉은 혈뇨까지 육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검사 결과지에는 '++ 양성'. 이번에는 신경이 바짝 쓰였다.
요즘 내 일과는 거의 심플하다. 자고, 일어나서 조금 버티다가 '어라?' 싶으면 또 자는 것. 하루에 낮잠을 두세 번씩 자고 있으니 걱정이 된다. 갑상선 기능 항진증을 검색해 봤더니 빙고. 증상들이 몸을 복사 붙여 넣기 한 수준으로 들어맞는다. 문제는 검색을 하면 할수록 유저를 지치게 만드는 디버프가 있어서 몇 줄 읽지도 못하고 몰라! 하며 다시 이불속으로 도망치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제 또 어느 병원에 가서 내 유구한 통증의 역사를 읊어야 하나... 원장님이 지나가듯 한마디 하셨다. 그거 여기서도 하는데...
아, 띵해라. 병원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으면서 등잔 밑이 어둡다 못해 등잔 밑에 지하수가 터진 꼴이다. 멀리서 신대륙을 찾겠다고 뗏목을 묶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서 있는 곳이 이미 리조트였던 셈이다. 병이 문제가 아니라 내 능지(?)를 의심해 봐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ㅎㅎ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치료 초반 원장님의 그 고요한 평온이 내게는 소음이었던 날들이 있었다.
그 무렵의 나는 몸도 마음도 엉망이었다.
갑자기 왜 생각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행복한 H 병원 말고 이전에 의원에 다닐 때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분 나쁜 일들이 있었다. 병원 빌딩까지 어떤 남자가 쫓아와 치료 잘하냐고 묻기에 넉살 좋은 동네 주민인 줄 알고 대답까지 해주었는데, 알고 보니 생판 모르는 남자였다. 서울에서도 웬 미친놈이 뒤를 밟아 경찰에 신고한 적이 있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나 싶었다.
그런 시절에 원장님이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이 지구별은 안전하고 평온하다"는 말은 도무지 닿지 않는 외계어처럼 들렸다. 몸이 일제히 날을 세우고 살려달라며 비명을 지르던 시절, 힘들어 미치겠고 당장 죽을 것만 같은 폭풍 속에 홀로 서 있는 내게 '안전함'이라는 말은 글쎄, 그래서 속으로 몇 번이고 까칠한 송곳을 들이밀었다.
원장님은 안 아프시니까 저런 태평한 소리를 하시겠지.
원장님은 남자니까 이 호르몬의 소용돌이를 모르시잖아.
눈물겨운 격차를 확인하며 혼자 서러웠다. 지구별이 안전하고 평온한 건 내가 아니라 폭풍 바깥에 단단하게 발을 딛고 서 있는 그분뿐인 것만 같았다. 타인의 평온은 온기가 아니라 차가운 박탈감이자 외로움이었다.
그러던 지난 5월의 산들산들 봄바람이 불던 어느 날. 원장님과 대화를 나누다 느닷없이 내가 말했다.
"원장님,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만 나온다면 이 지구별은 행복하겠죠?"
내가 던진 유치하고도 무결한 질문에 원장님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셨다.
"그럴 일은 없습니다."
너무 단호해서 나는 까르르 웃었지만 마음이 덜컹했다. 진짜로 선순환이 이어지면 그런 무결한 세상이 언젠가는 올 수 있다고 믿었던 내가 너무 바보 같아서. 늘 평화를 외치던 분이 왜 그렇게 현실적인 벽을 치시는 걸까 의아했다.
차분히 가라앉은 원장님의 눈빛을 보며 그 말 뒤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를 헤아려보았을 때, 그것이 세상에 대한 저주가 아님을 알았다.
완벽한 무균실 같은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삶의 법칙.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별에는 갈등도, 의도치 않은 오해도, 아픈 시행착오도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만약 싸움도 없고 모든 좋은 의도가 백 퍼센트 좋은 결과로만 이어지는 세상이 있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세계가 아니라 잘 설계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상처를 주고받으며 상대를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잘못된 결과를 바로잡는 지리멸렬한 과정 속에서 성장이라는 것을 해내기 때문이다.
그제야 원장님이 말씀하셨던 "지구별은 안전하고 평온하다"는 말의 의미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아서 평온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참 무지했다. 내가 아플 때는 온 우주가 나를 축으로 불행하게 돌아간다고 믿었다. 내 견갑골의 통증이 자가발전할 때 세상의 모든 평화는 위선이 된다. 그래서 끊임없이 무균실을 갈구했다.
상처 주지 않는 사람.
아프지 않은 날.
나를 스토킹 하지 않는 안전한 빌딩.
당뇨 전단계가 없는 완벽한 혈액검사지.
하지만 그런 세상은 없다.
그리고 없어도 괜찮다.
어떤 풍파와 갈등이 몰아쳐도 이 지구별과 나라는 존재는 그것을 딛고 일어설 만큼 이미 안전하고 단단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산타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들은 더 이상 머리맡의 선물을 기다리지 않지만 이내 누군가의 산타가 되어줄 만큼 자라난다. 삶의 희망은 '그럴 일은 없다'는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지점에서 시작되는 듯하다.
아프지 않아서 안전한 게 아니다.
아파도 파스를 붙여가며 살아가기 때문에 안전한 것이다.
세상이 나를 향해 완전무결한 기지를 제공해 주길 바라는 조바심을 내려놓을 때, 내 몸의 통증도 세상의 소음도 내 삶을 구성하는 정당한 승객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지구별은 안전하다. 영원히 고통 속에서 허우적댈 것 같던 내가 이 무기력의 깨어나 내 부끄러움과 아픔을 고백할 만큼 살아남아 있기 때문이다.
통증을 분산시키려 억지로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려보지만 그럴수록 통증에 돋보기만 들이대질 뿐이다. 파스로 도배를 하니 살가죽이 화끈거려 동전파스를 다시 찾아 붙인다.
효과가 있든 없든, 적어도 여기서 더 악화되지는 않을 거라 믿으며 부적처럼 붙여두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동전파스를 붙인다.
치료받았으니 내일은 당당하게 떼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