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엑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다

멈춰 서서야 들리는 내 안의 작은 숨소리

by미리나


엄청난 격전이 벌어지는 중이다. 영혼의 양발 운전.

​나는 지금 엑셀과 브레이크를 있는 힘껏 동시에 밟고 있다. 차 바닥을 뚫고 도로 밑 저렴한 암반수라도 터뜨릴 기세로 오른발에 힘을 준다.

​"뭐라도 해, 글을 쓰든, 자기 계발서를 씹어 먹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생산적인 유기체가 되란 말이야."

​하지만 왼발은 브레이크 페달을 아주 짓밟아 박살 낼 기세로 짓눌러대고 있다.

​"지쳤잖아. 지금 가봤자 어차피 도로 위 고립이야. 일단 도망쳐."




​결과는 뻔하다. 단 1cm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타이어는 제자리에서 비명을 지르며 빙그르르 회전하고, 고무 탄 냄새와 자욱한 하얀 연기가 보닛 위로 피어오른다.

계기판의 연비 측정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경악스러운 숫자가 찍힌다.

연료는 바닥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꼬꾸라지는데 창밖 풍경은 단 한 픽셀도 움직이지 않는다.


참으로 비효율적이고 낭만이라곤 1도 없는 에너지의 대폭발이다.

​차라리 오른발을 떼든가, 왼발을 치우든가. 둘 중 하나만 하면 될 것을 기어코 양발을 다 올리고 꼿꼿이 서서나 자신에게 뻔뻔하게 중얼거린다.

​"나 오늘 진짜 최선을 다해 방전됐어."




​남들은 실제로 시속 120km로 한 판 달리고 들어와서 쉬는 쾌적한 피로를 느낄 때 나는 제자리에서 엔진만 가스레인지처럼 태워 먹으며 중노동급 피로를 느낀다.

무기력도 줄긴 했지만 거의 일용직 막노동 수준의 육체노동이다.
​깊은 진창 속에 덩그러니 서 있는 기분.

머릿속은 이미 과부하가 걸려 단어와 생각들이 믹서기에 들어간 과일처럼 엉키고 흩어져 어질어질하다.


​불안을 잠시 놓아보자. 잠시 모든 걸 내려놓는다고 해서 당장 지구가 멸망하거나 경찰이 출동하는 대참사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망하면 어쩌지' 하고 발작하는 마음도 잠시 옆에 치워두자. 엉켜버린 단어들과 흐려지는 생각들을 있는 그대로 엉망진창이 된 방처럼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다.


​온몸의 마디마디가 쑤시고 아려오지만 적어도 지금 나는 몸을 뉘일 수 있는 무너지지 않는 지붕 아래 있다.

이 안전함, 이 멈춤.
그래, 이게 행복이 아니면 도대체 뭐가 행복이란 말인가.




​다 잘 될 거야, 고통 끝에 낙이 올 거야... 같은 위로는 지금은 안 통한다.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고통은 깔끔하게 완료되는 숙제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나를 다독여야 하는 긴긴 여정이다.

​고통이 없는데 나를 스스로를 돌볼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태평하게 누워서 감이나 따 먹고 있겠지.


​고통은 안 끝나. 깔끔하게 안 끝나...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나를 돌봐야만 한다.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