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었는데 더 아프다 이게 맞나
통증 고객님
오늘 스케줄 없으세요
제발 퇴근하세요
2026년 4월 29일 수요일
다리와 꼬리뼈 통증은 여전히 불편하다. 잠결에 220V 전기가 흐른다. 찌릿, 하는 감각에 강제로 눈이 떠져서 수면 패턴이 누더기가 되었다.
증상: 꼬리뼈부터 다리까지 이어지는 전조 없는 통증
현황: 자다 깨기를 반복하며 느끼는 불쾌감
심경: 2주 전만 해도 '좀 피곤하네' 수준이었는데 몸이 내게 욕을 퍼붓는 기분이다.
주사 한 방이면 마법처럼 통증이 멎던 몸이 이번엔 제법 잘난 체하며 뜸을 들였다. "나 이런 걸로 쉽게 안 풀려"라며 팔짱을 끼고 버티는 통에 그동안 쌓아 올린 주사 치료에 대한 부심마저 민망해질 뻔했다. 며칠이 더 꼬박 지나서야 몸은 고장 난 엘리베이터가 뒤늦게 덜컹이며 내려오듯, "아까 그거 이제 좀 들은 것 같네"라며 선심 쓰듯 통증을 거둬갔다.
하지만 평화는 역시 비싼 몸이다. 일주일 전 구내포진이 지나간 자리에 이번엔 입술 옆 헤르페스가 자고 나니 새침하게 자리를 잡았다. 몸이 시키는 대로 쉬어주고 먹여주며 수발을 다 들었는데도 이러는 걸 보면, 쉬는 것조차 내 몸엔 노동이었나 보다.
입을 벌릴 때마다 쓰라린 통증이 스미지만 덕분에 천천히 씹어 먹는다. 평소라면 마시듯 넘겼을 밥알들을 정성스럽게 꼭꼭 씹어 먹는다. 고통 덕분에 여유가 생겼다.
오래 아픈 곳은 길을 기억한다.
처음에는 비포장도로였다. 비 오면 질척이고 바퀴 빠지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그런 길이었는데 통증이 자주 들락날락하니까 포장 공사를 해버린다. 거기에 자갈 깔고 아스팔트 붓고 톨게이트까지 세운다.
“여기 VIP 통증 고객님 자주 오시죠? 적립해 드립니다.”
통증은 상주 직원이다. 상처는 퇴사했는데 혼자 야근하면서 별일도 아닌데 자꾸 나를 부른다. 냄비가 끓는 것도 아닌데 뚜껑을 열어보게 하고, 휴대폰 진동이 온 것도 아닌데 몇 번이나 화면을 켜보게 만든다.
문제는 이 길이 너무 잘 뚫렸다는 데 있다. 예전에는 망치로 세게 두드려야 울리던 알람이 바람만 불어도 울고, 누가 옆집 초인종 눌러도 같이 반응하고 아무도 없는데 혼자 발작 버튼을 누른다. 회사에 이런 사람이 한 명 있으면 피곤하다.
내 몸 안에 있다는 게 더 피곤하다.
그래서 어떤 날은 “저 왔어요” 하고 출근 도장 찍는 게 귀여워 보이기도 해서 봐준다. 컨디션 안 좋은 날에는 진심으로 말해주고 싶다.
고속도로를 폭파하는 게 아니라 이용률을 낮추는 거다. 차를 덜 보내고, 거기로 안 가고, 일부러 길 막아놓고 “여기 공사 중입니다 우회하세요” 계속 공지 때리는 것. 오늘은 통증 출근길에 정체 좀 만들어주고 싶다.
그래도 기쁜 소식이 두 가지나 있다. 첫 번째는 가끔 집 근처 밥 먹거나 포장해 온 거 빼고는 드디어 11일 만에 산바카라이라는 걸 해봤다는 점이다. 운동도 하고 산바카라도 했는데 둘 다 하지 못해서 우울했었다. 스케일은 집 앞 엘리베이터 바로 앞 작은 마을(?) 코스지만 지금의 나에겐 거의 해외여행 급이다.
1층으로 내려가면 펼쳐지는 그 소박한 풍경... 20분 동안 관광객처럼 구경했다. 자주 하던 맨발 걷기도, 오늘은 나름 의식 있는 이벤트처럼 해봤다. 이렇게까지 소소한 일에 감격할 수 있다는 걸 몸소 자주 증명한다. 꽤 의미 있는 날이다. 체력은 10분 만에 바닥났지만 정신 승리는 확실히 챙겼다.
이 마음으로 병원도 가고 싶다. 정신적으로도 타격을 받으면 정말 가야 한다. 택시를 부른다 한들, 최소한의 에너지조차 바닥난 상태 병원을 가기 위해서는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고,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여는 여러 단계의 물리적 에너지가 필요하다.
극심한 무력감 상태에서는 이 과정이 마치 맨몸으로 에베레스트를 넘는 것과 같은 중노동으로 느껴져 버겁다.
무력감이 깊어지면 나를 돌볼 가치가 없다고 느낀적도 있다. 그런 상태에서 병원은 나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감당하기 힘든 '과제'가 된다.
몸의 신호를 알아차리고, 병원에 힘들 때 알아서 갈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고?? 지금 상황 보면 마치 비 올 때 우산 챙길 여유는 생겼다고 말해놓고, 폭우가 쏟아지는 날엔 우산 들 힘조차 없어서 그대로 맞고 서 있는 듯하다.
방에 굴러다니는 정체 모를 알약들은 어째서 듣지 않고 대상포진 약은 챙겨 먹었더니 바닥을 보였다. 문제는 지난번 받은 처방전의 유효기간이 30일까지라는 것이다. 원장님을 대면하면 "약 좀 더 주세요"라며 말해야 할 처치인데...조금 괜찮아진 것 같다.
기쁜 소식 두 번째는 대구에 내려온 지 어느덧 한 달. 그동안 주방은 냉장고 소음이나 만드는 장식품이었으나 드디어 요리를 했다. 메뉴는 소고기 뭇국.
비율은 잘 모르는 손길로 표고버섯과 무를 왕창 넣으니까 국물이 진하고 달큼해졌다. 내가 만들고 내가 감탄하며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내는 그 모습이란. 국물에 감동해 자아도취에 빠졌다.
약발은 오늘까지여도, 오늘 먹은 국물의 달큼함은 적어도 내일 아침까지는 나를 버텨 줄 것이다.
오늘은 통증 출근길에 다시 한번 공지한다.
"여기 공사 중입니다. 우회하세요."
이제 남은 일은 원장님께 "국물이 너무 맛있어서 병이 다 나은 것 같아요"라는 헛소리를 하지 않도록 입단속을 하며 병원으로 향하는 일뿐이다.
아프더라도 좀 쉬었다 아프던지 너무 힘들다. 글을 나눠서 쓴다. 정신줄을 잠깐 놓아버리면 진짜 다 놓아질 것 같다. 마음 단단히 먹고 싶다.
오늘 밤만은, 길게 늘어지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