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과 남는 것
4월 27일 월요일
결국 병원에 못 갔다. 가고 싶다는 간절함과는 별개로 몸은 자꾸만 수면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기절하듯 쏟아진 낮잠이 세 번이다. 의지와 상관없이 끊어지는 정신의 가닥을 붙잡을 도리가 없었다.
지금 내 몸이 내보내는 신호는 분명 평소와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피곤한 하루의 해프닝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사태다.
친구 둘에게 전화가 와서 걸었더니 목소리는 다행히 괜찮다는 답이 돌아온다. 10년 전, 뇌하수체 종양 진단을 받았을 때가 떠오른다. 나는 웃으며 덤덤했다.
그런 나를 기괴한 생명체 보듯 바라보던 의사의 눈빛.
"지금 웃음이 나와요? 당장 대학병원으로 가세요."
큰일 앞에서는 침착해지면서도 작은 가시 하나에는 온갖 엄살을 부리는 모순. 지금 내 상태가 딱 그렇다.
마땅히 요동쳐야 할 스트레스조차 느껴지지 않는 기괴한 정적.
이 고요함이 나를 가장 깊은 곳까지 침식해 들어온다.
몸 안의 시계는 벌써 고장이 났고 통증은 일말의 자비 없이 찾아왔다. 시야의 가장자리가 하얗게 번졌다.
'고통은 더 이상 느껴지는 것'이 아니었다. 나라는 존재 그 자체가 되어 의식의 마지막 보루마저 사정없이 짓씹고 있었다. 누군가 안구 뒷근육을 잡고 통째로 뽑아내려는 듯한 안압, 온몸의 뼈마디를 걸레 짜듯 비트는 아픔...이 반란의 끝에서 며칠 전부터 명치끝에 걸려 순간적으로 입 밖에 나온 사는 게 버겁다는 갈망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고요해서 위태로운 평온과 그 이면에서 들리는 비명.
나는 지금 나조차 감당하기 힘든 정적 속에 있다.
지금 내 상태는 글도 생각도 제멋대로 요동치지만 그냥 두고 본다. 나조차 나를 믿지 못하는 상태로 그저 존재할 뿐이다.
내 몸 안에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관리자가 있다. 남들은 자율신경계라는 고성능 AI가 체온이며 맥박을 알아서 굴려준다는데 내 관리자는 상시 졸음운전 중이거나 단체 연차라도 낸 모양이다.
눈에 보이는 외상이 없으니 누군가는 마음의 태도를 탓한다. 아침에는 기운이 다 빠져나간 몸처럼 비틀거리다가 오후에 로또라도 맞은 듯 멀쩡해지는 이 일관성 없는 증상들 앞에서 고립을 자처하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간다.
자고 일어나면, 내일이면 또 괜찮아지겠지. 막연한 믿음을 붙잡으며.
그리고 몸 안에는 두 가지의 신도 산다. 하나는 신경을 짓이기는 통증이고 다른 하나는 휩쓸고 간 자리에 찬란한 빛을 뿌리는 환희라는 신이다.
고통이 찾아왔다는 것은 기존의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새로운 파도가 밀려왔다는 뜻이다.
파도를 넘어서기 위해 내 안의 타인(낯선 감정)을 마주하게 되어 이전과는 다른 존재로 진화하게 된다.
그 변화의 감각은 무중력처럼 가볍고 낯설다.
그것은 무중력의 축제일까,
미물의 껍질을 벗어난 인간다운 아름다움일까.
원장님은 내게 말씀하셨다. 고통은 혼자 오지 않는다고.
나와 닮은, 아름다운 나의 쌍둥이들이다.
통증이 나를 집어삼킨다기엔 잘 버티고 있다. 이 정도면 거의 공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어서 썩 유쾌한 동거지만은 않지만 숨을 쉴 때마다 둔탁하게 어긋나는 기분이 든다. 한동안은 이 몸을 미워하는 데 꽤 진심이었다. 왜 이 모양이냐고 따지는 것도 나름 꾸준함이 필요한 일이더라.
고통을 원망하는 데도 체력이 필요하다. 그냥 두고 본다 어차피 쉽게 끝날 일도 아닌데 힘 빼고 싶진 않아서이다.
생각보다 사람은 그렇게까지 망가지진 않는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아직 여기 있는 걸 보면.
통증이 조금씩 빠져나가면 아름다운 색채로 다시 태어난다. 평범했던 공기가 비단결처럼 피부를 감싸고 몸은 중력을 잊은 채 허공으로 날아오를 듯 가벼워진다.
아프지 않다는 상태가 아니다. 깊게 파인 상처만큼 차오르는 압도적인 행복 고통의 깊이만큼 정비례해서 치솟는 황홀함이다.
오늘도 완전히 벗어나지 않고 멈췄다. 통증이 남아 있는 자리 근처에 머물렀다. 그곳이 가장 또렷하기 때문에.
통증은 요즘 매일 출근 도장을 찍는다. 해고하고 싶어서 별짓을 다 했는데 이제는 같은 사무실 쓰는 동료쯤 된다. 말은 안 걸지만 그렇다고 없는 척도 못 하는. 가끔은 커피 사다 주고 싶은 기분도 들다가, 바로 후회하는 그런 사이.
이게 다 지나가면 전부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사람들 다 그러잖아.
“그래도 그때가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지.” 같은 말.
듣기 좋고, 틀린 말도 아닌데, 막상 내 차례가 되면 입안에서 모래처럼 씹힌다.
"좋긴 뭐가 좋아. 흘러 흘러 살다 보니까 여기까지 온 거지."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한다. 별거 아닌데, 진짜 별거 아니라서 고맙다. 좋아서 사는 건지, 안 끝나서 사는 건지 헷갈리는 날도 완전히 싫지는 않다. 버티는 게 꼭 대단한 의지에서 나오는 건 아니다. 오늘도 끝까지 가버린 하루들이 쌓여서 여기까지 온 거라는 거.
그러니까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지금도 충분히 하고 있는 중이니까. 그리고 나 말고도 다들 그렇게 산다. 티를 안 낼 뿐이지.
고통은 내가 평생 알지 못했을 삶의 절정을 선물한다.
나를 바닥까지 끌어내려 짓밟은 뒤에야 가장 높은 곳으로 밀어 올려준다. 이 시간이 지나면 그에 상응하는 또 다른 시간이 올 것이다.
같은 농도의 천국이 안길 것을 알기에 견딘다.
고통과 환희는 서로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가능하게 한다.
그 사이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가끔은 이렇게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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