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가끔은 교회의 멸치 국수가 그립다

신앙을 볼모로 잡은 곳에 남겨진 투박한 다정함

by서이안

주일 아침이다. 교회 주차장에 차를 대고도 한참을 내리지 못한다. 예배당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고작 열 걸음 남짓이었지만, 그 열 걸음을 떼는 게 지독하게 무겁다.


결국 운전석 의자를 뒤로 젖히고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예배를 틀었다. 작은 화면 너머로 익숙한 찬양이 흘러나왔지만, 내 마음은 이미 그곳의 바깥으로 밀려난 지 오래였다. 차마 그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없었던 건, 예배당 안에서 오가는 시선들의 온도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거룩한 대예배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면, 그곳은 누구 집 아들이 취업을 했고 누가 돈을 벌었는지 저울질하는 세속의 한복판으로 변한다.


지금 교단에 서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학교라는 조직의 질서를 겪다 보니, 그때의 교회가 얼마나 비상식적이었는지 또렷해진다. 단돈 만원을 쓰기 위해서도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야 하는 학교 시스템의 잣대로 보면, 증빙도 절차도 없이 돈과 권력이 오가던 그곳은 기형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숨 막히는 공간을 단번에 끊어내지 못했던 이유는, ‘사람’이었다.


새벽 차량 운행을 마치고 손이 꽁꽁 얼어붙어 있던 어느 겨울 아침. 한 권사님이 안쓰러운 얼굴로 다가왔다. 일 그만둔다더니 왜 또 와 있냐는 물음에 나는 멋쩍게 웃기만 했다. 내 얼굴을 빤히 보던 권사님은 “아유, 또 끌려온 거구만.” 하며 혀를 찼다. 그러고는 내 손바닥에 구겨진 만 원짜리 한 장을 몰래 쥐여주셨다.

"이런 건 받아도 되니까 밥이나 사 먹어."

그날 아침 뚝배기에 담겨 나오던 해장국의 묵직한 온기를 나는 평생 잊지 못한다.


신은 번듯한 교역자실 소파에 앉아 있지 않았다. 영하의 날씨에 아무도 시키지 않은 앞마당의 눈을 묵묵히 쓸어내리던 어느 늙은 성도의 굽은 등 위로, 텅 빈 저녁 예배당에 홀로 남아 엇나간 음정으로 찬송을 부르던 한 할머니의 쉰 목소리 사이로 신은 임재했다.


주차장 차 안, 까맣게 꺼진 핸드폰 화면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도망치듯 이곳을 떠나온 나를 두고 하나님은 뭐라고 하실까. 그 목사님의 말처럼, 나를 마무리를 짓지 못한 무바카라임한 사람이라 바카라망하실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신은 그저 이 비좁은 차 안에 나와 함께 말없이 앉아 계실 것이다.


시간이 꽤 흘러 나는 완전히 그 세계의 이방인이 되었다. 하지만 일요일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지독한 향수병처럼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화려한 찬양팀의 음악도, 세련된 설교도 아니다. 식당 아주머니들이 양은그릇 넘치도록 퍼주시던 뜨거운 멸치 국수다.


일반 성도들은 2천 원짜리 식권을 내야 했지만, 명색이 사역자라는 이유로 내게는 늘 기꺼이 공짜로 주어지던 그 뽀얀 국물.

“많이 먹어, 간사님.”

그 말 한마디가,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나는 아직도 가끔, 그날의 멸치 국수 냄새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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