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의 축제와 고독의 부재
주일 아침 7시, 차량 운행을 시작으로 주일학교 교사, 성가대, 식당 봉사를 거쳐 늦은 밤 찬양팀 연습까지 마치고 나면 온몸은 파김치가 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피로슬롯’의 문법에 지쳐 안식을 찾아왔건만, 주말의 예배당은 세상보다 훨씬 더 촘촘한 노동의 현장이었다. 어느새 분주하게 성전을 뛰어다니는 피로감은 내가 구원받았음을 증명하는 훈장이 되었고, 현대판 면죄부라 불러도 좋을 ‘사역’은 우리의 일상을 잠식했다.
철학자 한병철이 진단한 이 시대의 비극은 외부의 억압이 아니라 “할 수 있다”는 거창한 긍정의 언어들에서 온다. 교회는 이 기형적인 긍정성이 거룩하게 번역된 성과슬롯였다. 우리는 타인의 강압이 아니라, 거룩한 비전을 좇는 주인이 되었다는 착각 속에 기꺼이 스스로를 착취했다.
생존의 벼랑 끝에서도 “우주적 가치를 좇아야 한다”는 목사님의 말에 길들여지며, 정작 내 작은 영혼 하나 건사하지 못한 채 텅 빈 껍데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슬롯 교사로서 교실의 아이들에게는 정당한 권리와 쉼을 가르치면서도, 정작 나는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자발적 착취의 굴레를 신앙이라 믿으며 견뎌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