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리곰.

by젤리곰


엄마에게서도 임신은 축복받지 못했다.

결혼도 일찍 해서 우리도 어린데, 아이까지는 너무 이르다는 것이었다.

신랑은 이제 막 30대에 접어들었고, 나는 20대 후반이었다.

나이보다 아직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상황이 더 걱정됐으리라 생각했다.

엄마의 부정적인 반응을 예상했음에도 막상 겪고 나니 생각보다 더 속이 쓰렸다.

엄마는 밥도 안 먹히는지 숟가락을 내려놓은 채, 나를 덫에 걸린 새끼처럼 안쓰럽게 바라봤다.


엄마의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고, 자신의 젊은 시절을 바쳐 홀로 두 아이를 키워냈다.

그 시절 자신의 나이와 비슷해진 딸을 보며 엄마의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가고, 그 생각의 끝에 딸이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기를 바라며 끝이 났을 거라 짐작했다.

성격도 생각도 정반대인 엄마와 내가 처음으로 같은 생각에 머물렀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쿵쿵쿵.

흑백의 초음파 화면을 보며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사람의 모습을 갖추기도 전, 1cm도 채 안 되는 작은 곳에서 들리는 생명의 두근거림.

나는 병원에서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듣고 나서야, 내 배속에서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집으로 돌아와 임신 초기증상을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며 내 증상과 비교했다.

"그게 임신 초기 증상이었나?"

산부인과를 찾기 일주일 전, 결혼 1주년으로 2박 3일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블로그에 떠있던 맛집을 찾았다.

한식을 좋아하는 우리에게 딱 맞는 곳이었다.

"더 이상 못 먹어."

"나도."

포만감을 느끼며 식당을 나온 그때 갑자기 크림파스타가 떠올랐다.

꾸덕한 파스타면을 돌돌 말아 입속에 넣었을 때 느껴지는 그 풍미와 느끼한 맛이 생각났다.

"나 크림파스타 먹고 싶어."

"지금 밥 먹고 나왔는데?"

"응. 너무 배부른데 생각나. 아주 꾸덕하고 느끼한 크림파스타가 먹고 싶어."

그날 이후 크림파스타를 먹고 있는데도 크림파스타가 먹고 싶었다.

"이 맛이 아니야."

"그럼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파는 크림파스타라도 사볼까? 무슨 맛을 찾는 건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도대체 그 크림파스타 맛을 어디서 먹어본 건지 기억이 안 나. 나도 내가 답답하다."

원하던 크림파스타를 먹어야 끝이날 것 같던 크림파스타 타령은 다행히 일주일 뒤 사라졌었다.

임신 초기 증상을 지나 임신 초기 주의사항으로 스크롤을 내렸다.

"임신 초기에는 운동도 하면 안 된다고? 나는 우도에서 자전거를 두 시간이나 탔는데."

불안함과 걱정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임신사실을 믿기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피임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음주도 했으며, 여행을 하며 몇 시간씩 걷고 자전거도 탔다.

'아이는 건강할까?'

나는 배 위에 손을 올려두고 아이가 건강하길 기도했다.


임신 후에도 친구들과 가지는 티타임은 계속되었다.

“젤리곰 보고 왔어?”

직설이가 알 수 없는 질문을 했다.

“젤리곰이 뭐야?”

“젤리곰처럼 생긴 초음파 사진.”

“그게 뭐야?”

"에휴. 너 병원에서 초음파 사진 안 찍었어?"

"찍었지."

“초음파 사진 좀 줘 봐.”

나는 휴대전화 속 저장된 초음파 사진을 건넸다.

직설이와 공감이는 저장된 초음파 사진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거다! 어떻게 너무 귀여워."

"작고 소중해.”

'평범한 사람들은 초음파 사진을 보고 저렇게 좋아하는 구나.'

초음파 사진을 보며 나보다 더 좋아하는 친구들이 이상하고 신기했다.

임신 초기 초음파사진이 올라온 카페 게시판에 축하한다고 달린 댓글들이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던 참이었다.

“이게, 젤리곰이야”

그동안 스쳐 지나가듯 보았던 초음파 사진을 자세히 들여봤다.

1.4cm 크기의 아주 작은 아기가 보였다.

'엄마의 모습을 찍을 수 있다면, 나도 젤리곰 모양이겠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거 받아.”

친구가 곰 모양 젤리를 건넸다.

축하를 받는 것이 고맙고 어색했다.

“입덧은?”

“없어.”

“다행이다. 입덧하면 진짜 힘들다던데.”

“그래?”

“야, 너 진짜 걱정이다. 우리보다 더 모르는데 애를 어떻게 키울래?”

친구가 잔소리와 걱정을 쏟아냈다.

예상했던 잔소리라 그런지 별다른 타격 없이 웃음만 났다.

그때 다른 친구가 응원의 말을 했다.

“잘할 수 있을 거야.”

내 앞길은 불행하고 나는 잘 해낼 수 없다고 결정 난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잘할 수도 있다니.


집에 도착한 나는 가방에서 친구에게 받은 곰모양 젤리를 꺼내 한참을 만지작 거렸다.

임신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어떤 엄마가 될지 선택할 수 있다.


용기를 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우리 어떻게 키웠는지 기억나?”

“몇십 년 전 일인데, 당연히 기억 안 나지.”

“그럼, 나 아기 어떻게 키워?”

“뭘 어떻게 해. 네가 알아서 키워야지.”

역시 엄마에게 기대한 내가 바보다.


엄마와 통화를 끝내고, 신생아 백과사전을 구매했다.

산부인과에서 진행하는 산전 요가와 산전 수업도 신청했다.

며칠 뒤 도착한 신생아 백과사전은 이름 그대로 사전처럼 두껍고 무거웠다.

아기를 씻기는 법부터 속싸개를 싸는 법까지 아기를 키울 때 필요하다고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까지 자세히 나와있었다.

“탯줄? 배꼽 떨어지는 걸 내가 관리해야 한다고?”

“기저귀, 하….”

“2시간마다 모유 수유?”

“예방접종은 왜 이렇게 많아?”

아이를 키우는 법은 여태껏 내가 배워온 많은 일 중, 제일 힘들고 어려운 일임이 분명했다.


그날 저녁.

나는 퇴근 후 돌아온 신랑을 잡고 늘어졌다.

“오빠 이것 좀 봐봐. 이걸 우리가 어떻게 해?”

“해야지 뭐. 별수 있나.”

“난 못해. 무서워. 못한다고.”

징징대도 소용없었다.


내 안의 젤리곰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고,

나도 무럭무럭 자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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