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5주 차입니다.”
환희에 찬 신랑과 달리,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안돼’였다.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기분….
아니, 진짜 흔들리는 중이었다.
“나는 독신주의자야.”
“너 그런 말 하는 사람이 제일 일찍 결혼하는 거 알고 있지?”
“내가 아니라는 걸 보여줄게!”
그 말이 사실일 줄이야.
입버릇처럼 ‘독신’을 외치던 나는 친구들보다 먼저 결혼했다.
“우린 딩크족으로 살 거야.”
그렇게 말하던 내가 이번엔 임신했다.
믿고 싶지 않았다.
병원에 가기 전에는 임신테스트기의 오류이길 바랐다.
병원을 다녀온 후에는 선생님의 오진을 바라고 있었다.
단 한순간도 누군가의 부모이고 싶다고 생각한적 없었다.
나는 내 삶이 너무 힘들었다.
그 부모의 그 자식.
분명 나와 같은 삶을 살겠지.
돈 있는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 단지 속 돈 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
나는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자랐다.
다행이었을까?
불행이었을까?
중학교에 입학한 지 두 달쯤 접어들 무렵이었다.
출석 번호 순서대로 남은 4명이 교실 청소를 하고 있었다.
내성적인 나는 아직 반 친구들과 많이 친해지지 못한 상태였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 게 당연했던 그때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너, 그 얘기 들었어?”
“무슨 얘기?”
“삐쭉이가 너 쓰레기장에 산다고 말하고 다녀.”
나는 내가 가진 모든 분노와 원망을 담아 소리쳤다.
“야! 삐쭉이!"
조용하던 아이가 삽시간에 돌면 해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대니 구경하던 아이들도 뒤로 물러났다.
삐쭉이도 내 행동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춰 섰다.
나는 삐쭉이 앞에 얼굴을 들이밀며 소리쳤다.
"너 내가 쓰레기장에 산다고 말하고 다니냐?”
“응. 너희 아파트 앞에 쓰레기장 있잖아. 거기 못하는 사람만 산다던데?"
삐쭉이가 말하는 쓰레기장은 분리수거장을 말하는 것 같았다.
황당한 주장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당황한 날 보며 삐쭉이가 말을 이었다.
"너희 아빠는 골프 쳐? 거기 사는 애들 아빠는 골프도 못 친다고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 진짜야?”
그 순간 많은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상하게도 초등학교 내내 친구들이 나와 3번 이상 놀지 않았다.
특히 친구들의 엄마들을 마주치면 다음날부터 그 친구와는 말도 못 했다.
초등학교 5, 6학년때는 심하게 왕따를 당하기도 했었다.
"썩어."
내 손이 닿는 곳마다 아이들이 따라다니며 썩어라고 외쳤다.
"너희 아빠 골프 치냐고."
중학교 입학을 2주 앞두고, 아빠는 돌아가셨다.
당연히 골프라는 취미를 가진 적도 없으셨다.
아빠까지 없다는 소리를 할 수 없었다.
“야! 그거 분리수거장이거든! 너네는 쓰레기도 안 버리고 사냐!”
할 수 있는 말이 그것밖에 없었다.
“너희 그만해. 밖에 선생님 계셔.”
싸움을 말리는 친구의 말에 교실 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언제부터 계셨던 걸까.’
복도에 계시던 담임선생님이 교실 안으로 들어오시지 않았다.
다음날 그 아이의 부모님이 학교 측에 항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 담임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나는 너를 혼낼 생각이 없다. 나는 네 행동이 잘 못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정한 어른으로부터 받은 위로는 무너지고 싶은 순간마다 내가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이후로도 이런 일들은 빈번하게 생겼다.
친구에게, 부족한 어른들에게.
그리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에게서.
가난은 대물림된다.
다음날 술에 취해 들어온 신랑이 거실 바닥에 앉아 펑펑 울었다.
“너무 좋다. 고마워.”
어쩌면….
실낱같은 희망이 자리를 잡으려던 그때.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주는 거래. 절대 아기 낳지 마. 남자들은 결혼해서 꼭 한번 바람피우는데, 특히 임신했을 때래. 혹시 그런 일 생겨도 잘 참고 살아.”
결혼식 넉 달 전, 친구라고 생각했던 이가 한 말이 떠올랐다.
이런 따뜻한 순간에도 언제 다가올지 모를 최악의 늪을 생각했다.
‘나는 엄마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