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날리던 꽃잎처럼.

by젤리곰

고등학교 1학년.

나는 미술학원에서 학원비 일부를 지원받아 입시 미술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손에 꼽을 만큼 행복했던 시기였다.

학교가 끝나면 바로 미술학원으로 향했다.

수업 시간이 되려면 한 시간도 넘게 기다려야 했지만, 수업을 기다리는 그 시간마저 좋았다.


고등학교 2학년.

나는 비교적 재료비가 적게 드는 수채화반을 택했다.

서양화과를 갈 생각이 아니라면 디자인과를 가는 것이 입시에 유리한 시기였다. 때문에 학원생 대부분은 디자인과를 택했고, 수채화반은 고3, 고2 포함해 모두 6명이었다.

학원 본관 건너편 작은 1.5층짜리 건물에 수채화반의 교실이 생겼다.

1층 치킨집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서니, 바닥에서 30cm 정도 떠있는 작은 철문이 있었다.

"자! 여기가 이제부터 우리가 사용할 교실이야."

선생님이 작은 철문을 열자, 한 사람이 겨우 올라갈 만한 계단이 보였다.

교실로 들어가길 망설이는 우리에게 선생님이 말했다.

"들어가면 생각보다 괜찮아."

교실은 생각보다 아늑하고 좋았다.

“얘들아, 우리 대회 나가서 상 타면 미술학원 건물로 다시 들어갈 수 있어!”

“선생님, 우리 쫓겨난 거예요?”

솔직이의 말에 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쫓겨난 것 같았다.

선생님과 우리는 똘똘 뭉쳤고 열심히 그렸다. 덕분에 그림 실력이 날로 늘어 학원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젤리곰, 주말에도 그림 그리고 싶으면 그려."

선생님께서 내게 교실 열쇠를 주셨다.

그 열쇠를 볼 때마다 좋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잘하고 있다.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결국 성공해내고 마는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나도 잘 될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입시 제도가 바뀌어 수채화로 갈 수 있는 디자인과가 없어진다고 했다.

서양화과를 갈 생각이 아니면 디자인과로 옮길 것 을 권했다.

나는 디자인과로 옮겼다.

그림 그리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파스텔은 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여름방학을 앞둔 어느 날.

“학원을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학원에서 전액 학원비 지원을 해주기로 했어. 우린 네가 OO대학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해. 네 미래를 위해서도 좋고 학원에도 좋은 거지.”

“그게 아니라…. 재료비 감당을 못할 것 같아요.”

“….”

원장선생님의 눈에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뒤섞였다.

나는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슬롯생활의 첫발을 내디딘 곳은 백화점이었다.

푸드코트와 행사 아르바이트를 거쳐, 명품매장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기업 화장품 회사의 정직원이 되었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었다.


용기를 내 다시 세상밖으로 나온 나는 두 해가 지나고 작은 쇼핑몰 회사의 상세 페이지 디자이너가 되었다.

월급은 적었지만 일의 만족도는 최상이었다.

한 해가 지나도 회사에 출근해 일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 일찍 결혼을 했다.

더 바랄 것도 없이.

이만큼만.

딱 이만큼만.

살면 좋겠다 싶던 그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요즘, 키보드를 누를 때마다 손끝이 아리고, 아파.”

“키압 낮은 키보드를 써보는 건 어때?”

신랑의 추천대로 키압 낮은 키보드는 효과가 있었다.

오전까지만.

점심시간이 지나면 손가락은 더 이상의 터치를 거부하며 아렸다.

열 손가락 마디마디 파스를 잘라 붙이며, 독수리 타법으로 버텼다.

며칠이 지났지만 아무래도 좋아질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정형외과를 찾았다.

의사 선생님이 화면 속 엑스레이 사진과 내 얼굴을 번갈아 봤다.

“손을 많이 사용하셨나 봐요. 이 나이대에 이런 손은 처음 봅니다. 당분간 치료에 집중하시는 게 좋겠어요.”

“...”

“방치하다가는 손을 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선천적으로 손가락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물 뚜껑을 열 때도 남들보다 더 힘들여 열었다.

백화점에서 일하는 동안 손이 많이 약해졌다고 생각하기는 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단단한 땅을 밟고 행복에 겨워 높이 뛰어오르면 찰나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두 발을 다시 땅에 내디뎠을 땐, 언제나처럼 늪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주 빠진 덕분일까?

나는 늪에서 빠져나오는 법을 터득했다.

누워버리자.


“이번 기회에 치료하면서,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하지 뭐!”

그렇게 나는 백수가 되었다.

백수 생활의 꽃은 친구들과 가지는 티타임이었다.

“나 어제 좋은 꿈 꿨어!”

“뭔데?”

공감이가 두 눈을 반짝였다.

“아빠랑 벚꽃이 활짝 핀 동산에 올랐는데, 벚꽃이 바람에 휘날려 하늘을 덮었어. 그런데 그 꽃잎들이 떨어지지 않고 바람 따라 날아다니기만 하더라고. 무릉도원이 이런 걸까 싶은.”

“어머, 꿈 진짜 좋다.”

"꿈에서 아빠랑 3번 그 동산에 올랐는데, 마지막 한 번은 신랑도 같이 올라갔어. 나한테 3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이번에 대형 서점 면접 본 게 잘 되려나?”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직설이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 태몽이야.”

“태몽? 태몽은 과일 따 먹고, 뭐를 안고 그런 거 아니야?”

“잘 생각해 봐. 너 결혼한 지 벌써 1년이나 지났어.”

직설이의 말이 신경 쓰인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임신테스트기를 샀다.

“뭐야. 아니잖아. 괜히 걱정했네.”


그런데 그날이 시작되지 않았다.

다시 임신테스트기를 꺼냈다.

“두 줄.”


이번엔 모래 늪에 아주 제대로 빠진 것 같다.

곧 있으면 채용 결과도 나올 텐데.

합격이 더 문제였다.

‘입사하자마자 임신인 걸 어떻게 말하지.’

‘말하지 말까? 말 안 해도, 배 나오면 다 알게 될 텐데.’


며칠 뒤.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번에 보셨던 면접 합격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

“죄송합니다. 제가 채용 공고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차라리.

면접에서 떨어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