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명은 정하셨어요?”
“태명이요?”
“네. 아직 못 정하셨으면 다음번 진료 오셨을 때 말씀해 주세요.”
산모 수첩을 건네며 간호사님이 말했다.
“오복이 어머니.”
“사랑이 어머니.”
대부분의 산모는 벌써 누군가의 엄마로 불렸다.
‘나만 어려운가?’
나만 빼고.
모두 엄마가 될 준비를 끝낸 것 같았다.
몇 주 뒤 진료를 기다리는데, 옆자리 산모가 말을 걸었다.
“임신 준비는 얼마나 걸리셨어요?”
“그게…. 계획했던 건 아니었어요.”
“그렇구나. 태명은 뭐예요?”
“빠기요.”
“빠기?”
“네. 이동국 님 아들 대박이가 너무 귀엽길래.”
“아, 네.”
그 뒤로 대화는 자연스럽게 끊겼다.
내가 하는 모든 말들이 ‘이 사람과 더 말하지 마.’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혼자였다면 신경 쓰지 않았을 일들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나는 산모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엄마처럼 대화하는 법을 배웠다.
“너무 감사하게도 아기가 빨리 찾아왔어요.”
“태명은 대박을 애교스럽게 불러서 빠기예요.”
대화하는 법을 바꾸고 난 뒤 다른 산모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산전 수업은 외계어의 총집합이었다.
신생아 백과사전을 읽고 갔는데도 모르는 것 천지였다.
“다른 바카라도 읽어봐야 하나?”
바카라과 수업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당 당겨.”
나는 거침없이 케이크 한 조각을 먹어 치웠다.
임신 후 제일 마음에 드는 일상은 죄바카라감 없이 먹는 것이었다.
먹고.
먹고.
또 먹고.
“내가 먹는 거 아니야.”
“갑자기 떡볶이가 먹고 싶네.”
“빠기도 맛있었어?”
주변 사람들도 끊임없이 먹였다.
“먹어. 먹어.”
“원래 임신했을 때는 잘 먹어야 하는 거야.”
임신 중기부터 시작된 식탐은 막달까지 끝나지 않았다.
나는 심각한 먹덧이었다.
산전 요가가 끝나고 다른 산모와 티타임을 가졌다.
“빠기엄마는 집에서 쉬고 있는 거예요?”
“네. 가끔 블로그에 일상 올리는 정도만 해요.”
“블로그 하면 산부인과 서포터즈 신청하면 되겠다.”
“저는 서포터즈 할 정도로 괜찮은 블로거는 아니라서요.”
“실제로 산부인과 이용하는 산모 위주라 경쟁률 심하지 않다던데. 한번 물어봐요.”
며칠 뒤, 산부인과 상담실을 찾았다.
“블로그 서포터즈 신청하려고 왔는데요.”
“기존에 블로그 운영은 해보셨어요?”
“네. 지금 하고 있어요.”
“너무 잘 됐다. 블로그 처음 하시는 분들만 신청하셔서 걱정하던 중이었어요.”
산부인과 서포터즈 혜택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산전 수업 한 달에 한 번 무료.
산전 요가 무료.
산후조리원 업그레이드.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