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집순이^^
물걸레를 세척하러 간다는 녀석의 뒤를 따라갔다. 흔들림 없는 꼿꼿한 자세로, 휘파람 대신 경쾌한 바퀴 소리를 내며 제 집을 찾아 방으로 들어간다. 녀석이 오른쪽 뒷다리를 쓱 뻗어 훑고 간 거실 가장자리가 반짝거렸다. '그건 다 내가 한 일'이라며 요란한 소리를 내며 걸레를 빨았다. 세상에 나는 시작 버튼 하나 눌렀을 뿐인데 혼자 알아서 척척이다. 잠시 후 바닥에 붙은 걸레를 윙윙 돌리더니 엉덩이를 흔들며 방을 나선다. 구석에 남아 있을 먼지 따윈 걱정하지 말라는 듯, 이번에는 왼쪽 뒷다리를 쓱 내미는 꼴이 꽤나 든든했다.
퇴직 전, 사위가 은근한 목소리로 강아지 한 마리 입양을 권유한 적이 있다. 친구 집에 있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녀석이라며 막내딸 삼아 키워보라고 했다. 혼자 적적할 장모를 걱정하는 마음이 기특했지만 사양했다. 딸아이 중학교 입학 선물로 몰티즈를 받았다가 고생했던 기억 때문이었다. 기본적인 대소변 훈련도 힘든 데다 온 집안을 들쑤시고 다니는 녀석을 감당하지 못했다. 태어난 지 삼 주 만에 우리 집으로 온 몰티즈는 결국 사흘 만에 다시 엄마 품으로 갔다. 곁에 두면 기쁘고 행복하겠지만, 한 생명을 온 힘을 다해 바카라임지고 사랑할 자신이 내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식물이나 가구 그리고 이 로봇청소기 같은 것들과 논다. 대답 대신 무거운 침묵을 내주는 녀석들에게 ‘오늘은 하늘이 참 푸르다.’, ‘도서관에서 옆자리 학생이 자꾸만 코를 풀어 속상했어.’, ‘커피 당기는데 우리 한잔할래.’ 등. 소소한 나의 일상을 쫑알댄다. 이들은 늘 한결같이 ‘침묵은 금’이라는 말을 실천한다. 금값이 상승하자 더 조용히 귀를 열고 내 말을 들어주기만 했다. 세상이 아무리 흔들려도 내 편이 되어주는 이들이 있어 내게 집은 편안하고 따뜻하다.
나는 작가란 이런 사람이라 생각한다. 작가는 자신이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손가락을 움직일 뿐이다. 작가 자신도 어찌 전개될지 모르는 이야기를 만들어준 이는, 그러니까 사실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았을 뿐이지, 진짜 이야기를 써 내려간 사람들은 이 이야기에 등장한 인물들이다. 나는 손가락으로 타이핑했을 뿐이지만, 그들은 몸으로 이야기를 써주었다.
최민석 『40일간의 남미 일주』 중에서
이 문장처럼 우리 집의 하루를 몸으로 써 내려가는 건 내가 아니라 말 없는 이 녀석들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집에 들어앉아 거실 창밖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자판을 두드리는 지금을 사랑한다.
아침을 먹은 후 가을이라기엔 늦여름에 가까운 햇살이 거실 깊숙이 들어오길래 창문을 활짝 열었다. 에어컨 필터의 먼지를 털어내고, 집안 구석구석을 수선스럽게 흔들어 깨웠다. 그 소리에 현관 앞방에서 충전 중이던 로봇청소기도 일어났다. 내가 배부른 녀석의 배꼽을 살짝 눌러줬다. 녀석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양다리를 뺐다 넣었다 하며 집안을 쓸고 다녔다. 온갖 먼지를 뒤집어쓴 걸레를 혼자 빨아가며 청소하는 녀석 때문에 아침부터 시끌벅적 요란하다. 양다리를 들고 거실 카펫 위에 올라서며 방향을 살짝 바꾸는 녀석을 흐뭇하게 바라보는데, 현관 벨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데….
청소기가 자꾸 현관으로 튀어나가는 바람에 닫아뒀던 중문을 열려는데, 앗! 중문이 꿈쩍도 안 했다. 세 짝의 문이 대리석만큼 무거웠다. 현관 밖에서는 ‘가스 점검 왔습니다!.’라는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문짝을 두드리며 ‘잠깐만요’ 하고 죄송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때 발등이 살짝 간지러웠다. 문이 안 열린 게 아니었다. 언제 왔는지 녀석이 중문 문틈 사이에 제 몸을 깊숙이 끼워 넣은 채, 은근슬쩍 뒷다리를 뻗어 레일을 닦고 있었다. ‘집 안 구석구석 청소는 내가 한다고요!’라고 말하듯이 과하게 레일을 닦으며 나를 가둬버렸다. 이를 지켜본 거실 창가에 있는 녀석들까지 덩달아 내게로 몰려올까 봐 나는 손사래를 쳤다. 그 사이 가스 검침원은 엉뚱한 녀석들의 격정적인 사랑에 고개를 저으며 ‘이따 올게요!’라며 떠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