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나는 어르신께

애쓰셨습니다.

by김광희

아파트 입구를 빠져나가는데 팔십 대쯤 돼 보이는 분이 나를 불렀다. 걸음을 멈춘 내 손을 대뜸 잡으며 ‘선해 보여서’ 불렀다고 했다. 당신은 눈이 보배라 사람을 첫눈에 알아본다며 나에게 부탁할 게 있단다. 나는 처음 보는 분께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 방실거렸다. 웃느라 갈매기 모양이 된 내 눈길은 그분 덩치처럼 커다란 장미 브로치가 달랑거리는 왼쪽 가슴에 닿았다.



늘 남편이 채워줬는데 오늘은 집에 없어 그냥 들고 나왔다며 내 오른손바닥 위에 목걸이를 올렸다. 묵직한 무게에 내 손이 순간 휘청거렸다. 장난기가 발동한 내가 어르신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와~~ 무게가 장난 아닌데요. 몇 돈이나 됩니까?”

“응. 얼마 안 돼. 열다 돈.”

나는 마치 쌀에 들어있는 불순물을 고르는 키질을 하듯 오른손을 위아래로 들썩였다. 내 앞에서 몸을 숙이며 목을 내미는 어르신께 또 말을 걸었다.

“제가 달리기 선수였는데 이걸 들고 튀면 어쩌려고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어르신은 오른손으로 내 왼쪽 상의 옆구리를 잡았다.

“그거 얼마나 한다고. 얼마 안 해. 얼른 목에 걸어줘 봐.”

어르신 입은 웃고 있었지만 내 옷을 잡은 손엔 힘을 꽉 주었다. 덩달아 눈도 커졌다.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워 새 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거북이처럼 목만 쑥 내미는 어르신 목뒤로 내 양손을 돌려 목걸이를 채워드렸다.


그분과 걸음을 맞춰 아파트 앞 건널목까지 나란히 왔다. 제법 바람이 부는데도 그분은 땀이 흐르는지 손수건으로 얼굴을 계속 닦았다. 혹시 내가 '갖고 튈 수도 있다'라고 한 말 때문일까?


건널목을 건너 나와 반대쪽 버스 승강장으로 걸어가기 전 어르신은 나에게 ‘고맙다’라는 말을 한번 더했다. ‘달리기 선수’였다고 방실거리며 내가 했던 말이 무서웠을까?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시는 그분 뒷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언젠가 읽었던 문장이 떠올랐다.


도처에 해독을 끼치고 파괴를 일삼으면서도 돈은 슬롯적 식물을 키우는 효모였고, 삶에 편의를 제공하는 대역사에 필요한 부식토였다.


에밀 졸라 『돈』 중에서


우리는 세상의 잣대로 가치를 따지는 금붙이나 돈을 때로는 욕망과 탐욕의 덩어리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내 손바닥에 올려졌던 그 목걸이는 지금까지 치열하게 살아온 어르신의 젊음과 바꾼 소중한 훈장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내 옷깃을 꽉 쥐었던 그 간절한 손길은, 당신 인생의 소중한 조각을 나 때문에 잃을까 두려워서였으리라.


머쓱해진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오른쪽 팔목에 차고 있던 팔찌가 머리카락 몇 가닥과 엉켰다. 조심스럽게 머리카락을 떼어내며 조금 전 쥐어봤던 무게보다 훨씬 가벼운 내 반지와 목걸이를 만져봤다. 그 어르신처럼 청춘을 바쳤던 시간 끝에 남겨진 내 열정의 결정체들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귀한 의미를 아는 내가 어르신께 방실거리며 농담하다니. 내 손목이 느꼈던 무게보다 더 무겁고 귀중했을 삶의 무게를 가벼이 여긴 나는 부끄럽고 죄송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섰다. 버스를 기다리며 승강장에서 머리를 다듬는 어르신이 보였다. 목둘레를 감싸 안고 있는 금목걸이가 햇살에 반짝거렸다. 나는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어르신께 소리쳤다.


“오늘 계모임에서 어르신이 제일 예쁘고 빛날 겁니다. 잘 다녀오세요.”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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