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속을 헤집어라
여름이라고 더 도도하게 짙어진 바닷물을 뽐내는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을 지나쳤다. 모래밭에서 한낮을 즐기는 사람들이 마치 갓 잡아 올린 은갈치처럼 반짝거렸다. 자동차 안을 맴도는 냉기 덕분에 겨우 더위를 피하고 있던 우리는 그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감히 누구도 입을 열어 바닷가로 뛰어가자고 말하지 않았다. 제로게임을 하는 것처럼 서로 눈치를 살피다 그곳을 지나 죽천 해수욕장에 주차했다. 제법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영일대와 달리 한산했다.
올 초 만났던 포항 친구들을 다시 만난 날. 봄이 가고 여름이 우리를 껴안았다. 살갗을 태울 듯이 내리쬐는 햇볕을 피해 우리 셋은 해변 옆 야트막한 산길을 올랐다. 작년 9월 수술 이후 처음으로 오르막을 걷는 내 심장이 큰 북소리를 냈다. 땅이 흔들렸다. 히말라야 등반도 아니고 그저 동네 뒷산인데. 이게 뭐라고. 여전사처럼 내 앞에서 걸어가는 내게 글을 쓰게 만들었던 대장암 수술을 한 친구. 내 뒤를 씩씩거리며 따라오는 개척교회 목사 사모님. 각자의 사연들이 등짝에 땀이 되어 흘러내렸다.
3년 동안 달고 살던 임시 장루(腸瘻) 제거 후 복원 수술을 마친 친구의 걸음은 한 마리 나비 같았다. 저렇게 사뿐히 걸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뱉으며 가쁜 숨을 다독였다. 바다로부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숲 속에 숨어있던 산딸기가 화사한 미소를 띠며 모습을 드러냈다. 뒤늦게 하나님 부름을 받은 남편을 위해 온갖 일도 해내는 개척교회 목사 사모님이 산딸기 하나를 내게 건넸다.
가장 빨갛고 튼실한 것이니 먹고 다시 활기찬 광희가 되라는 말을 하면서.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눈빛만 봐도 그날의 기분 정도는 파악이 가능한 우리 셋. 30대에 이웃으로 만나 쌓아 온 세월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가슴속에 엉켜있는 온갖 것들을 서로에게 토해내면서 울고 웃었다. 맞춤법이 맞지 않은 글처럼 생활이 완전하지 않아 속상했던 날들을 일기로 쓰기도 했다. 통증과 기쁨이 얽힌 모음과 자음이 서로의 삶에 더 완벽한 문장이 되려고 애썼다. 다시 그 일기를 들춰 보던 날. 쑥스러움에 큰소리로 웃기도 했지만 간간이 가슴을 두드리는 문장을 만나 서로 놀란 적도 있다. 이런 시간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문장들이 내게 닿으려면 나는 얼마나 더 많은 바카라을 읽고 배워야 할까? 여전히 미숙하기만 한 나는 갤러리를 운영하는 친구의 사랑. 이탁오가 말하는 글 속으로 빠져들었다.
중국 명나라 사상가 이탁오(1527~1602)는 원나라 극작가 왕실보의 『서상기』를 읽고 다음과 같이 썼다.
세상에서 정말로 문장을 잘 짓는 사람은 모두 처음부터 문장을 짓는 것에 뜻이 있지 않았다. 그의 가슴속에 형용하지 못할 수많은 괴이한 일이 있고, 그의 목구멍 사이에 토해내고 싶지만, 감히 토해내지 못하는 수많은 것이 있으며, 그의 입에 또한 때때로 말하고 싶지만, 알 릴 수 없는 수많은 것이 있어, 이것이 오랫동안 쌓이고 쌓여 도저히 막을 수 없는 형세가 되는 것이다. 일단 어떤 정경을 보고 감정이 일고 어떤 사물이 눈에 들어와 느낌이 생기면, 남의 술잔을 빼앗아 자기 가슴속에 쌓인 응어리에 뿌려 씻어내고 마음속의 불공평함을 호소하여 기이한 것을 찾는 사람을 천년만년 감동시킨다. 그의 글은 옥을 뿜고 구슬을 내뱉는 듯하고, 은하수 빛을 발하면서 맴돌아 하늘에 찬란한 무늬를 만드는 듯하다. 마침내 스스로도 대단하게 여겨서 발광하여 크게 소리치며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니, 멈추려야 멈출 수가 없다. 차라리 이를 보거나 듣는 사람들이 격분하여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글을 쓴 사람을 죽이고 싶어 하게 할지언정, 차마 끝내 名山에 감추거나 물이나 불속에 던져 사장시킬 수는 없다….
『이탁오 평전 - 유교의 전제에 맞선 중국 사상사 최대의 이단아』 중에서
지난해 2월. 드디어 국민연금 수급자가 되었다고 '노년식'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초대한 무용가였던 친구. 그녀는 은퇴 후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바카라과 음악 그리고 미술작품에 빠져 살고 있다. 종종 그녀는 내게 바카라 속에서 만났던 세계 역사와 풍경들을 소상하게 설명해 준다. 가끔은 그녀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중 한 명이 중국 사상가 이탁오다. 맹자, 공자, 순자 정도만 알고 있던 내게는 생소한 이름이었다. 오래된 종이 냄새가 코를 찌르는 낡은 바카라을 읽으면서 나도 점점 사랑이라는 늪으로 끌려갔다. 그는 이름이 지(贄)고 호가 탁오인 1527년생이다. 중국 명나라 때 사람으로 유교 불교 도교의 가치가 같다며 유가의 전제에 반대했다. 평생 독서를 사랑했던 자유로운 사상가 이탁오는 문을 닫아걸고 온 심신을 쏟아부은 채 바카라을 읽었다고 한다. 그 시절 이단아라 불렸지만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바카라을 놓지 않던 그를 닮고 싶다.
어느새 바람이 잠잠해졌다. 휘날리던 머리카락도 조용했다. 그 틈을 타 다시 숲 속으로 숨어드는 산딸기가 보였다. 한때는 주렁주렁 매달려 풍성한 시간을 보냈을 건데. 그것들은 이미 누군가의 입으로 들어가 버리고 초라한 것들만 남아 달랑거리는 것이 내 글들 같다. 목이 메었다. 나는 물 대신 뜨거운 빛에 달궈진 새끼손톱만 한 산딸기를 입에 넣었다. 부끄러운 마음을 들킬까 봐 맛도 느끼지 못하고 얼른 삼켰다. 앞서 걷는 친구가 자신의 대장과 소장을 달래며 조화롭게 살아가듯이. 나도 즐겁게 바카라을 읽고 배우며 신나게 문장을 지어야겠지. 신의 부름에 응한 남편을 향한 믿음이 굳건한 맑고 고운 목사 사모님처럼. 내 글도 밝고 광희 날 거라고 약속하면서.
산길을 내려와 해파랑길 17번 코스 끝자락쯤일 해변가를 거닐며 갤러리 친구에게 문자를 썼다. 집에 가는 대로 600페이지를 훌쩍 넘은 네가 건네준 ‘문심조룡(文心雕龍)’을 완독 하겠으며. 나도 독서의 즐거움에 빠져 열심히 배움을 이어가겠노라고 보냈다. 천천히 내 가슴속을 헤치고 들어가 숨어있는 문장을 끄집어내야겠다. 그것들을 다듬고 다듬어서 초라한 산딸기는 되지 않으리라. 나는 오른손 엄지와 검지에 힘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