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시작이자 끝이라는 일기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얼굴이 어제 아침과 달랐다. 이틀 동안 실컷 웃고 떠들면서 먹기만 했더니 볼이 입김을 잔뜩 머금은 빨간 풍선 같다. 얼마나 웃었는지 눈도 부었다.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에서 안경을 벗고 이쪽저쪽 얼굴을 자세히 살펴봤다. 한참을 들여다보는데 내 얼굴에 돌아가신 친정엄마 얼굴이 보였다. 별로 크지 않은 눈에 두툼한 눈두덩이. 나지막한 코. 앙다문 입술까지. 초파일이면 빼놓지 않고 절에 다니던 엄마처럼 나도 선운사를 다녀와서일까? 닮았다는 말을 거의 듣지 않던 엄마 얼굴이 내 얼굴과 겹치다니.
사월 초파일 전날. 고창으로 여행을 갔다. 도솔산(선운산) 뒤쪽에 농막이 있는 지인까지 여자 넷이서 서해안 갯벌을 찾았다. 소나무 숲 사이로 거칠게 날아드는 바람에도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이 너른 갯벌에 머리카락 날리는 바람 소리까지. 화려한 조명은 없지만 마치 파티장 같았다. 별일 없던 어제에서 자연이 활개 치는 오늘로 들어온 기쁨에 취해 우리는 각자의 걸음마다 경탄성을 보탰다. 만 보가 넘는 걸음에도 발가락이 가벼웠다. 서로의 어깨를 부딪치며 맛있는 자연도 실컷 먹었다. 다른 날보다 더 부풀어 오른 보름달 같은 배를 안고 우리는 농막에서 저녁을 보냈다. 소나무와 작약이 만발한 숲 속 밤하늘은 별이 가득했다. 잡힐 듯 잡히지 않은 북두칠성까지 마주한 덕분에 고창의 밤은 나에게 달콤한 추억이 되었다.
초파일 당일. 우리 넷은 도솔암에서부터 시작하여 참당암, 선운사까지 부처님 탄신일을 함께 보냈다. 불교인은 아니지만 나는 부처님 앞에서 뻣뻣한 무릎을 꿇었다. 엎드려 절을 올리며 평화와 살아있는 모든 것에 안녕을 빌었다. 푸르름과 사람들로 꽉 찼던 도솔천을 벗어나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내 나이를 따라 건조해진 시간이 상큼한 바람이었을 여행으로 다시 촉촉해졌다.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울긋불긋 색동옷을 입은 등을 보고 와서일까?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점점 더 붉어졌다. 거무스름한 기미와 햇빛에 달궈진 양볼 위로 살포시 내려앉은 친정엄마의 얼굴. 안경 속 눈알이 흐릿해졌다.
집에 들어선 나는 엄마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했던 ‘恨’ 노트를 끄집어냈다. 조카들이 쓰다 버렸을 파란색 표지에 하필이면 개 한 마리와 함께 써진 문구가 ‘lonely dog drowns sorrows by the wind (외로운 개는 바람으로 슬픔을 가라앉힌다. - 네이버 해석)’. 엄마는 당신의 삶을 노트에 써진 글과 제목처럼 생각했을까?
2010년 11월 20일
아침 6時경 둘째 딸 광희가 목욕탕에 가자고 준비하라고 하는 전화를 했다. 밥을 안쳐 놓고 나갓다. 욕탕에 가서 두 딸. 둘채와 막내가 곗긋하게 시겨주고 밧비 갓다. 마음이 짠하다. 女息들 苦生만 너무 시켜서. 그러자 오후 5時경 셋째 딸이 전화를 햇다. 저녁을 산다고. 그래서 준비하는 중인데 지난주 둘째와 같이 가서 찍었던 우리 부부 영정사진을 막내와 둘이 가져와서 걸고 잇는데 셋째가 우리를 대리로 와 합세해서 식당을 택해 염소탕을 맛이 있게 먹고 나니 너무 幸福해서 밤이 새도록 잠이 오지 않은구나. 고맙다. 미안하다.
작가 최영미는『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에서 일기를 쓰고 매달린 이유를 이렇게 썼다.
'현실의 무게에 눌려 나날의 현실을 기록할 힘과 여유를 뺏겨 일기를 쓰지 못했다.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한 것은 인생을 정리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에 시달리던 작년 가을부터이다. 일기는 내 문학의 시작이자 끝이다. 내가 쓴 최초의 시들은 일기장에 발표되었고, 또 내 인생이 종말을 고하는 그날 내가 세상에 남길 마지막 작품은 최후의 그날 아침, 혹은 그 전날 밤에 내가 썼던 일기일 테니까.'
1930년대에 결혼 9년 만에 태어난 귀한 딸. 그래서 원하고 원하던 자식이라는 의미로 이름을 '元葉'이라고 했단다. 그런 딸을 당시에는 불치병으로 알려진 천식 환자라 가진 것 하나 없는 농촌 총각에게 시집을 보냈다. 일찍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여기저기 떠돌던 실업자나 마찬가지였다는 남자와 친정 부모님 도움으로 시작한 신혼생활. 방 한 칸 구할 능력도 없던 남자의 성실함과 부지런으로 조금씩 살림이 나아졌다. 엄마도 최영미 작가처럼 현실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지자, 드문드문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신문을 포함한 읽을거리와 함께 늘 읽고 배우고 쓰기를 실천했다. 예순을 지나 고된 장사에서 은퇴를 한 후엔 아파트 주민이 되어 좀 더 자주 일기를 썼다. 그러다 여든을 앞둔 어느 날. 그 일기를 밑그림 삼아 당신의 삶을 돌아보며 기억이 나는 대로 정리하여 자식들에게 남기고 싶었는데…. 대장암 완치 판정을 받았던 아버지가 생각지도 않던 고관절 골절 수술 후 한 달 만에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늘 꼿꼿하고 당당했던 엄마가 무너졌다. 낡은 노트에 써 내려가던 글도 멈췄다. 경로당으로 향하던 발길을 끊고 거실을 서성거리기만 했다. 그리고 바람이 몹시 불던 날. 거센 바람에 베란다 새시가 흔들거리니 무섭다며 하소연까지 했다. 나는 그런 엄마를 안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차가운 목소리로 이제는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팔십 넘어 기운 빠진 엄마가 두려움과 외로움에 휩싸여 재봉틀처럼 떨고 있을지는 상상도 못 했다. 나는 못된 딸이었다. 죄송한 마음과 그리운 마음이 눈물로 노트 위로 떨어졌다. 글씨가 번졌다. 색 바랜 노트 표지 위로 불어 터진 활자들이 튀어나왔다. 그 사이로 엄마가 보였다. 마치 선운사 도솔천 옆을 따라 줄줄이 펄럭거리던 울긋불긋한 연등처럼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사실은 당신도 읽고 배우며 글을 쓰고 싶었던 여린 여자였다고.
<엄마의 노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