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활짝 펴 보이다
얼굴 맞대고는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을 편지로 길게 쓰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뜨거웠던 태양이 저문 시간이거나 먹구름이 데리고 온 빗소리가 가슴을 때리던 날.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어 있는 연필로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글을 써 집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우체통에 넣기도 했다. 종종 낯 뜨거운 문장들이 부끄러워 후회한 적도 있다. 그 편지 답장에 대한 기억은 산 너머 저편 어디쯤에서 나를 놀리고 있을 거다. 추위가 사라진 따뜻한 봄에는 길을 걷다 문득 우편엽서에 몇 자 적어 마음을 전했다. 지금도 길을 가다 우연히 빨간 우체통을 만나면 어디론가 편지를 부치고 싶어 우표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하지만 내 추억을 담은 우체통과 우표 파는 곳이 사라진 거리에는 바쁜 걸음만 가득할 뿐이다.
손 편지 대신 이메일을 주고받다가 이제는 거의 스마트폰으로 문자만 주고받는다. 줄임말이 대세인지라 길게 쓰지도 않는다. 덕분에 빗소리와 달빛에 취해 깊은 우물물을 퍼내듯 써 내려가던 시절의 낭만이 사라졌다. 나 역시 편지라는 단어를 잊어버렸다. 가끔 기념할 일이 있는 가족, 친구, 지인에게 축하한다는 짧은 한 줄에 몇 자 더 적는 걸로 끝낸다. 평소에 알만큼 아는 사이라 내 마음이 충분히 전달될 쓸 거라 여긴다. 독심술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편지하면 떠오르는 우정사업본부에서 35년을 근무한 동생이 정년 6개월을 앞두고 두 달 전 명예롭게 퇴직을 했다. 겨우 27년 근무했던 나는 동생의 시간에 존경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근무하는 동안 갖은 업무에 스트레스가 쌓였을 건데. 동생은 쏟아지는 공문과 업무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나를 오히려 위로하곤 했다. 딸과 함께 비 맞은 참새처럼 포항에서 이곳으로 날아왔을 때도 공무원 학원 등록증을 내밀며 내 손을 잡아주던 따뜻한 동생.
이곳으로 이사 온 해 4월. 친정식구들에게 짐이 되는 것 같아 일부러라도 웃어 보이던 나에게 어느 날 동생이 편지를 보내왔다. 마치 실실 웃는 겉과 속이 다른 나를 들여다보듯이.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슬픔의 샘에서 퍼내도 퍼내도 끊임없이 샘솟는 슬픔을 애써 가둬만 두려고는 하지 마세요. 고인 채로 상하면 더 아프고 힘드니깐요. 언니, 우리 서로 어깨동무하고 함께 의지하면서 즐겁게 살아갑시다. 언니의 본질적인 깊은 상처는 언니만이 치유할 수 있을 겁니다. 단지 우리는 옆에서 격려하고 힘 돋아주는 주변인으로 언니가 필요할 때 언제라도 언니에게 한달음으로 달려가 거들어주는 역할밖에 하지 못할 겁니다.'
편지를 읽으며 나는 작가 정민선생님의 글이 떠올랐다.
정말 소중한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자면 많은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다 보여주지 않는다.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중에서
꽃가루 알레르기로 고생하던 동생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터져 나오는 재채기처럼 굳이 슬픔을 포장하지 말라며 위로했다. 몇 년 만에 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를 받은 날 저녁. 나는 초등학교 1학년이던 딸이 잠든 후 콧물 눈물을 닦아가며 답장을 썼다. 무슨 말을 썼는지는 달빛과 바람, 그리고 동생만이 알겠지. 혹은 까맣게 잊었을지도.
우체국 국장이던 동생의 마지막 근무일 날. 그날 기분을 먼저 경험한 내가 동생 근무처를 찾았다. 며칠 전부터 접이식 부채처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쓴 손글씨 편지와 함께였다. 그곳의 바카라임자답게 손이 부족한 창구를 돕느라 왔다 갔다 하는 바쁜 걸음의 동생이 보였다. 늘 괜찮다고 말하던 것과는 달랐다. 역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니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도 민원인들 사이에 앉아 바라본 내 동생은 듬직하고 멋있었다. 이곳을 지휘하는 바카라임자가 내 동생이라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다.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한 무리의 민원인들이 빠져나간 틈을 타 나는 슬며시 동생에게 편지를 내밀었다. 우표 없는 봉투를 손에 쥔 동생의 미소가 우체국을 환하게 밝혔다.
'공무원이라는 바카라 한 권을 마쳤으니 이젠 새 바카라을 펴고 읽어보자. 동생아. 10만 년 후 다시 동일하게 반복될 삶에 가슴이 후련하게 터짐을 느낄 수 있도록 후회 없이 미치도록. 애썼다. 동생아. 너를 가두고 있던 담벼락 밖으로 잘 걸어 나오렴. 다시 만날 너를 위해서. 둘째 언니가.'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앓으려면 바닥이 보이지 않는 우물을 들여다보듯 찬찬히 살펴야 한다. 겉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니깐. 그동안 내가 언니라고 동생에게 잘 보여주지 않던 마음 깊이 숨겨뒀던 속내를 끄집어냈다. 햇살과 바람이 탐스러워 갖고 싶던 날. 나는 동생 퇴직 축하 현수막을 활짝 폈다. 35년 동안 공무원이라는 두툼한 옷을 입고 있던 동생에게 깃털처럼 가벼운 것들만 건넸다. 지금부터는 너도 숨겨둔 것들을 꺼내 마음껏 휘날려보라고. 짜인 틀에서 벗어난 시간을 응원하면서.
어쩌면 이 글은 그해 4월 동생에게 받았던 편지에 대한 뒤늦은 답장일지도.
<동생이 보내온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