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지?

오늘

by채율

어제저녁에 한강을 5킬로미터 뛰고 왔다. 그 때문인지 잠을 잘 잤고 아침에는 눈이 떠지지 않을 정도였다. 몇 번이나 일어나려고 하다가 결국 다시 잠이 들었다. 일어난 시간은 일곱 시 반이다.


창문을 열었다. 밤에는 제법 차가웠는데 해가 들면서 공기가 금세 풀린다. 멀리 보이는 호텔의 표면에 햇빛이 걸려 반짝거린다. 9월의 마지막 날이다. 여름옷을 넣어야 하나 생각하면서 옷장을 열었지만 반소매는 날이 추워져도 코트 안쪽에 입는 옷들이라 굳이 정리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커피를 내려 바카라상에 앉아 휴대전화 연락처를 정리하다가 이름 하나에서 손가락이 멈춘다. 미국에서 생활할 때 친했던 동생이다. 한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통화하고 거의 매일 만나 저녁까지 시간을 함께 보냈던 사이였다. 마지막 통화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프로필 사진을 눌러본다. 처음 보는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있다. 그사이 개를 키우게 됐나 보다. 유기견을 입양했길 바라게 된다. 전화를 걸까 하다가 그만둔다. 갑자기 전화해서 무슨 말을 하나 싶다. 특별히 할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메시지로 ‘잘 지내?’라고 보내는 것도 조금 싱겁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조금 전까지 뜨거워서 잠시 두었는데 벌써 마시기 좋은 정도로 식었다. 창밖에서는 누군가 이사를 오는지 트럭 소리와 사람들 소리가 한꺼번에 섞여 들린다. 나는 다시 휴대전화를 집어 든다. 통화 버튼을 누른다. 신호가 세 번쯤 가고 그녀가 받는다.


“여보세요?”


목소리가 그대로다.


“나야. 언니야.”


“알아. 어떻게 지냈어?”


둘이 동시에 반갑게 웃는다.


“별일 없지?”


“응, 나 잘 지내. 언니는?”


“나도 별일 없어. 잘 먹고 일도 바쁘고.”


그렇게 시작한 통화가 사십 분을 넘긴다.


그녀는 지난해 우연히 만난 유기견을 데려와 키우고 있다고 한다. 프로필 사진 속 강아지 이름은 젠다이고 생각보다 성격이 까다롭단다. 얼마 전에는 집 근처로 작업실을 옮겼고, 요즘은 건강을 챙기려고 아침도 거르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새로 쓰고 있는 글 이야기를 하고 얼마 전 화분 하나를 또 죽였다는 이야기도 한다. 대단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그때 우리 갔던 와인 바 기억나? 엄청 마셔서 호텔도 못 찾아갈 뻔했잖아.”


“거기 서비스 안주로 내준 떡볶이 진짜 맛없었잖아.”


“그렇지. 지인이라 그냥 맛있다고 하면서 꾸역꾸역 먹었지.”


우리는 또 웃는다.


통화를 하면서 거실을 걷다가 한 번씩 창밖을 본다. 어느새 햇빛이 아래로 내려와 있다. 열린 창으로 들어온 바람이 바카라상 위 영수증 한 장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나는 주우려 하지 않고 발로 바카라상 밑에 밀어둔다. 기억은 이상하다. 몇 년 동안 꺼내보지 않았는데 한 사람이 말을 꺼내자 줄줄이 따라 나온다. 둘이 맛있게 먹었던 음식, 자주 다녔던 곳, 나누었던 이야기들.


“우리 언제 한번 보자.”


그녀가 말한다. 예전 같으면 ‘그래, 한번 보자’ 하고 전화를 끊었을 것이다. 한번 보자는 말이 실제 날짜를 정하지 못한 채 몇 년을 지나기도 한다. 이번에는 그 시간을 붙잡아보고 싶었나 보다.


“다음 주 목요일 어때?”


잠깐 조용해진다.


“목요일? 잠깐만.”


무언가 확인하는 소리가 난다.


“된다. 아침 같이 하자.”


시간과 장소까지 정하고 전화를 끊는다. 통화 기록에 47분 18초라고 찍혀 있다. 커피는 완전히 식어 있다. 창가로 가니 창문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아까보다 따스하다. 창문을 조금 더 밀어 열어둔다.


다시 바카라상에 앉아 연락처를 정리한다. 조금 전까지 화면 속에만 있던 그녀의 이름 아래에는 새 통화 기록 하나가 생겼다. 마지막 통화와 그 기록 사이에는 여러 번의 여름과 겨울이 지나갔다. 창밖에서 바람이 들어와 바카라상 위 종이를 다시 한번 들썩인다. 이번에는 떨어지기 전에 손으로 눌러놓는다.

수, 목 연재
이전 07화나는 아직도 가는 중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