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엘리베이터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버튼을 눌러도 숫자가 움직이지 않는다. 1층 문에는 A4 용지 한 장이 붙어 있다. ‘정기점검 중입니다. 오전 11시까지 운행이 중단됩니다.’ 하필 오늘이다. 방송을 했을 텐데 나는 왜 못 들었을까. 집에 두고 온 안경을 가지러 다시 올라가야 한다. 잠깐 고민하다 계단실 문을 연다. 여섯 층쯤이야.
처음 몇 층은 괜찮다. 2층, 3층, 4층. 벽에 붙은 숫자를 하나씩 확인하며 올라간다. 이제 재킷 안쪽은 덥고 계단참에 멈춰 선다. 평소에는 닫힌 문 뒤라 볼 일이 없는 곳이다. 생각보다 계단이 높다. 회색 벽, 소화전, 층수를 알리는 파란 숫자. 그뿐인 공간이 조금 답답해서 공황이 올 듯한 불안감이 생긴다.
아래로 내려오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난다. 한 손에는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들고 있다.
“엘리베이터 안 되죠?”
“네. 열한 시까지래요.”
할머니가 위를 한번 올려다본다.
“아이고, 갔다 와야지 뭐.”
말은 그렇게 하면서 천천히 난간을 잡고 내려가는데 나보다 빠르다.
나는 다시 남은 두 층을 올라간다. 5층, 6층. 숨이 제법 차오른다. 운동을 할 때는 일부러 심박수를 올리면서 계단 몇 층에 이렇게 힘든가 싶어 웃음이 난다. 마지막 계단을 오르는데 우리 집이 있는 층수가 이렇게 반가웠던 적이 있었나 싶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안경을 찾는다. 바카라상 위에 그대로 있다. 고작 이것 때문에 온몸이 젖도록 계단을 밟았다. 물을 한 잔 마시고 다시 나가려는데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번에는 내려가야 한다.
계단실 문을 열자 아까와 같은 회색 계단이 아래로 길게 이어진다. 내려가는 길에는 올라올 때 보지 못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계단참에는 누군가 잃어버린 머리끈 하나가 소화전 위에 놓여 있다. 5층에는 유모차 바퀴가 지나간 듯 흙자국이 몇 줄 남아 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3층 문틈에서는 된장찌개 냄새가 난다.
계단을 거의 다 내려왔을 때 아까 만났던 할머니를 다시 만난다. 이번에는 빈손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올라오는 길인가 보다.
“벌써 다녀오셨어요?”
내가 묻자 할머니가 난간을 잡은 채 웃는다.
“나는 아직도 가는 중이지.”
나도 웃는다. 할머니는 한 계단을 오르고 잠깐 쉬었다가 다시 한 계단을 오른다.
1층까지 내려와 밖으로 나온다. 어딘가로 나서는 사람들,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 택배 상자를 나르는 사람이 각자의 속도로 움직인다. 나도 약속에 늦지 않으려고 걸음을 재촉한다. 몇 걸음 나가다가 아파트를 한 번 올려다본다. 어딘가에서는 할머니가 아직 계단을 오르고 있겠구나. 숨이 아직 가라앉지 않아 잠시 멈춰 선다. 코트의 단추를 하나 풀고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차가운 공기가 들어온다. 뒤에서 누군가 현관문을 밀고 나온다. 나는 다시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