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냐, 삶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by리수



프리랜서는 주말에도 일한다. 이 명제는 가능형일 때 참 명제에 가까워진다. 프리랜서는 주말에 일할 수도 있다. 여기에 가정과 당위를 더하면 참 명제를 넘어 진리가 탄생한다. 프리랜서는 주말에 일할 수 있다면 일해야 한다. 언제 밥줄이 끊길지 모르므로 물 들어올 때 노가 부서질지언정 아니, 노가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최후의 끌어치기로 온갖 수단을 노 삼아 저어야 하는 프리랜서의 숙명과 동의어라 하겠다.


오래전 한 매체에서 출연자가 주식을 끊게 된 계기를 고백하는 영상을 봤다. 국가적 재난이 터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관련주가 뭐가 있더라?’를 시작으로 머릿속으로 계산기부터 두드렸다는 거다. 모든 사고가 주식으로 귀결되는 자신이 두려워 그날로 주식을 전부 처분했다고 한다. 이보다는 소소하지만 나 역시 요즘 모든 일을 돈과 연관 짓는 경향이 생겼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돈이라기보다는 기회비용을 칼같이 따지게 됐다.


프리랜서 경력이 길어지면서 지인들에게 섭섭함을 느끼게 되는 이유도 다양해졌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만남 약속이다. 보통의 온라인 게임인은 평일에 일하고 주말에 쉬기 때문에 온라인 게임인 친구들과는 대개 주말 약속을 잡는다. 특정 팀에 소속되어 있을 때는 나 또한 그나마 비슷한 루틴이 보장되기에 크게 문제 될 게 없었다. 미묘한 균열이 발생하는 건 바로 최근과 같은 시기다. 예고 없이 오퍼가 들이닥치고 하루이틀 안에 작업물을 전달해야 하는 철저히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살 때 말이다.


구성작가가 아닌 번역가로 살 때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어 주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이런저런 일을 한다. SNS 홍보 콘텐츠의 텍스트를 작성하거나 번역 프리뷰(외국인 출연자의 멘트를 문장 단위로 번역하고 타임 체크를 하는 작업이다), 예능 프로그램 자막 정도가 단골 부수입인데 한 번은 선배의 제안으로 프로그램 한 시즌 내내 자막 작가로서 참여하게 됐다. 작업 스케줄은 주로 주말을 끼고 있었고, 가편집본이 나오는 일정은 대중없어서 금·토·일·월요일은 작업할 게 없어도 집에서 꼼짝없이 대기해야 했다. 중간중간 촬영과 편집, 방송 스케줄을 조절하며 한 주 정도 쉬어가기도 했다. 다행히도 그 시기에는 한일 합작 프로그램이 다수 제작되고 있어서 타이밍만 맞으면 번역 프리뷰 작업도 할 수 있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날이 이어졌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통장이 풍년일세, 풍년이야!


귀하디귀한 일복 터진 시기에 나도 모르게 무슨 미끼를 던졌는지 한동안 소식이 없던 친구에게도 연락이 왔다. 간만에 얼굴이나 보자! 반갑긴 한데 달갑진 않았다. 왜 하필 지금? 나 일복 터진 거 안 보이니? 친구는 보지도 못할 폭풍 마른세수를 하며 주말에 자리를 비우기 어려운 사정을 설명하자 친구는 “그럼 그냥 일 마무리되면 봐야겠네.” 속전속결로 대화를 끝맺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부터였던 듯하다. 우선순위를 매기고 기회비용을 따지기 시작한 시점이.


친구를 만나기로 한 날 일이 들어왔다고 해 보자. 약속을 무르고 일을 하면 30만 원을 번다. 친구를 만나면 30만 원은 없던 일이 된다. 되레 지출이 발생한다. 살벌한 고물가 시대에 밥 먹고 커피 마시면 10만 원이 훌쩍이다. 그렇게 친구를 만나는 선택의 기회비용은 30만 원, 여기에 예상 지출 10만 원까지 더하면 체감 손실액은 40만 원에 달한다. 월 40만 원도 아니고 일 40만 원은 좀 타격이 크다.


처음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회의나 촬영이 없을 땐 재택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아 상대적으로 스케줄이 유연하니 당연히 내가 친구들에게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했다. 하지만 작업을 거절하고 약속을 지키는 일이 반복되자 살짝 억울해졌다. 온라인 게임인에게 주말 약속은 휴일의 리프레시지만 프리랜서에게 주말 약속은 경우에 따라 생업의 포기와 다름없다. 단순히 그날 하루의 작업이 날아가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작업을 자주 거절하다 보면 제안하는 입장에서도 이 사람은 주말 작업은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해져서 후순위로 밀려난다. 알게 모르게 거래처를 하나둘 잃는 셈이다.


가뜩이나 일거리 흉년에는 더하다. 약속을 잡아 놓고도 ‘하필 오늘 일이 들어오면 어쩌지?’ 하는 초조함이 가시질 않는다. 어떤 작업 의뢰가 오더라도 오늘만큼은 절대 좌절하지 않으리라. 끝내주는 오프데이를 보내겠어. 굳게 마음먹은 날에도 현관문을 열기 직전이나 광역버스에 몸을 실은 순간 [작가님(번역가님) 혹시 오늘 작업 가능하실까요? (눈물)(눈물)] 톡 미리보기가 뜨면 친구와 보낼 즐거운 시간보다 눈물을 머금고 떠나보내야 하는 페이가 가장 먼저 아른거린다.


친구들과의 약속도 그렇지만 그야말로 삶의 질과 직결되는 일도 그렇다. [내일 오전 중으로 가능할까요? 급한 건이라서요. 무리한 부탁드려서 죄송합니다.] 저녁을 먹는 중 도착한 톡에 눈을 가늘게 뜨고 내일의 컨디션과 밤샘의 보수를 저울질하고 있자면 늦어지는 답장에 상대도 애가 타는지 페이를 1.5배로 부른다. 나를 돈으로 사려고 하는 겐가! 날 모욕할 셈인가! …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돈이었다. 어차피 촬영 시즌에는 밥 먹듯이 하는 밤샘인데. 까짓것 하지, 뭐. 하지만 밤샘은 필연적으로 다음 날의 난조를 부른다. 나이 앞자리가 바뀌고 나서는 다다음 날까지 여파가 계속된다. 수면 부족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카페인을 들이부을 때 몰려오는 자괴감이란.


프리랜서에게 돈은 단순히 더 많이 벌면 좋은 보상이 아니라 필수 코스처럼 겪을 수밖에 없는 일감 공백기를 버티게 해 주는 일종의 보험이다. 그러니 일을 거절하면서 “오늘은 삶을 선택했어!” 하고 낭만에 취하기도 어렵다. 문제는 그렇게 현실적으로 시작한 계산이 어느새 삶의 모든 선택에 끼어들었다는 데 있다.


프리랜서 12년 차인 지금도 여전히 어렵다. 돈이냐, 삶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쪽이 더 고귀한지 나는 아직도 답을 내리지 못하겠다. 아마 내가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청산하기 전까지 영원히 계속될 난제다. 이 난제에 어떠한 형태를 더해야 참 명제가 되고 진리가 될지 오늘도 곧 시작해야 할 밤샘 작업 하나를 준비하며 어김없이 고민한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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