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난이다. 일할 곳이 없다는 하소연이 여기저기서 들리는데 한편에서는 구인난이란다. 일할 사람이 없다나. 일반 취업 시장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프리랜서로 굴러가는 방송계에서도 구직난과 동시에 구인난이라는 아이러니한 바람이 분다. 나 역시 강제로 쉬었음 작가가 된 지 1년을 바라보고 있지만 주변에 똘똘한 후배 작가 없냐는 연락이 수시로 온다. 요즘에 작가 너무 없다는 소리는 원 플러스 원. 마음 같아서는 연차와 페이를 깎아서라도 지원하고 싶다. 내 연차쯤 되면 일단 자리가 없다. 여느 집단이 그렇듯 방송작가도 피라미드 구조라 눈칫밥을 많이 먹으면 밥상에 앉을 기회도 줄어든다.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픈데!)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는 각자의 사정에서 기인한다. 고용주야 이만하면 양반이라는 입장일지 몰라도 노동자는 그렇지 않거든. 노비를 하더라도 대감집 노비를 하라고, 기왕이면 처우가 낫거나 규모가 큰 곳으로 눈이 돌아간다. 일반 취준생이라면 중소기업보다는 중견기업, 조금 더 욕심을 보태 대기업을 희망할 테고 방송작가라면 외주보다는 본사, 시즌제보다는 고용 안정성이 보장된 정규 프로그램, 마이너보다는 메이저 프로그램을 갈망하겠지. 여기에 개인적인 취향까지 더한다면 내 경우 아직은 OTT나 유튜브 콘텐츠보다 TV 프로그램을 하고 싶은 바람이 크다. 그래도 방송작가잖아.
죽으란 법은 없는지 가물에 콩 나듯 자리가 나긴 한다. 통장에는 진돗개 둘, 지갑에는 데프콘 5단계가 발령된 지 오래라 앞뒤 재지 말고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내야 하거늘 공고를 심드렁하게 보다가 뒤로를 누른 적이 벌써 여러 번이다. 엄마가 알면 등짝 스매시각이지만 내키지가 않았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쌍수 들고 동의한다. 직업 특성상 다양한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여럿 만난다.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얽히며 느낀 바는 슬롯적으로 추앙받는 자리에 있다고 해서 인간적으로도 명망 있지는 않다는 거다. 되레 평범한 이들 앞에서 절로 겸손해지는 경우가 잦았다.
서글프게도 프로그램에는 귀천이 있다, 고 믿는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말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면서 끌 생각 없이 타들어 가도록 방치하고 있는 내 태도가 가장 큰 증거다. 나 역시 간판의 급을 따지는 인식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게 만드는 사람들이, 상황들이 있었다.
프로그램과 나의 티어를 동기화하는 주체는 크게 셋이었다.
하나, 연예인. 업계가 업계인 만큼 아무래도 빼놓고 얘기하기가 힘들다. 출연 아티스트가 타 프로그램에서 선보인 개인기 반응이 좋아 요청했더니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단칼에 고개를 저었다. 고작 한 번 거절당했다고 얌전히 넵무새가 될 수는 없어서 다시 한번 요청하자 이번에는 매니저가 가세했다. 사실 아티스트 이미지도 있고 어쩌고저쩌고. 이미지가 자아 탑재한 띠부씰도 아니고 프로그램 가리면서 탈부착될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지만 분위기가 험악해져서 좋을 건 없으니 웃으면서 정리했다. 물론 제작진 사이에서 볼멘 이야기가 나온 건 별개의 문제다. 거기서는 했다며. 여기서는 왜 안 돼? 뻔하지, 뭐. 제작진 혹은 프로그램 자체가 스타 등용문으로서의 권력을 지닌다면 아무리 싫다고 한들 배짱 있게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주 단위로 화제성이니 브랜드 평판이니 공개적으로 등급이 매겨지는 업계다. 본인들도 세상을 바라볼 때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겠지. 이해는 한다. 이런 케이스는 비일비재해서 자존심에 스크래치도 나지 않는다.
둘, 그들의 스태프. 여기서부터는 살짝 생채기가 생긴다. 친한 선후배 작가들과 술자리를 가졌을 때다. 선배는 정규 음악 프로그램에, 후배는 아이돌 예능 프로그램에 몸담고 있을 동안 나는 정신적 번아웃을 호소하며 방송작가 타이틀에 잠정 휴업을 때리고 다른 분야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방송쟁이들이 모여서 하는 얘기란 99%가 대외비에 뒷담화 한 스푼 첨가한 신세 한탄인지라 장소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우리가 고른 가게는 자리를 구분하는 칸막이마다 가림천이 걸려 나름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는 곳이었는데 천이 펄럭일 때마다 안에서는 밖이, 밖에서는 안이 슬쩍 보이는 것만은 막을 수 없었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데 묘하게 시선이 느껴졌다. 우리 자리를 부러 확인하려는 듯한 인기척. 천 너머의 인영은 금세 사라졌지만 얼마 뒤 화장실에 다녀온 후배가 호들갑을 떨며 등장했다. “우리 바로 뒤 테이블, 매니저들 같아요!”
지금까지 무슨 얘기 했지? 빨리 떠올려 봐. 뒤늦게 입방정 심의에 들어가는데 별안간 천이 걷히며 얼굴 하나가 불쑥 들어왔다. “작가님 맞았네!” 정체는 후배의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는 아이돌 그룹의 매니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너스레를 떨며 은근슬쩍 테이블에 합류했고 유일하게 안면을 튼 후배가 자연스럽게 통성명을 주도했다. “여기는 지금 ×× 하고 계시는 C작가님이고요, 여기는 H작가님(=나)입니다.” 내 사정을 아는 후배가 프로그램을 언급하지 않고 센스 있게 넘어갔는데도 눈치 없는 매니저는 굳이 그 센스를 걷어찼다. “지금은 어디 계세요?” 이런 일 하루이틀 겪을쏘냐. 나 역시 늘어난 숫기로 내향인의 남은 에너지 한 방울까지 쥐어 짜 ”따로 하는 건 없고 잠깐 쉬고 있어요.” 친절하게 미소까지 곁들여 대답했건만 돌아온 건 “아, 네.” 미소가 사라진 버석한 대꾸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렇게나 바라던 이직에 성공했다. 직바카라은 기대하시라, 두구두구두구… 투명 인간! 대화의 핑퐁은 나를 제외한 두 사람에게만 향했다. 피해의식 내지는 자격지심일지는 몰라도 아티스트가 출연해야 하는, 잘 보여야 하는 프로그램의 작가 둘과 그럴 필요가 없는 무직의 작가 하나를 대하는 태도의 온도 차는 명확했다. 하는 프로그램이 없으니까 할 말이 없었던 거 아니냐고? 글쎄, 누구 하나 소외시키지 않고 두루 어울리는 걸 우리는 슬롯성이라고 불러요.
매니저는 짧고 굵게 존재감을 표출한 뒤 우리 테이블의 술값을 계산하고 사라졌다. 현직에 있는 두 작가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였으리라. 얼떨결에 꽁술을 얻어먹은 나는 선배와 후배 앞에서 아싸, 아싸 노래를 불렀고 귀갓길 버스 안에서는 어흑, 어흑 설움을 삼켰다.
셋, 이자 마지막은 놀랍게도 같은 작가들이다. 가까운 이를 등판시켜야만 하는 안타까운 시간이 오고야 말았다. A와 B는 막내 작가 시절 고락을 함께한 동기들이다. 온갖 억까가 난무하던 현장에서 서로의 유일한 대나무 숲이 되어주며 동지애가 끈끈해졌다. 프로그램이 시즌제로 개편되자 다음 시즌에는 쿨하게 합류하지 않기로 새끼 손가락을 걸기까지 했다. 우리 중 가장 먼저 재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A로 무려 지상파 주말 예능 프로그램에 들어가게 됐다. B는 어느 정도 휴가를 즐기다가 종편의 신규 예능 프로그램으로 복귀했고, 나는 두어 달을 더 빈둥거린 후 음악 전문 채널의 인기 시리즈 후속 시즌 프로그램에 합류했다. 이후로도 나와 A는 대중성 내지는 화제성을 잡은 프로그램을 주로 거쳤고 B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프로그램에서 경력을 이어갔다.
하루는 A가 근무하던 제작사 근처에 볼 일이 있어서 간 김에 짬을 내어 A를 만났다. 얼굴을 보는 건 간만이라 추억팔이를 하다가 자연스레 B의 근황이 화두에 올랐다. 요즘에 뭐 한대? 지금 □□ 할걸. 얼마 전에 스토리 올렸더라고. 내 대답에 A는 빨대로 얼음만 덜그럭거리는 컵을 휘적였다. B도 조금만 참지. 더 좋은 자리 날 때까지 기다렸으면 잘 풀렸을 텐데.
“시작을 잘못 끊으니까 계속 자잘하게만 돌잖아.”
순간 리액션이 고장났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어 다급히 화제를 돌렸다. 나도 다음 달에 백수 컴백이야. 언니들 바짓가랑이 잡으러 가야 돼. 부러 과장되게 눙쳤고 대화도 금세 다른 방향으로 튀었지만 A의 말은 요일이 바뀌고 달이 바뀔 때까지 묵직하게 남았다. A의 말에는 묘한 안타까움과 은근한 무시, 답답함 등의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친한 동기로서 친구가 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지언정 B의 삶을 ‘안 풀렸다’라고 단정할 수 있는 기준과 자격이 어디 있을까.
SNS로 엿본 B의 삶은 누구보다 갓생에 가까웠다. 칼퇴의 축복을 누리며 남는 시간에는 투잡, 쓰리잡까지 소화했고 이따금 멀리 여행도 떠나는 등 누구보다 알차고 단단한 하루를 만끽하고 있었다. 제삼자에게 24시간 중 20시간을 사무실에서 썩어가는 내 삶과 B의 삶을 보여주고 잘 풀린 삶을 고르라고 한다면 단연 후자를 선택할 터였다. 그래서 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걸어 다니는 브랜드들이 쓴소리한다, 이건 이해가 가지. 손대는 것마다 대박 터뜨리는 미다스들이 훈수를 둔다, 이래야 납득하는 척이라도 한다고. 결정적 의사 권한 하나 없이 시키는 일만 하기에도 바쁜 을병정 신세에 프로그램이 어쩌네, 인생이 저쩌네 하면 근데? 이러는 거다. 나한테나 좀 이슈 됐다. “너… 뭐 돼?” 하고.
이 바닥에서 잘나가고 못 나가고의 경계는 허무하게 무너진다. 인력은 돌고 돈다. 한 방송사의 간판 프로그램 대본을 쓰던 작가가 어느 날은 소소한 지역 축제 행사 대본을 쓰기도 하고, 내로라하는 국민 프로그램을 줄줄이 꿰차던 작가가 별안간 고용 불안정에 신물이 난다며 자그마한 사내 방송국으로 훌쩍 이직하기도 한다. 반대로 내내 잔잔바리 프로그램만 하던 작가가 마침 대형 프로그램에 본인 연차 자리가 공석이 생겨 합류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규모가 다르고 화제성이 다르고 시청률이 다르더라도 그 차이가 제작진이 쏟은 노동의 가치나 절실함까지 결정하는 건 아니다. 잘되는 프로그램은 잘되는 프로그램대로 사람이 갈려 나가고, 조용한 프로그램은 조용한 프로그램대로 사람이 갈려 나간다.
여기에 소신 발언 하나 하자면 이력서에 번지르르하게 나열된 타이틀이 그 작가의 진짜 실력을 100% 증명해 주지도 않는다. 순전히 능력보다는 인맥과 라인, 타이밍으로 간판을 쟁취하는 생리를 작가들 스스로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가 프로그램을 곧 정체성으로 동기화한다는 사실이 참 의아하다.
이해관계로 엮인 연예인이나 매니지먼트 관계자가 프로그램으로 티어를 나누고 대우를 달리하는 건 비즈니스 생태계라 치자. 출연자 수발들고 방송사 녹 먹고 사는 같은 처지의 프리랜서 작가끼리 급을 나누고 우월감을 느끼는 모습은 ─필터링 없이 말해─ 솔직히 짜친다. 타이틀 하나가 이력서에 한 줄은 채워줄지언정 사람값을 매겨 주지는 않는다. 하물며 남의 타이틀을 보고 그 사람을 재단할 자격은 더더욱 주지 않고 말이다.
자의식 과잉 예방하고 건강한 삶을 되찾자. SNS발 명언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여전히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일회성 간판에 자아를 의탁한 이들이 있다면 얼른 깨어나시기를 바란다. 어차피 우리는 다 같이 다음 밥벌이를 걱정해야 하는, 결코 자유롭지 않은 언프리랜서들이니까…
라고 있어 보이게 마무리하려던 순간 선배한테 톡이 하나 날아왔다. 미리보기 창으로 짐작건대 이건 분명 일자리 오퍼다.
─ 리수야, 지금 쉬고 있지? 혹시 ○○ 생각 있어?
“앗, 언니. 그건 좀 힘들 것 같아요….”
◉ Off the Record
프로그램을 가려서 선택하는 데에는 개인의 기준과 취향도 있지만 앞으로 이야기할 '블랙리스트'의 영햐도 있다. 방송계에는 작가뿐 아니라 다른 직군과 제작사를 대상으로 한 블랙리스트가 암암리에 존재한다. 프로그램 자체는 이름난 작품이라도 제작진의 평판이 좋지 않은 경우가 있고, 임금 체불과 같은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제작사도 적지 않다.
방송작가협회 가입 조건 역시 고려 요소 중 하나다. 작가의 권익을 보호하고 저작권료 등의 권리를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협회에 가입하려면 일정한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경력이다. 문제는 이 경력이 여전히 TV 방송을 중심으로 인정된다는 점이다. TV가 아닌 다른 플랫폼에서 몇 년간 콘텐츠를 제작해도 협회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경력은 0년으로 처리된다. 결국 협회 가입을 염두에 둔 작가들은 다른 플랫폼에서 경력을 쌓기보다 TV 프로그램을 우선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