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을 퍼센테지로 받는다고요?

by리수


무급 혹은 최저 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쥐꼬리 월급을 주며 열정과 간절함을 이용해 노동력을 착취하는 열정페이 논란은 식지 않는 뜨거운 감자다. 처음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서 앞다투어 제보를 받을 때 우리는 코웃음 쳤다. 뭐 하러 수고스럽게 사례자를 찾아? 당장 그 층만 뒤져도, 아니 팀 내만 뒤져도 열정페이 받고 일하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스태프 착취 논란이 잠잠할 만하면 불거지면서 그들의 처우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덕분에 요즘은 막내 작가들의 사정은 상당히 개선됐다. 여전히 업무량은 산더미겠지만 적어도 내가 120만 원을 받던 과거처럼 돈 때문에 허덕이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막내 작가들의 페이가 보장되자 연차별 페이를 받기 시작하는 4~5년 차 서브 작가들이 막내보다 적게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다. 이 이야기는 기회가 된다면 차차 풀어보도록 하고, 사실 열정페이에 버금가게 작가들이 뒷목을 잡는 부분은 따로 있다.


프리랜서는 크게 두 가지 경우로 나뉜다. 하나는 리터럴리 프리랜서. 건당 그러니까 하나의 결과물에 대한 보수를 받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계약 형태만 프리랜서일 뿐 실질적으로 임직원과 거의 동일한 형태로 근무하는 경우다. 방송 작가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 진리에 따라 전자에 해당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후자에 속한다.


작가 공고는 대개 구인 연차, 근무지, 제작사, 투입 시기, 고료(주당 페이) 등의 간단한 정보와 함께 게시된다. 눈여겨봐야 할 항목은 온라인 게임인이라면 누구나 일 순위로 눈이 가는 고료, 즉 페이다. 여기는 사실상 고정 문구다. 면접 시 협의. 그런데 간혹 다음과 같은 문구가 따라붙는다.


[기획료 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기간에는 네가 받을 페이의 일정 비율만큼만 지급하겠다는 소리.


자, 수많은 의문이 떠오를 텐데 먼저 기획 기간부터 설명해야겠다. 기획 기간이란 간단하게 말해 방송이 나가기 전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예를 들어 하나의 프로그램을 위해 1월 1일부터 팀이 출범하여 업무를 시작했고 4월 1일에 첫 방송이 나갔다면 1월부터 3월까지의 3개월이 기획 기간이 된다.


규모가 작거나 단발성 프로그램은 한 달 길어야 두 달가량의 준비 끝에 곧바로 촬영에 돌입한다. 문제는 제작 규모가 커지고 정규보다는 시즌제 프로그램이 늘어나는 등 콘텐츠 제작 환경과 방식이 달라지면서 기획 기간이 기약 없이 길어졌다는 거다.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반년 가깝게까지. 기획료란 바로 이 기획 기간에 지급되는 고료다.


기획료는 본 페이의 70~80%가 가장 보편적이다. 퍼센티지로만 보면 이게 그렇게 문제가 될 일인지 와닿지 않을 수 있으니 가정을 해 볼까. 주당 페이가 100만 원이고 한 달을 4주로 칠 때 한 달 페이는 400만 원이다. 그런데 기획료를 적용하는 순간 280만 원 내지는 320만 원으로 보수가 확 깎인다. 일은 일대로 하는데 아직 방송이 나가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월급의 상당 부분이 날아가는 거다.


받아야 할 페이의 일부만 지급한다는 건 그만큼 업무가 널널해서이지 않냐고? 천만의 말씀(궁서체, 굵게 강조).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오히려 기획 기간에 업무 강도가 제일 높다고 느껴진다. 막차 시간을 훌쩍 넘기는 마라톤 회의가 계속되고(택시비도 제대로 안 주면서!), 그 끝없는 회의를 위한 자료 조사와 기타 업무는 회의 전후로 처리해야 한다. 안 그래도 빡센 업무가 빽빽하게 몰아친다. 설령 업무량을 기준으로 기획량을 바카라정한다고 해도 본인의 경우에 대입해 보자. 온라인 게임인 여러분, 회사에서 당장 할 일이 적다는 이유로 월급을 삭감하면 얌전히 수긍할 수 있겠어요?


기획료를 극단적으로 낮춰 50%까지 바카라정하는 것도 봤다. 그러면 본인들도 겸연쩍은지 혀가 길어진다. 대부분 재택이고 회의나 촬영 때만 출근하면 돼요. 투잡도 가능하고요. 엄청난 아량을 베푸는 양 덧붙이는데 오퍼 하나하나가 아쉬운 처지이니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속에서 치솟는 반항심까지 막기는 어렵다. 재택근무를 한다고 업무량이 줄어드나요? 프리랜서는 원래 자기 능력껏 투잡, 쓰리잡을 하는뎁쇼. 반대로 기획료를 100% 지급해도 생색을 낸다. 아니, 사람이 일을 하면 기존에 받았던 페이만큼은…! 더 이야기하면 화병만 나니 여기까지만, 흠흠.


살짝 궤를 달리하지만 막내 작가 시절 이런 일도 있었다. 주당 페이 40만 원으로 한 달 160만 원을 받기로 하고 들어간 프로그램이었다.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2회 분량이었는데 예정된 날짜에서 편성이 2주 정도 밀렸다. 그리고 출근한 지 두 달을 향해갈 무렵 메인 피디님이 나를 소환하더니 예상치 못한 제안을 했다.


“리수 씨, 휴가를 한 주 주려고 하는데 어때요?”


어떠냐뇨, 당연히 오케이입니다. 여름의 문턱에서 일을 시작해 짧은 기간 동안 바짝 달려야 했던 터라 휴가는 언감생심이었던 참. 감사한 마음에 넙죽 절이라도 올리고 싶었건만 이유를 알고 나자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되레 좋아할 수 없는 제안이라는 걸 깨달았다.


해당 프로그램은 메인 작가가 회당 250만 원씩 총 500만 원을 받기로 되어 있었다. 나처럼 주당 페이를 받는 게 아니어서 메인 작가님은 편의에 따라 출퇴근을 했다. 그런데 편성이 밀리면서 촬영 후 후반 작업까지 포함한 내 출근 기간이 약 한 달 늘어나자 내가 받을 페이의 총액이 메인 작가님보다 많아졌다는 거다.


“아무래도 막내 작가가 메인 작가보다 많이 받는 거는 좀… 그렇잖아요.”


무급 휴가를 줘서 페이를 조정하겠다는 의도였다. 지금이라면 조목조목 반박하거나 적어도 조건을 확실히 하고 넘어갔겠지만 당시에는 어디 물어볼 사람도 없었고 이 업계는 원래 이런가 싶어서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휴가는 잘 즐겼냐 물으신다면 그럴 리가. 첫날부터 카지노톡으로 쏟아지는 업무를 처리하느라 진땀을 뺐다. 정말 휴가라고 생각해서 놀러 나갔었거든. 리수 씨, 이것 좀 찾아주세요. 자료는 언제 줄 거예요? 여기 연락해서 가능한지 물어봐요. 왠지 촉이 좋지 않아 노트북을 들고 나간 게 천만다행이었지. 휴가라는 이름만 붙었을 뿐 일은 일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받지 못한 일주일이었다.


이때부터 그 팀이 다른 의미로 범상치 않다는 걸 알아봤어야 했는데 슬롯 초년생을 막 벗어난 쪼렙은 경험치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매일 출근 도장을 찍어야 하는 피디들을 제외하고 작가라고는 나 혼자만 근무했던 3주 간의 후반 작업을 마치고 통장에 찍힌 금액은 약 85만 원. 3주 치인 120만 원이 들어와야 하는 거 아닌가? 고개를 갸웃하다가 왜 이런 싹수없는 금액이 찍혔는지 계산기를 두드리는데 며칠 전 행정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던 게 기억났다.


“그러니까 21일까지 일요일까지가 아니라 19일 금요일까지 출근하신 거죠?”


왜 그렇게 요일과 날짜에 집착하나 싶었는데 퍼즐이 맞춰졌다. 한 주는 7일이니 주당 페이 40만 원을 7로 나누고 주말을 제외한 평일 5일을 기준으로 계산하여 15일에 해당하는 85만 원이었다. 식대? 당연히 제공되지 않았고 한 주는 휴가를 빙자한 무급 노동을 했는데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켜야 할 도의는 지켜야지. 이후로 난 해당 제작사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어쨌든 이런 말도 안 되는 페이 형태의 탄생 배경에는 한정된 제작비가 있다. 제작비가 부족하면 가장 먼저 삭감 대상에 오르는 건 만만한 작가들의 페이다. 회당 수백만 원에서 때때로 천만 원은 거뜬히 받아 가는 아티스트의 출연료를 조금만 낮춰도 이런 일은 없을 텐데 말이다.


진짜 씁쓸해지는 순간은 고액 출연료 논란이 일 때다. 대다수는 출연료 조절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일각에서는 그만큼의 영향력이 있으니 그 정도 받는 게 마땅하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당장이라도 키보드 배틀을 뜨고 싶은 마음이 손끝까지 차오른다. 우리가 흘리는 노동의 가치가 그렇게나 하찮을까? 출연료로 치환되는 연예인의 몸값은 우리가 정성껏 차려놓은 밥상이 있어야 가능한 건데. 게다가 무리하게 고가의 출연료를 쏟아붓는다고 해서 그에 상응하는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돈 가지고 그러는 게 제일 치사하다. 돈 몇 푼에 유난 떠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도 않고 고작 돈 때문에 꿈을 품고 시작한 일을 망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노동의 가치가 저절로 지켜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아무 말 없이 감수할수록 당연한 게 된다. 참고 묵인해야 하는 관행이 된다. 언제부터 정착됐는지 모르는 기획료에 대다수의 작가가 불만을 품지만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듯 말이다. 단순히 떼를 쓰며 돈을 더 달라는 억지가 아니다. 밤새워 기획하는 우리의 노동에도 최소한 정당하고 존중받는 대가가 지불되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가 완성하는 방송의 가치만큼 그 뒤에 숨은 우리의 가치도 온전히 인정받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한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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