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SNS에 팬들의 심장을 저격한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MC를 보는 인기 아이돌, 그의 손에 들린 큐카드, 그리고 큐카드 속 멘트에 삐뚤빼뚤 칠해진 노란색 형광펜. 자유분방 그 자체인 형광펜 흔적을 보고 팬들은 앓았다. 내 새끼, 고사리손으로 한 줄 한 줄 체크하며 대본 읽었을 생각하니까 엄마는 눈물이 나요. 내가 낳을걸! 사진과 함께 팬들의 반응을 캡처해 친구에게 전송하자마자 답장이 왔다.
─ 저거는 말이죠. 막내 작가가 시간이 없어서 하, 모르겠고 대충 알아볼 수만 있으면 된다는 심정으로 무대 올라가기 직전까지 무지성으로 쫙쫙 그어 손에 쥐여줬다…에 제 통장을 걸겠습니다.
하루는 작가 선배에게 이런 이야기도 들었다. 지인들과 모인 자리에서 답사 차 모종 시장에 다녀온 썰을 풀었더니(출연자가 미니 도시텃밭을 가꾸는 아이템을 준비 중이었다) 그런 것까지 미리 섭외하는 거냐며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는 거다. 연말 시상식을 담당했을 때도 작가가 시상식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하냐는 질문을 받았다며 선배는 귀여운 울분을 토했다. 아니! 사람들은 연예인들이 시간 맞춰 딱딱 출근하고, 제 발로 대기실 찾아 들어가고, 알아서 큐카드 들고 나와 시상한 다음에 얌전히 퇴근하는 줄 아나 봐. 작가가 수족처럼 철썩 달라 붙어있는데!
“우리는 작가가 아니라 잡가(雜家)지.”
방송 작가 지망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 말이다. ‘잡’이라는 단어는 대개 비하와 부정적인 뉘앙스를 포함하기에 처음에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발끈했다. 지금은 자조적으로 내가 먼저 방송 잡가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기는 여전하다.
작가라는 단어는 왜인지 있어 보인다. 소설가나 시인과 같은 직업군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인지 단어가 풍기는 인상이 고상하다. 갓 내린 커피를 우아하게 마시며 잔잔한 노래를 배경음악 삼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이미지랄까. 일단 나 같은 예능 작가와는 거리가 먼 정도가 아니라 멀티버스급 별세계 이야기이고, 라디오 작가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언젠가 어느 라디오 작가님이 “요즘 그렇게 대본 쓰시는 분은 누구누구 작가님밖에 없을걸요.”라고 인터뷰한 기사를 보고 장르의 벽을 넘어 깊은 동지애를 느꼈다. 저런, 라디오국에서도 시뻘건 눈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반려 커피와 함께 날밤을 새우는 군요.
잡가 소리를 듣는 이유는 간단하다. 앞서 맛보기로 찔끔 소개했지만 이런 것까지 해? 싶을 정도로 하는 일이 많고 다양해서다. 방송 작가의 정식 명칭이 방송 구성작가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화면 안팎의 모든 요소를 구성하는 사람이 바로 구성작가다. 지망생 시절 아카데미에 특강을 나온 작가님의 말을 빌리자면 가령, 유유자적 힐링 시골 라이프를 담은 야외 버라이어티를 찍는다고 가정할 때 아궁이 위치, 수저 개수, 조미료 종류, 그릇 디자인 등등까지 하나하나 고심한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붙일 이름표 위치를 정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는 비하인드도 들었다. 그냥 대충 배때지 어드매에 붙이는 거 아니었어요? 아니야, 회의를 얼마나 많이 했는데. 나름의 규정이 있었다고. 팔을 내렸을 때 팔꿈치 선을 기준으로 붙이는 게 화면으로 봤을 때 제일 이상적이었거든. 띠요옹, 그렇게까지!
제작사나 팀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작가로서의 공통된 주 업무로는 자료조사, 리스트업, 섭외, 대본 및 구성안 작성 등이 있다. SNS에 올라가는 마케팅 콘텐츠를 작가가 관리하는 경우는 제법 보편적인 듯하고 나는 정산을 담당하기도 했다. 매니지먼트의 제안으로 아이돌 팬 이벤트를 진행했을 땐 경호팀 서포트와 팬 매니저 역할도 수행했다. 입장 번호표를 거래하는 행위를 색출하며 팬들과 언성을 높일 땐 살짝 현타도 왔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프로그램 장르도 잡가력을 더하는 데 한몫한다. 때로는 사학자였다가 하루아침에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변신하고, 한 달 전에는 공인중개사로 활약했는데 오늘은 셰프와 함께 레시피를 연구하는 보조 조리사가 된다. 나는 일본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로 종종 땜빵 통번역가로 활동했다. 낚시 예능에 몸담았던 후배 한 명은 흔들리는 통통배에서 멀미와 사투를 벌이며 구겨져 있다가 인터컴 너머로 “○○○ 일 미터!” 같은 소리가 넘어올 때마다 자동 반사처럼 목청껏 복창했다고 한다. (“언니, 저 수산 경매시장에서 일하는 줄 알았잖아요.”) 또다른 후배는 아예 자기 이름을 걸고 구성부터 출연까지 도맡았다. 모르지, 또. 심리 상담 프로그램에서 만난 우리 셋이 1년 뒤에는 온갖 콘서트와 시상식 레퍼런스를 파묘하는 기간 한정 공연 연출가 타이틀을 달고 있을지 말이다.
여기까지는 사실 괜찮다. 프로그램 제작과 관련된 잡다한 일이기 때문이다. 감당할 수 있고 이해도 한다. 업무 바운더리를 넓혀 두면 정착하지 않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프리랜서로서 어딜 가도 비벼 보기는 할 테니까. 하지만 잡다한 일을 하는 것과 잡일을 하는 것은 다르다. 잡가 취급을 당하며 발끈하게 되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제작 선상에 있는 일이라면 아무리 자잘하고 사소해도 결국 프로그램을 만드는 업무의 일부다. 하지만 프로그램과 하등 상관없는 일까지 ‘작가’라는 이유로 짊어지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진다.
막내 작가 시절의 일이다. 피디님 아내의 생일이니 적당한 가격대의 선물을 사 오라는 심부름을 시작으로, 본인의 체면치레 차 내 의사를 묻지 않고 마련된, 원치 않던 소개팅에 억지로 나가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 적이 있다. 시큰둥한 내 반응을 상대가 눈치챘는지 만나기도 전에 소개팅이 파투로 끝나자 다음 날 자리를 주선한 메인 작가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해야 했던 일은 여전히 잊히지 않는다. 포토샵을 잘 다루는 막내 작가에게 대학원 발표 자료를 대신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피디도 있었다. 회식 자리에서 메인 작가가 막내 작가에게 다른 테이블에 가서 헌팅을 해 오라고 부추겼다는 이야기를 건너 듣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며칠 전에는 작가들이 구인구직 정보를 공유하는 그룹톡방에 피디의 부탁으로 편집자를 구한다는 공고가 올라왔는데 민심, 아니 작심이 아주 흉흉했다. 이제는 작가가 피디들한테 편집자까지 구해줘야 하나요? 애초에 여기는 작가들만 들어올 수 있는 공간입니다!
원활한 업무를 위해서 작가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하는 게 맞다. 이건 연출팀에게도 해당한다고 감히 생각한다. 현장에서 서로의 일을 나누고 빈틈을 메우는 건 자연스럽다 못해 바람직하다. 문제는 경계가 흐려질 때다. 경계의 영역에 있는, 모호하고 귀찮은 일뿐만 아니라 업무와 사적인 부탁들은 거름망을 거치듯 기가 막히게 작가에게 쏟아진다. 더욱 씁쓸한 지점은 때로 작가들이 먼저 나서서 잡일을 자처하는, 자처해야만 하는 현실이다. 아마도 프리랜서라는 특징상 우리의 생사고락을 쥐고 있는 이들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겠지.
전문 업무와 비전문 잡무가 뒤섞이다 보니 방송 작가는 전문성과는 동떨어진, 아무거나 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무례한 시선이 던져지기도 한다. 우리가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는 건 물론 방금 언급한 현실적인 이유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세상에 내놓을 프로그램에 대한 바카라임감 때문이다.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 한 발 더 뛰고, 한 번 더 확인하고, 내 일이 맞나 싶은 자잘한 일까지 챙긴다. 그리고 다시 한번 따져 보자. 수많은 영역을 넘나들며 아무것도 없는 빈 화면 위에 세계 하나를 올려놓는 일을 과연 아무나 할 수 있을까?
잡가가 아닌 작가로 남으려면 무엇보다 스스로 명확한 선을 그어야 한다. 절대 녹록지 않은 일이다. 연차가 두 자릿수에 접어든 나조차 그건 저희가 할 일이 아니라고 선뜻 말하기가 주저되기 때문이다. 어렵게 입을 떼더라도 상급자의 지시 앞에서는 수긍할 수밖에 없다. 업무를 종용하는 작가 선배 역시 마음이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일 거다. 다음 일감을 쥐고 있는 사람에게 선을 긋는다는 건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관행을 바꾸려면 개인의 용기만큼이나 조직의 분위기와 선례가 필수다.
실질적인 목소리를 내어 의미 있는 균열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건 결국 앞선 자들이다. 제 밥그릇은 제가 챙겨야 하는 프리랜서라지만 그래도 한솥밥을 먹는 동지 아닌가. 이 길에 먼저 뛰어든 선배들이 올바른 선례를 만든다면 뒤이어 출발한 후배 작가들 역시 확고한 업무 기준을 세우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용기를 얻지 않을까. 지금보다 더 열악하고 척박했던 환경에서도 길잡이가 되어 준 선배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이렇게나마 소심한 목소리를 낼 수 있듯이 말이다.
바라건대 잡가로 방치하지 않고 작가로서의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의식이 조금씩 넓어졌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방송 잡가라는 비하 아닌 비하가 시대 뒤편으로 사라져 마침내 완전히 사어가 되는 날을 꿈꿔 본다.
⦿ Off the Record
#S1.
필살기라도 불러도 좋을 방송 작가 특화 업무가 하나 있다. 바로 ‘흥신소’. 온갖 손품 발품을 팔아가며 사람을 찾아 헤맨다. 국내 대부분의 커뮤니티에 가입되어 있는 건 기본이고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아 차단당한 SNS 계정과 강퇴당한 커뮤니티 ID도 한 트럭이지만 응, 가족 명의로 다시 가입하면 돼. 온라인이 여의치 않다면 오프라인으로 눈을 돌린다. 원래 아날로그가 힘이 세다. 실제로 연애 프로그램을 했던 한 동료 작가는 주말마다 핫플에 나가 하루종일 출연할 만한 사람들을 스캔하고 다녔다.
#S2.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선보이는 콘텐츠는 대부분 제작진의 테스트를 거친다. 게임은 너무 기본이라 말할 것도 없고 내 경우 아이돌이 마케팅용으로 찍을 콘텐츠의 느낌을 보겠다며 희생양이 된 적이 있다. 아니, 아이돌이 할 걸 내가 한다고 그 느낌이 살겠냐고요! 한껏 울상을 지었지만 “아니야, 해야 돼. ○○ 작가님도 했어. 작가님만 하면 된다니까?” 씨알도 안 먹혔다. 그렇게 억지로 손에 들린 카메라를 향해 쥐어짤 수 있는 모든 끼를 부리다가 밀려오는 거대한 민망함에 빛의 속도로 카메라를 껐다. 피디님, 정말 느낌만 보고 바로 삭제하셨죠? 막 인생이 무료하고 지루할 때마다 돌려보면서 비웃고 계신 거 아니죠? 저 믿어요…?
#S3.
방송 작가의 단골 동원 업무 중 하나는 바로 엑스트라다. 원활한 촬영을 위해 장소를 전체 대관하더라도 출연자만 덜렁 있으면 어색하니 스태프들이 시민인 척 빈자리를 채우는 거다. 하루는 주말 대목을 맞은 피시방에서 촬영을 진행했는데 전체 대관이 불가능해 출연자 좌석 근처 세 줄만 비워두었다. 역시나 그 빈자리는 제작진의 차지였다. 나와 동료 작가도 한자리씩 차지하고 앉아 현장 상황을 열심히 메모했는데 갑자기 옆자리로 쟁반 가득 음식이 서빙되는 거다. 알고 보니 이때다 싶어 피디님들이 작정하고 피시방 하나 다 먹지? 수준으로 메뉴를 플렉스했다는 이야기. 옆에서 고생하는 우리 것도 좀 시켜주시지! 정말 아무것도 못 먹었냐고 물으신다면 대답을 아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