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근무제는 남 일입니다
[본편 자막이야. 수정 사항 있으면 말해 줘.]
후배에게 파일을 전송하고 무심코 거울을 봤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이쿠, 어이쿠야. 내 눈. 이런 누추한 몰골이…. 내 얼굴이지만 험한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분명 씻었는데 왜 이렇게 낯빛이 흙빛이야. 집에서 재택으로 특히 자막 작업을 하는 날이면 늘 이렇다. 못 자서 퀭하게 내려온 다크서클은 디폴트고 망부석처럼 열두 시간 넘게 앉아 있다 보니 얼굴은 유분기로 번들번들. 누가 우리나라에서 기름 안 나온대? 내 얼굴이 산유국이야. 출근하면 남들 눈 보호 차원에서 쿠션이라도 두드리는 응급처치를 하겠지만 재택은 볼 사람이 없으니 맛이 가도 아주 제대로 간다. 괜히 양손을 볼 위에 찹 올려 미소를 지어본다. 더 못 볼 꼴에 화장실로 직행해 찬물을 틀었다. 일단 사람 꼴은 갖추자고.
의도치 않게 공백기가 길어지면서 어떻게든 방송업계에 발가락만이라도 걸쳐 두고자 소일거리도 마다치 않고 “시간 빌게이츠, 그 사람이 바로 나예요.” 딸랑딸랑하기 바빴던 나날. 오랜만에 들어온, 아주 감사한 자막 아르바이트였다. 여기서 ‘자막’이라 함은 방송 화면에 들어가는 온갖 효과를 말한다. 시사교양에서는 주로 이해를 돕거나 핵심을 정리하고, 예능에서는 평범한 장면에서도 캐릭터를 만들거나 특정한 상황으로 연출하여 재미를 배가하는 역할을 한다.
방송은 주 1회 송출이 일반적이다. 당연히 한 회차를 완성하는 데 주어지는 절대적인 시간 총량은 정해져 있으므로 과정별로 시간을 효율적으로 쪼개 써야만 한다. 문제는 자막을 쓰는 데 주어지는 시간이 늘 촉박하다는 거다. 편집이나 CG 등 앞뒤로 다른 과정들이 꽉꽉 끼어 있기 때문이다. 데드라인은 분량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보통 20~30분 내외의 분량이라면 넉넉하게는 이틀이나 사흘을 주기도 하지만 현실은 만 하루만 주어져도 감사할 지경이다. 대개는 ASAP이라는 문구와 함께 영상이 도착한다. 그러니까 그냥 파일을 받자마자 최대한 빨리 써서 쓰는 족족 넘기라는 뜻. 마지노선의 마지노선 데드라인까지 자막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해 들이닥치는 재앙이 바로 그 유명한 ‘굴림체 자막’과 ‘감성 자막[픽스]’이다.
그러다 보니 일단 작업을 시작하면 바카라상 앞을 떠나지 못한다. 막내 때는 식탁에 밥상을 차리는 시간조차 사치 같아 대충 시리얼을 말아 모니터 앞에서 해치웠는데 종국에는 숟가락을 들었다 놓는 행위마저 거추장스러워져서 완본 파일 전송을 클릭하기 전까지 커피만 들이붓게 됐다. 요즘에는 짬 좀 찼다고 “다 살자고 하는 짓인데! 밥은 먹어야지!” 마인드로 끼니를 챙기긴 한다. 물론 여전히 모니터 앞에서.
더 큰 문제는 자막용으로 받는 가편집본 영상이 주로 저녁에 넘어온다는 점이다. 이러면 꼼짝없이 밤을 새워야 한다. 게다가 약속된 시간에 영상을 주는 법이 없다. 오늘 오후에 나옵니다. 저녁 예상합니다. ○○ 선배가 보고 지금 수정 중입니다. 죄송합니다… 자정 전에는 드릴게요…. 작가님! 방금 보내드렸어요! 네, 지금이… 음, 새벽 두 시. 고호맙습니다. 피디님은 이제 자겠죠? 나는 기다리느라 못 잤는데 어디 보자, 데드라인이 정오 전까지? 응, 그래. 이대로 킵 고잉이네.
“한숨도 못 잤어.”라는 말은 보통 잠을 충분히 자지 못했음을 뜻하는 수사적인 표현일 테지만 나에게는 말 그대로 ‘단 1초도 못 잤다.’를 의미한다. 우리 가족 역시 내가 습관처럼 “나 밤새웠어. 한숨도 못 잤어.”라고 푸념할 때마다 두세 시간 밖에 못 잤구나 생각했을 거다. 그들이 내가 정말 잠시나마 눈 붙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늘 사무실이나 촬영장에서 밤을 새우던 내가 처음으로 집에서 자막을 쓰던 날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이른 아침부터 대기를 타고 있었고 역시나 수차례 약속된 시간이 미뤄지며 저녁 여덟 시경이 다 되어서야 영상이 전달됐다. 가족들이 잠자리에 들기 시작한 밤 열한 시, 나는 당연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고 내 방을 제외하고 불을 끈 엄마가 밤 인사를 건넸다.
“딸, 엄마 잘게.”
“응, 잘 자.”
새벽 세 시, 잠에서 깬 엄마가 문틈으로 새어나간 불빛을 봤는지 슬쩍 문을 열었다.
“아직도 하니?”
“응, 얼른 자.”
여전히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새벽 다섯 시부터 삼십 분 간격으로 아빠와 언니가 출근 준비를 위해 차례로 일어났다. 아침 여섯 시부터 또 삼십 분 간격으로 아빠와 언니가 출근한 데 이어 엄마의 출근 준비가 시작됐다.
“딸, 엄마 다녀올게.”
“응, 가.”
아침 여덟 시 반, 엄마의 인사에 나는 열 시간 전과 똑같은 자리, 똑같은 포즈로 답했다. 오후 네 시 반, 퇴근한 엄마가 출근할 때 모습 그대로 바카라상에 앉아 있는 날 보고 드디어 걱정을 내비쳤다.
“뭐라도 좀 먹으면서 하고 있는 거야?”
“응.”
난 그 질문에도 단답형밖에 내놓지 못했다. 가뜩이나 연차가 얼마 되지 않아 예능 자막을 쓰는 게 서툴렀던 데다가(지금도 썩 잘 쓰는 편은 아니다) 데드라인도 촉박하여 1분 1초가 그야말로 피 말렸기 때문이다. 나는 또 한 번 날이 바뀐 새벽이 되어서야 침대에 누웠다.
간혹 방송업계와 무관한 이들에게 이런 에피소드를 들려주면 열에 아홉은 경악한다. “왜 그렇게까지 해요? 그렇게 해도 되는 거예요?” 저도 제가 왜 그렇게까지 하고 있는지, 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동시에 몇 년 전 나에게 던져진 질문 하나가 귓가에 맴돈다. 수차례 합숙을 포함한 초인적인 스케줄이 계속되던 어느 프로그램에서 한 외국인 출연자가 우려를 담아 나에게 던졌던 그 질문이.
“한국에는 노동법이 없나요?”
⦿ Off the Record
#S1.
정말 시간이 없어서 방송 사고가 나기 일보 직전인 상황의 단톡방은 살벌하기 그지없다. 자막 언제 되죠? 쓰고 있습니다. 지금 바로 넘어와야 돼요! 쪼지 마세요. 상황 자막만이라도 먼저 주세요. 자잘한 건 여기서 바로 칠게요. 저희도 지금 손가락 터지게 쓰고 있다고요. 다음부터는 좀 빨리 주시든가요! 편집실, 사무실, 재택 등등으로 분산되어 있기에 유혈 사태는 막아서 망정이지, 그야말로 야차들의 대행진.
#S2.
본편 자막은 하루이틀 내로 영혼을 갈아 넣어 몰아서 쓰지만 본편 자막이 끝났다고 평화가 찾아오는 건 아니다. 예고, 선공개, 하이라이트, 흘림, 하단, CM 부제 등 자잘한 자막들이 줄줄이 대기표를 뽑고 서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체감상 일주일 내내 자막만 치다 끝나는 기분이다. 실제로 한창 온에어 될 때 내가 속해 있던 단톡방을 재구성해 보면 대략 이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