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안 작성부터 자막, 검토서, 샘플 작업까지 마감이 겹치는 바람에 화장실 갈 때 빼고는 끼니조차 바카라상에서 대충 때우며 바쁨을 만끽하던 어느 날. 시선 닿는 곳에 모셔둔 스마트폰 화면이 밝아졌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현대인답게 나 또한 현대인의 고질병인 연락 공포증을 말기 수준으로 앓던 탓이었다. 뭐지, 업무톡인가? 컴플레인은 아니겠지? 최근 며칠 간의 작업 퀄리티를 빠르게 복기하며 고개는 모니터에 고정한 채 눈동자만 굴려 미리보기를 확인했다. 다행히 몇 해 전 전쟁 같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함께하며 전우애를 다진 선배들과 만든 그룹톡방이었다.
‘이번 주 변동 없나요?’
그제야 선배들과 잡았던 약속이 떠올랐다. 아이고, 두야. 수포자의 최대치 계산 능력을 끌어올려 주말까지 남은 만 하루 그리고 반나절의 시간을 쪼개고 쪼개 보았거늘 도저히 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죄인된 심정으로 답을 보낼 수밖에.
참고로 Y 언니는 이 구역의 유명한 런친자로 해외 러닝 대회 참가를 앞두고 있었다.
이렇게 이 온라인카지노북의 제목이자 우리의 단톡방명이 (재)탄생하매, 그 이름하여…
언프리랜서Un-Freelancer
내 본업은 방송작가다. 최근에는 역서 두 권을 출간하며─정확히 하자면 한 권은 출간을 앞두고 있다─ 번역가라는 타이틀도 추가됐다. 두 직업은 프리랜서라는 공통점이 있다. 포털 창에 프리랜서를 입력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프리랜서(Freelancer)
[표준국어대사전] 일정한 소속이 없어 자유 계약으로 일하는 사람 (유의어: 자유직업자)
[위키백과] 특정 기업이나 조직에 전담하지 않고 자신의 기술과 능력을 이용해 슬롯적으로 독립적인 개인 사업자
[나무위키] 특정 소속사에 존속되지 않거나 소속사에서 탈퇴하여 윗사람이나 특정 소속사로부터 지시 없이 자유롭게 활동하면서 임의로 계약직 등에 근무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
어원의 유래부터 사전적 정의까지 공통으로 등장하는 자유라는 워딩 때문일까. 세상 사람들은 프리랜서라고 하면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골라 내킬 때 내키는 대로 일하는 자유의 상징으로 여긴다. 휴양지에서 그림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일하는 워케이션이나 디지털 노마드의 급부상은 이러한 환상에 기름을 부었다. SNS에는 ‘퇴사 후 내 방으로 출근합니다!’, ‘평범한 온라인 게임인의 프리랜서 전향 후 이룬 성과’ 따위의 콘텐츠가 차고 넘친다.
하지만 정말 프리랜서의 삶이 그럴까?
실상은 당장 언제 밥줄이 끊길지 몰라 친구들과 밥 한 끼 먹자 약속 잡기조차 호달달, 단돈 1원 쓰기 부담스러울 때도 부지기수다. 키오스크 앞에서 오천 원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육천오백 원 아이스 바닐라라떼를 두고 세상 치열한 갈등에 빠진다. 그깟 천오백 원이 뭐라고 사람을 이렇게 지지리 궁상으로 만든담. 카페 와서 아아 마실 바에는 집에서 카누나 타지! (강경 아아파 여러분 죄송합니다.) 그렇게 천오백 원어치 자존심을 쿨한 척 지불할 때면 “얘들아, 주문받는다.” 후배들 한정 커피 플렉스로 꺼드럭대던 과거의 나에게 시그널이라도 보내고 싶다. 지갑... 멈.. 춰... 카.. 드... S... T.. A... Y......
자유 계약이라는 그럴싸한 포장 뒤에는 제대로 된 서면 계약서조차 쓰지 못하는 현실이 숨어 있다. 법망을 요리조리 피하는 불공정 계약은 다반사요, 출퇴근이 자유롭다는 말은 곧 출퇴근이 없다와 동의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는 진작에 무너졌다. 새벽 세 시에 연락이 와도 벌떡 일어나 두 손으로 받아야 하는 먹이사슬의 최하위. 당장 짐 싸서 나가라고 하면 군소리 없이 짐 싸야 하는 삶. 약속된 페이 뜯기는 건 뭐, 이 바닥의 신고식이지. 웰컴 투 헬. 환영합니다, 당신도 이제 어엿한 프리랜서군요!
게다가 내가 몸담은 방송가는 어떤가. 나는 늘 말한다. 방송작가는 빛 좋은 개살구라고.
우와, 연예인 매일 보겠다! 연예인이랑 일하면 어때요? 너무 좋을 것 같아. 부러움 섞인 시선을 받을 때마다 내가 돌려줄 수 있는 리액션은 고작 “아… 아….” 가오나시 추임새를 곁들인 어색하고 씁쓸한 웃음뿐. 한 번쯤은 속 시원하게 폭로하고 싶어도 비밀 유지 서약서에 적힌 수억 원에 달하는 위약금이 없어 애석하게도 속으로만 삼킨다.
정말 고된 건 따로 있다. 대놓고 드러나지 않아 더욱 사람 피를 말리는, 은은히 퍼진 까라면 까야 하는 서열 문화를 비롯하여 24/7 대기조 신분으로 샤워할 때도 스마트폰을 동행하고 침대에 몸을 뉠 때도 인간 자동응답기가 될 수 있게끔 스마트폰을 신줏단지인 양 고이 손에 쥐고 눈감는다. 사무실 한켠에는 세면도구와 간단한 옷가지를 구비한 밤샘 대비용 캐리어가 알 박기 중이다. 주말에 뭐 해? 만날래? 글쎄, 그건 금요일 퇴근길에야 알 수 있는걸. 시의성을 좇느라 하루에도 아이템이 수차례 엎어지는 탓에 내일의 스케줄은 오늘 저녁에야 알 수 있다. 어찌저찌 짬을 내어 마련한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도 별안간 노트북을 꺼내 들어야 하는 굴레. 이게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실체다.
물론 대과거의 드라마 〈프로듀사〉를 시작으로 요즘은 미디어에서 방송 스태프의 삶을 종종 다루기도 하고, 탈작(탈출한 방송작가)한 이들이 썰을 풀며 우리네 이야기가 점차 알려지는 추세이긴 하다만 방송계 특성상 외부로 밝히기 어려운 대외비가 많고(특히나 아티스트와 관련됐다면 더더욱 말이다) SNS가 낳은 괴물들이 양산한 어그로용 주작도 수두룩하다.
그래서 가짜의 삶 말고 진짜의 삶을 말하고자 한다. 한 끗 차이로 자극적인 가십이 되기 십상인 연예인 비화가 아닌, 매체에 단골로 등장하는 성공한 사람들의 미화된 신화도 아닌 날것의 리얼 라이프.
“전화 따박따박 안 받냐.” 아직도 선배들 말 한마디 한마디가 불호령처럼 들리고 “우리 작가님 여기서 뭐하… 잠깐만, 울어요? 왜 울어?!” (아니… 아무것도 아니니까….) 비상구 계단에서 몰래 눈물을 삼키는 걸로 모자라 “피디님, 기계실은 열 때문에 좀 따뜻하던데 우리 거기서 딱 10분만 잘까?” 피로 누적이 불러온 수마와 싸우며 잠시나마 눈 붙일 구석을 찾아 헤매는 서글픈 하이에나가 되었다가 “엄마 미안한데 나 30만 원만…. 돈 들어오면 바로 갚을게.” 경력이 차고 페이가 올라도 업무 시간 대비 여전히 파리 날리는 곳간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어느 쩌리 프리랜서 방송작가(겸 번역가)의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 말이다.
부디 사람들이 프리랜서를 향해 갖고 있는 화려하고 낭만적인 편견을 거두어주길 바라며. 대신에 조금은 동정 어린, 아주 현실적인 시선을 던져주길 바라며.
단 한 번도 프리해 본 적 없는 언프리랜서의 진짜 이야기를 이제 공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