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많은 나라에 사는 건 수고가 많은 일이다."
어느 광고 카피에서 본 문장이다. 딱 지금, 그 말을 온몸으로 실감하는 환절기다. 아침 기온은 싸늘한데 낮은 여름처럼 덥다. 옷걸이에는 여름 반팔부터 가을 긴바지, 초겨울 외투까지 온갖 계절의 옷들이 한데 얽혀 걸려 있다. 새벽 일찍 일어나 러닝을 할 때는 얇은 패딩이 필요하다가도, 낮이 되면 반팔 차림이 자연스러워지는 날들이다.
계절이 바뀌자 여름 내내 미뤄두었던 일들이 하나둘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부끄럽지만 작년에 입었던 외투를 아직 세탁소에 맡기지 못했다. 올봄에 입었던 옷들과 함께 세탁소에 가져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더워진 날씨 탓에 하루이틀 미루다 보니 어느새 가을이 되어버린 것이다. 머쓱한 마음으로 세탁소에 찾아가 사정을 전했더니 사장님이 웃으며 말씀하신다.
"어제 어떤 분은 패딩만 6개 들고 왔어요.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아요."
언젠가 한 풍수지리 전문가가 집안 풍수에 대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집안 풍수라는 게 별것 없다고 했다. 집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살피는 것, 그것이 시작이란다. 건전지가 없어 멈춘 시계는 건전지를 갈아주고, 시든 식물은 시든 잎을 정리해 주거나 회생이 어려우면 잘 보내주는 것. 현관에 쌓인 택배 상자나 지저분한 물건들을 치워주는 것만으로도 집안의 기운이 바뀐다는 이야기였다.
돌아보면 퇴직 전 나에게 집안일이란 '귀찮은 것', '한 번에 확 해치워 버려야 하는 숙제' 같은 것이었다. 주중에는 거의 잠만 자러 들어오는 공간이었고, 주말엔 밀린 잠을 청하는 곳에 불과했다. 요리에 취미가 없으니 주방에 서는 일도 드물었다. 그러니 집안일은 늘 주말 한구석에 몰아두었다가 단숨에 끝내야 하는 부담스러운 과제였다.
하지만 퇴직 후 온종일 집에 머물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온종일 지내는 공간이다 보니, 집이 정돈되어 있는지 아닌지가 내 일상의 결을 결정짓기 시작했다. 러닝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신발에 묻어온 모래가 현관 바닥에 바스락거리는 게 눈에 보였다. 옷걸이에 무더기로 걸린 여름옷과 겨울 패딩, 흐릿한 불빛을 내뿜으며 이제 보내줄 타이밍이 되었다고 말하는 거실과 주방 전등, 그리고 겨울마다 난방이 잘 안 되는 작은방의 존재까지 하나씩 또렷해졌다. 작년 겨울 보일러 체크를 미루다 추운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글을 썼는데, 또 까맣게 잊고 있다가 가을을 맞이한 것이다.
뼛속까지 계획형 인간인 나는 습관처럼 위클리 플랜을 펼쳐 들고 해야 할 일들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할 일을 적어 내려갈수록 에너지가 점점 빠져나갔다. 아직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그 일들을 다 해낸 것처럼 피로가 밀려왔고 가슴 위에 돌덩이가 얹힌 듯 답답해졌다.
'인간의 성격은 바꾸기가 참 어렵구나.'
결국 볼펜을 툭 내려놓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누군가와 한 약속을 제외하고는, 계획표에 적었던 내용들을 리무버로 싹 지워버렸다. 그리고 그냥 아침에 깨어나 눈에 보이는 일, '오늘 이거 한번 해볼까?' 싶게 마음이 끌리는 일부터 무작정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보는 거다.
물론 한 달 뒤, 6개월 뒤를 계획하는 것도 삶의 방향성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사과에 땅콩버터를 발라 먹으며 집안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가, 문득 생각나는 일을 그날 해보는 것도 괜찮다. 그렇게 계획 없이 닥치는 대로 하루를 살아도, 세상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 닥치는 대로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