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핏을 한 지 3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헬스장인 줄 알고 찾아갔던 곳이 크로스핏 체육관이었고, 엉겁결에 참여한 체험 수업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이렇게 오래 할 줄은 정말 몰랐는데 시간이 참 빠르다.
3년 전 처음 수업을 들을 때도 그랬고 3년이 지난 지금도 50대 회원은 나 혼자다. 아마 이 사실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 같다. 한 번은 너무 궁금해서 AI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제미나이의 답은 이랬다.
"크로스핏이란 게 한국에 들어온 지가 얼마 되지 않았어. 처음 들어온 건 2010년 경이고, 2010년대 중반 정도부터 대중화되기 시작한 운동이야."
그랬구나. 그래서 50대 크로스핏터들이 드문 거였구나. 3년 동안 두세 명 정도의 동년배가 오긴 했지만, 대부분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사라졌다. 나 역시 크로스핏을 하기 전에 웨이트 운동을 했던 경험이 없었다면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두었을 거다.
크로스핏 동작에 덤벨이나 케틀벨은 기본 도구이고, 웨이트 운동에 대한 기본 지식이 어느 정도 있어야 수업을 따라갈 수 있다. 코치가 아무리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한들 본인이 기본적인 지식이 없다면 주변 젊은이와 운동 수준 차이가 나는 그 분위기를 견디면서까지 이걸 배워야 하나 싶은 생각이 순간 스멀스멀 올라오기 때문이다.
크로스핏은 보통 2명이 짝을 이루어 팀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그러다 보니 나와 나이 차이가 한참 나는 어린 친구들과 파트너가 되어 운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 걱정했던 것보다는 잘 적응했다. '운동'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만난 덕분에 우려와 달리 잘 지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30대 초중반이 다수였던 체육관의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더니 20대 후반, 30대 초반으로 내려갔다. 그 나이가 그 나이 같고 나에게는 다 어린 친구들이라 에너지가 비슷할 줄 알았는데, 확실히 연령대가 내려갈수록 이들이 뿜어내는 에너지의 결은 30대 중반과 달랐다.
어느 때는 그저 생기발랄하게 느껴지다가도, 어느 순간부터는 그 뜨거운 열기에 내가 데이는 듯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마치 화상을 입는 것 같았다. 기가 빠지는 느낌이었고, 에너지가 말라붙는 기분도 들었다. 사람 수가 많은 연령대로 분위기가 쏠리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리고 어린 친구들이 그들 나름의 청춘과 에너지를 발산하는 건 잘못된 일이 아니다. 옳고 그름이나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것만 결정하면 되는 거였다.
그래서 이곳저곳 다른 체육관의 체험 수업에 참여해 보았다. 다른 곳은 분위기가 어떤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한 번 체험한 거라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회원들의 연령대 비율은 어디나 비슷했다. 한국에 있는 여느 크로스핏 체육관 분위기는 지금 다니는 곳과 대동소이하다고 보는 게 맞다 싶었다.
생각했다. 집에서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는 체육관의 접근성은 그 어떤 조건과도 바꾸기 힘든 장점이다. 게다가 다른 곳으로 옮긴 들 상황이 달라지란 법도 없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내 에너지를 지키는 나만의 방법을 찾는 것. 그래서 내린 결론이 바로 '운동만 하고 나온다'였다.
그전에는 수업 전후로 체육관에 머무는 시간이 길었다. 운동을 끝내고 바이크를 타며 가빠진 심장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쿨다운까지 챙겨하고 나왔다. 하지만 운동만 딱 하고 나오면, 수업 전후로 나도 모르게 새어나가던 에너지는 확실히 챙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요즘은 집에서 미리 준비운동을 어느 정도 하고, 수업 시작 10분 전에 딱 맞춰 체육관에 들어선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미련 없이 바로 집으로 돌아온다. 쿨다운은 집 주변을 조용히 걸어주거나 거실에서 스트레칭을 하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다.
가까운 체육관의 이점은 그대로 살리고, 나도 모르게 새고 있던 에너지 박스의 구멍은 단단히 막아주었다. 여전히 젊은 친구들은 타는 듯한 에너지를 뿜어대고 있고 여전히 나는 ‘나의 운동’을 잘해 나가고 있다.
내가 어릴 때 이런 일을 겪었다면 아마 체육관을 옮기거나 운동 자체를 그만두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된 게 있다면, 문제의 원인을 밖에서 찾기보다 조절할 수 있는 선을 찾아 내가 유연하게 움직여야 상황이 바뀐다는 거다.
나의 속마음과 운동 동선은 나름 주도면밀하게 바꾸었지만 겉으로는 능구렁이처럼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아무일 없는 것처럼 유유히 체육관 문을 나선다. 젊은 기운에 휩쓸려 나를 방전시키는 대신, 나만의 온도를 기분 좋게 유지하는 법. 3년 차 50대 크로스핏터가 우연히 얻게 된 뜻밖의 수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