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식물에게 이틀에 한 번꼴로 물을 주었다. 잎들은 싱싱했고 식물은 왕성하게 자랐다. 가을, 겨울 성장이 멈춰 있던 고무나무가 하루가 멀다 하고 새잎을 열었고, 떡갈고무나무는 내 얼굴만 한 잎들을 키워냈다. 거짓말 안 하고 오전, 오후 잎사귀 크기가 다르게 느껴질 정도였다.
원래 물을 좋아하는 식물인 경우는 여름엔 무조건 매일 물을 줘야 하는 게 현실이다. 조금만 메말랐다 싶으면 잎이 좌우로 눕기 시작한다. 시위를 하는 거다. 그런데 신기한 게 화장실에 데려가 잎에 물을 뿌려주고 흠뻑 물샤워를 해 주면 이내 바로 정신을 차리곤 했다.
이렇게 잘 자라는데 얼마나 힘이 들까 싶어 물비료를 흠뻑 주곤 했다. 그런데 물비료 주는 게 슬슬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온라인숍을 뒤적거리다가 알비료를 발견하고 구매했다. 한 번 뿌려주면 두세 달을 간다고 한다. 그런데 알비료 통에 쓰여 있는 문구가 있었다. 너무 많이 주지 말라는 거다. 그래도 이왕 한 번 주는데 물 주는 것만큼 양껏 준다고 무슨 문제가 있겠어 싶었다.
알비료에 쓰여 있는 권장량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다. 좀 과장되게 표현하면 화분 위에 흩뿌리는 느낌으로 넉넉하게 골고루 뿌려주었다. 내심 흐뭇했다. 여름 햇빛에 알비료까지 더해지면 얼마나 더 잘 자랄까 기대되었다.
그리고 알뿌리를 뿌리고 며칠이 지났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에 놓여 있는 식물들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식집사 생활을 하고 처음 보는 광경이 펼쳐졌다. 식물마다 차이가 있지만 잎이 작은 식물들은 잎사귀들은 흡사 녹아버린 것처럼 주저앉아 있었고 잎이 그나마 크고 두꺼운 식물의 경우 잎에 검은 멍이 들어 있었다. 물을 적게 주었을 때 식물 잎이 좌우로 눕는 느낌과는 결이 달랐다.
'이게 무슨 일인가?"
너무 놀라 식물 관련 바카라을 찾아보고 AI에게 이유를 물어보았다. 아차 싶었다. 흩뿌린 알비료가 화근이었다. 과도하게 많이 뿌려준 알비료가 식물에게는 독이 되었던 거다. 어떤 식물은 여름 내내 풍성하게 자란 잎들을 모두 잘라내야 했고 대부분의 식물이 잎의 절반 정도를 잘라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런 일이 시차를 두고 모든 식물에서 일어났다. 잘 자라라고 준 건데 오히려 식물들에게 해를 준 꼴이 되었다.
'알비료 설명서를 잘 읽어보고 줄걸.'
거실의 놓인 식물의 망가진 모습을 보면서, 필요 이상으로 주는 게 좋지 않을 걸 알면서도 과하게 퍼주고 나중에 실망하는 나의 인간관계 맺는 방식이 떠올랐다. 지금 나는 인간관계에서 조금 힘든 일을 겪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 이런저런 상황이 있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내 욕심이었다. '잎사귀가 더 났으면, 나무가 더 잘 자랐으면' 하고 내 욕심대로 알비료를 주었던 것처럼, 그렇게 내 방식대로 사람 관계에서도 알비료를 뿌려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검은 멍이 든 잎들이 여러 개 발견되었다. 오전 내내 그런 잎사귀를 한참 정리해 주었다.
'이걸 언제까지 해야 하나?'
그나마 희망적인 건 검은 잎사귀를 떼어내고 난 자리 밑에 작은 새싹이 고개를 내밀고 있더라는 거다. 지금 식물들 상태를 보면 잎사귀에 멍이 들고 식물들이 시들시들한 상태가 한동안 지속될 것 같다. 다행인 건 이런 상황 역시 끝이 있다는 거다. 산불이 난 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산에도 새싹이 돋듯이, 스트레스로 머리 여기저기에 생긴 원형탈모처럼 볼품없어진 잎사귀들이 점점 힘을 얻고 예전의 모습을 찾아갈 수 있을 거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인간관계의 진통 역시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거다. 하지만 처음 갈등을 겪었을 때보다 감정의 진폭도 점점 작아지고 농도 역시 옅어지고 있다. 아마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 지금보다는 더 나아질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오래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고 갱년기라는 시즌을 지내며,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인생의 넥스트를 설계하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 역시 알비료를 과하게 주고 조급해했던 마음과 닮아있는지 살펴보게 된다. 어떤 때는 한없이 편안하다가도 어떤 때는 한없이 막막해지곤 하니까. 하지만 이 역시 한 해 두 해 지나가다 보면 그 물결이 한결 잔잔해지고 편안해질 수 있겠지. 그럴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