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명 : 이석증의 모든 것

by이곰

나이가 들면 노화가 시작된다. 중년에 접어들며 모든 신체 기능이 떨어지지만, 특히 본인이 약한 부위가 노화에 더 취약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관절이 약한 사람은 무릎이나 허리로, 소화기계가 약한 사람은 위의 통증이나 소화불량으로 먼저 신호가 오듯 말이다.


온라인 게임 생활을 할 때 한 선배는 늘 기운이 없어 보였다. 원래 허약 체질인가 싶었는데, 유난히 겨우겨우 걷는 듯한 날 선배에게 무슨 일이 있나 물어보면 어김없이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이석증이 찾아와서 그래."


천장이 빙글빙글 돈다는 그 병? 그저 남의 일처럼 어렴풋이 알고 있던 질환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 실손보험 청구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골 병명이 바로 그 '이석증'이다.


첫 발병은 2년 전이었다. 아침에 눈을 떴다가 잠을 더 자려고 몸을 뒤집었고 뒤척거리다 다시 똑바로 누운 순간, 천장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선배가 해 주었던 이석증 증상이 떠올라 이게 이석증이구나 생각하며 견딜만했지만 무섭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행히 1분 정도 지나자 천장이 도는 증상은 멈췄다.


하지만 무슨 배짱이었는지 천장이 도는 증상을 일주일 동안이나 참으며 병원에 가지 않았다. '언젠간 멈추겠지' 하는 안일함과 병원에 가서 이석증이라고 진단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빙글빙글 도는 건 멈췄지만, 그 후 오랫동안 기분 나쁜 이명을 겪어야 했다.


이석증을 겪었다는 기억이 어설프레 사라질 즈음, 운동을 하려고 집을 나섰는데 기묘한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으나 결이 달랐다. 순간 몸이 휘청하더니, 앞으로 걷고 있는데 몸이 자꾸 오른쪽으로 쏠렸다. 간신히 건물 벽을 짚고 서서 어지럼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렸지만 걸음이 흔들릴수록 밀려오는 공포는 거세졌다.


'뇌졸중인가?'


어딘가에서 들었던 뇌졸중 증상과 너무나 똑같았다. 겁에 질려 택시를 타고 근처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 뇌 CT를 찍고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다행히 뇌 질환은 아니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증상이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 날 각종 정밀 검사를 받은 끝에 나온 최종 진단명은 의외였다.


'이석증'


이미 이석증을 경험해 봐서 이석증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양상이었다. 의사 선생님 왈, 귓속 이석이 많이 떨어지면 천장이 빙빙 도는 증상이 나타나지만, 이석이 어정쩡하게 떨어지면 잔 어지럼증과 좌우 균형이 무너지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한바탕 난리법석을 떨고 알아낸 이석증의 또 다른 증상에 허탈함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엄마에게 말씀드리니 엄마 주변에도 이석증 환자가 많고 그리고 이석증이 고약한 게 재발이 잦아 일상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하셨다. 두 번째 이석증을 겪을 때만 해도 '설마 내가 엄마 친구분 나이도 아닌데 또 재발하겠어?' 했다. 그러나 두 달 전, 세 번째 이석증이 찾아왔다.


두 번째 경험 덕분에 몸이 한쪽으로 기우는 증상이 느껴져서 이석증이 왔구나 알아챘다. 이번엔 지체 없이 이석증 치료로 유명한 이비인후과를 찾아갔다. 확실히 전문 병원이라 치료도 꼼꼼했고 증상도 훨씬 빠르게 잡혔다. 그때 깨달았다.


'아, 나도 이석증이 계속 재발하는 스타일이구나.'


받아들이고 나니 어떻게 이석증을 대면해야 하나 방법을 찾아야 했다. 세 번째 발병 때부터 '이석증의 모든 것'이란 파일을 만들어서 이석증에 대한 참고 자료와 나의 증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병원에 간 날짜, 컨디션 변화, 그날의 주요 행동은 물론, 발병 전 전조증상까지 기억을 더듬어 정리했다.


나의 전조증상은 갑작스러운 뒷목의 뻐근함이었다. 단순 근육통이라기엔 목이 뻣뻣해지는 강도가 강렬했고, 이어 머리가 묵직해졌다. 이 두 증상이 동시에 오면 이미 이석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신호였다. 그동안은 이걸 단순 근육통으로 오인해 방치하다가, 걸음이 한쪽 방향으로 쏠리는 느낌을 느끼고 나서야 병원에 가는 바람에 회복이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틀 전 아침. 편의점에 가다가 하품을 했는데 갑자기 목이 뻣뻣해지고 머리가 묵직해졌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더니 그렇게 메모를 하고 정리를 했는데도 '어제 스트레칭을 안 해서 그런가?' 하고 또 그냥 넘어갔다. 집에 와서 폼롤러로 목을 풀었지만 개선되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목표 운동량을 채우려 줄넘기를 들고 놀이터로 향하는데,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아, 뭐지?'


순간 머릿속에 번쩍 불이 들어왔다. 즉시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왔다. 이전에 작성해 둔 '이석증의 모든 것' 파일을 열었다. 빨간 글씨로 '전조증상: 목이 뻣뻣해지면서 머리가 묵직해짐'이라 적혀 있었다. 이걸 기억하지 못하고 놀이터에서 줄넘기를 천 개 넘게 했다면, 다음 날 천장이 빙빙 도는 지옥을 맛보았을 것이 틀림없다.


즉시 목에 무리를 주는 모든 행동을 멈췄다. 폼롤러 마사지도, 목을 뒤로 젖히는 스트레칭도, 침대에 몸을 과격하게 던지는 것도, 그리고 나 스스로를 볶아대며 스트레스를 주는 일도 모두 멈췄다. 최근 나를 달달 볶았던 일과 수면 부족, 환절기 면역력 저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으리라.


이제는 미루지 않고 바로 병원으로 향한다. 다행히 이석증 치료 예약 딱 한 자리가 남아 있었다. 이 세상에 이석증으로 속을 끓이는 환자가 이렇게나 많은 줄 몰랐다.


앞으로 나이가 들며 크고 작은 질환들이 나를 찾아올 것이다. 어쩌면 먼 훗날 '내가 자주 걸리는 게 고작 이석증이었다니, 참 감사했구나' 하고 생각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주변을 둘러보면 암이나 디스크 같은 질환으로 수술받고 입원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나 역시 그런 일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몸이 쇠락하고 병에 걸리는 건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다. 하지만 "병에 걸리면 의사만큼 알게 된다"는 말처럼, 내가 공부하고 기록해서 예방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는 노력을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 몸을 지키지 않으면 고생하는 건 결국 나 자신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는 정성껏 스스로를 지켜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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