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그 당시 팀장과의 갈등으로 불면증이 심해지면서 상담센터를 간 적이 있다. 상담을 받기 전 다양한 심리검사를 진행했다. 심리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결과지에 나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문장이 써져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흠잡히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면, 내가 진정으로 원하고 바라는 것에서는 멀어지기 마련입니다. 아주 기본적인 욕구에서 시작해 당신이 어떤 신체적, 정서적, 슬롯적 욕구를 가졌는지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당시에는 온라인 게임 생활로 정신이 없었고 '내가 나를 모른다는 게 말이 되나?' 하며 별생각 없이 넘겼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여유도 없었다.
그러나 퇴직을 하고 갱년기를 지나는 지금, 지금이 심리검사 결과지의 그 문장에 대해 생각해 볼 때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런저런 사건들이 팡팡 터지기 시작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의 에너지가 빠지고 마음이 말라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마음속에 슬며시 질문 하나가 피어올랐다.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나를 둘러싼 다양한 관계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생기면 나는 내가 조금 더 움직이고, 조금 더 참으면 관계가 편해진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면서 상황들을 대면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역할을 왜 꼭 나만 해야 하지?'라는 의문이 터져 나왔고, 갱년기의 한 중앙에 진입하면서 그 질문은 점차 거대해졌다. 그제야 10년 전 성격검사지에 적혀 있던 그 글귀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제 퇴직해서 시간도 많으니 마음을 들여 내가 어떤 상황에서 힘들어하고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피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타인과 맺어온 나의 '관계 패턴'이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나는 마음 편하게 살고 싶은 걸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마음 편히 사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사람과의 크고 작은 갈등이 어떻게 생기는지 그동안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
나는 처음 만난 사람과 유독 빨리 친해지는 편이다. 내가 먼저 호기심과 호감을 갖고 다가갔고, 사람들도 이를 편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렇게 관계를 트기 위해 내 시간과 노력,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사실은 몰랐다. 내 성격이 원래 그런 줄만 알았다. 문제는 이 패턴이 초반에 그치지 않고 계속 유지된다는 점이었다. 늘 다가서고 배려하는 자세가 지속되자 상대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시간이 흐를수록 나만 갉아먹히는 기분이 들었다.
매일 만나는 편의점 직원부터 전 온라인 게임 동료 심지어 운동하러 가는 체육관에서 만나는 사람들까지. 소름 끼칠 정도로 똑같은 패턴으로 나는 사람들을 대하고 있었다. 이걸 깨닫고 나자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문제들이 선명하게 단순해졌다.
나의 패턴을 알고 나니 관계 맺음에서 느껴졌던 불편함에서 비로소 해방감이 느껴졌다. 상대방을 바꾸는 게 아닌 나의 패턴을 수정하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사람을 만날 때 과도한 노력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본능처럼 발동하던 호기심과 배려의 강도를 이전보다 30~40% 낮추는 연습을 하고 있다. 활짝 웃던 입매는 약간의 미소로 바꾸었고, 침묵이 어색해 먼저 꺼내던 말 대신 조용한 상황에 그냥 나를 맡겨 본다. 상대방의 얼굴이 그늘이 있어 보여도 그 사람이 나에게 말하지 않는 한 이전의 오지랖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높은 기대치도 낮추었다. 이는 사람에 대한 불신이나 실망과는 다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단순한 이치를 받아들이고, 실망의 크기를 줄이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나이가 들수록 쓸 수 있는 에너지가 한정되어 감을 느낀다. 이제는 그 한정된 자원을 나를 살피고 나의 실속을 차리는 데 집중 투자하려 한다. 매번 나중으로 미루었던 나의 기본적인 욕구도 적절한 선에서 채워주고 있다. 집밥이 물리면 나를 위해 근사한 식당을 찾고, 비싼 가격에 구입을 주저하던 양모이불 세트를 구매해 따뜻한 겨울을 보냈다. ‘내가 레깅스를 입는 건지, 레깅스에 내 몸을 맞추는 건지’ 운동할 때마다 입으면 답답했던 저렴한 레깅스 대신 제법 값나가는 운동복과 스포츠 브라를 갖추었다.
전 온라인 게임 동료들과의 관계에서도 관계 패턴 바꾸기를 실천 중이다. 예전의 나의 모습을 기대하며 연락해 오는 이들에게 이전과 같은 피드백을 주지 않는다. 처음엔 당황해하던 사람들도 점차 변한 내 모습에 맞추어 정리가 되어갔다. 변화된 모습을 받아들이는 사람과는 관계가 이어졌고,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자연스럽게 거리가 멀어졌다. 그 사이 타인에게 맞추느라 소모되었던 내 에너지는 나의 내면에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지금껏 먹고살기 위해 남에게 나를 맞추며 살았다면, 이제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고 바라는 것에 오롯이 집중해 보려 한다. 나는 이제 그래도 되는 나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