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담 : 이야기를 전하는 자 -32-

현실의 무서움과 괴담 사이에서 (2)

by이사금

#032화 현실의 무서움과 괴담 사이에서 (2)




“얘들아! 그만 놀고 여기 와서 밥 먹으렴!”


민지의 어머니가 아이들을 불렀다. 민지보다 네 살 많은 두 쌍둥이 남매 민아와 민철은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대답했다.


“밥-!”


아이들은 꽃잎을 따는 것도 중단하고 고개를 돌렸다. 아이들 눈에 돗자리 위에 놓인 김밥과 치킨과 음료수 통 같은 것들이 들어왔다. 그것을 보자마자 쌍둥이들에게 배고픔과 식욕이 동시에 몰려왔다.


그동안 쌍둥이들은 노느라고 시간이 그리 지난 줄도 모르고 있었다. 두 아이는 손에 들린 개나리 꽃잎을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이윽고 쌍둥이가 어머니 앞으로 우다다 달려왔다. 그때까지도 쌍둥이는 뭔가 허전하다는 걸 느끼지 못했다.

쌍둥이보다 먼저 아이들의 어머니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희들…! 민지는 어디 갔니?!”

“응?!”


그제야 남매는 어린 동생을 떠올렸다.


“민지는 아까까지 저기서 놀던데?”

쌍둥이 중 민아가 동생이 있던 방향을 떠올리며 손으로 가리켰다. 쌍둥이가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그저 개나리꽃들이 무심하게 피어 있었을 뿐이었다.


언니 오빠가 동생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는 실제로는 희미했다.


어린 민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쌍둥이와 어머니는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그들은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아기를 찾으러 나섰다.

세 사람의 내면에서 왈칵 두려움이 솟아났다.


“민지야! 맙소사-! 민지야! 어디 갔니?!”

“민지야! 민지야, 너 어디 갔어?!”

“민지야! 민지야…!”


세 사람은 사라진 아기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민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직 두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자기 이름을 부르면 강아지처럼 달려오던 아기였다.


그렇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고 느낀 세 사람은 미친 듯이 꽃들 사이를 헤집었다. 아기는커녕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꽃들 사이를 헤매다가 그들은 뭔가를 발견하고 경악하고 말았다.

그리고 엄마와 쌍둥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것을 보고 미친 듯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들 가족이 흐트러진 노란 꽃밭 사이에서 발견한 것은 주인을 잃어버린 가련한 작은 아기의 신발 한 짝이었기 때문이었다.


24.


그런 괴담이 있다.


평소에도 무서운 이야기를 자주 찾아보던 기열이 인터넷으로 보게 된 인상적인 이야기였다. 괴담의 내용은 이러하다.


*


어떤 소녀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한적한 시골길이었고 그때 차량 한 대가 나타났다. 소녀는 처음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그 차 주인이 미친 것일까? 갑자기 차가 소녀를 향해 돌진한 것이다. 소녀는 당연히 차에 치여 쓰러졌다.


차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후진을 여러 번 하여 소녀를 깔아뭉개고 소녀가 살아날 가망이 없게 되자 만족한 듯 사라졌다. 다음 날 사람들은 소녀의 시신과 소녀가 자기 피로 바닥에 남긴 다잉 메시지를 발견했다.


소녀가 남긴 메시지에는 두 겹으로 그려진 원, 안에 있는 작은 동그라미에는 엑스 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시골길이라 소녀를 치고 달아난 뺑소니 차량을 잡기에는 단서가 부족했고 소녀가 남긴 다잉 메시지도 수수께끼투성이였다.


수사를 하던 경찰도 결국 범인을 잡는 걸 포기했고, 소녀의 부모만이 소녀의 다잉 메시지에 뭔가 단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조사를 하다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당을 찾아갔다.


무당은 소녀가 남긴 다잉 메시지를 보더니 그 의미를 알아낸다.


원 안에 작은 동그라미, 동그라미 위에 표시된 엑스 자….


바깥의 원은 자동차, 안의 동그라미는 사람, 그 위에 엑스 자를 표시한 것은 자동차 안에는 사람이 없다는 의미다.

즉 소녀를 치고 달아난 것은 사람이 없는 자동차, 귀신 들린 자동차라는 것이다.


*


이렇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괴담은 으레 그러하듯 이야기의 출처가 어디인지 확실하진 않았다. 괴담이나 도시 전설이 늘 그런 것처럼 무섭기는 해도 현실성은 떨어지는 이야기가 많았다.

물론 개중에는 실제로 있던 이야기를 모델로 했다 싶은 것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상당수는 개연성을 따지고 들어가면 허점이 많이 보이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그런 점 때문에 괴담이 재미가 없거나 공포심이 느껴지지 않는다고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허술함이 괴담의 묘미가 아닐까 싶지만….


- 야…, 이 개새끼야.


그리고 지금 기열은 자신이 그 괴담의 주인공이나 다를 바 없다는 걸 느꼈다.


아니, 실은 기열 자신이 더 처참한 거 같다고 생각했다. 괴담 속 소녀는 결국 부모가 죽음의 원인을 밝힐 수 있었지 않은가. 다만 범인이 인간이 아니었단 결말이라서 그렇지.

그런데 자신이 여기서 죽는다면 무슨 단서라도 남을까 싶었다.


차라리 귀신 들린 자동차에 치였다면 운이 나쁘다 생각하지 살아 있는 누구를 원망하고 자시고 할 게 없지 않은가.


물론 기열은 자신이 걸어가면서 한눈을 판 것은 인정했다. 하지만 이 길은 원래 자동차가 자주 다니던 길도 아니었다. 그 길은 몇 시간에 한 번 정도 차들이 지나가는 한적한 길이었다. 기열은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 여기는 자동차보단 사람들이 지나가라고 만들어진 길이었단 말이다…! 사람이 있는 거 같으면 경적이라도 울리든가, 라이트라도 켜든가.


도대체 넓은 도로 놔두고 뭣 때문에 이런 좁아터진 자갈길로 들어섰는가. 저 미친 새끼는 술이라도 마셨는가, 아니면 뭔가 찔리는 것이 있어서 이런 도로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가 있던 건가?


설상가상으로 지금 주변엔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시골길이 으레 그렇지만 저 멀리 드문드문 사람 사는 집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만 심심하게 보일 뿐이었다.


기열은 온몸이 얼얼한 감각과 동시에 몸에서 따뜻한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위가 뒤집히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저녁을 먹은 지도 한참이 지난 것 같은데 속이 울렁거렸다. 토가 나올 것 같은데 속에 든 것이 없어 나올 것도 없고 그래서 더 괴로웠다.


살려달라고 외치고 싶은데 혀가 굳은 건지 아니면 기열의 목이 막힌 건지 나오는 건 신음뿐이었다.


- 제발 신고 좀 해라. 허둥지둥거리지 말고.


기열의 눈에 얼빠진 운전자 놈의 얼굴이 들어왔다. 기열은 직감했다.


- 저 새끼 술 먹은 게 분명해.


차라리 귀신이라면 낫지, 산 사람은 정말 의도하지 않고도 나쁜 짓을 저지를 수 있었다. 원한에 차서 사람을 해치려는 의도가 명백한 귀신들과는 달랐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지금의 저놈처럼 정신줄을 놓고, 한눈을 팔다 보니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르는 놈도 있는 것이다.


중요한 건 그것을 얼마나 수습하려 애쓰는가였다. 문제는 저놈이 뒷일을 어떻게 해결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 지금 신고하면 나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기열은 아까 날아간 자신의 핸드폰이 어디로 떨어졌는지 찾을 수 없었다. 저놈이 신고를 안 하면 자신이라도 젖 먹던 힘을 내서 신고를 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핸드폰이 보이지 않았다.


- 저 개자식…! 지금 도망치려고 하네. 제발 가지 마.


이대로 있으면 자신은 진짜 죽을 것 같다고 기열은 속으로 외쳤다. 이렇게 죽어버리면 자신은 진짜 괴담 속의 귀신이 될지도 모르겠다면서 그 자리를 뜨려는 것처럼 차에 타는 운전자를 그저 하염없이 지켜보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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