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담 : 이야기를 전하는 자 -30-

사람을 먹고 태어난 괴담 (2)

by이사금


※ 『기담 : 이야기를 전하는 자』 1시즌(https://fishingproductfr.com/brunchbook/gidam01)에서 바로 이어집니다.




#030화 사람을 먹고 태어난 괴담 (2)





*


그렇게 며칠, 아니 몇 달이 지난 것 같았다.


준혁은 가끔 생각했다. 자신이 허세를 부리지 않고 해가 완전히 떨어졌을 때 계단을 내려가는 걸 포기하고 그대로 원래 자리로 돌아갔더라면 어땠을까.


아니, 처음부터 다른 녀석들한테 과시한답시고 한 계단 오르기를 포기했더라면?


그렇다면 준혁의 운명은 달라졌을까?


다른 녀석들에게 준혁 역시 별다를 바 없는 겁쟁이에 허세만 부리는 녀석이라 비웃음 받더라도 지금의 상황보다는 분명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숲에서 까마귀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이런 시간에는 당연히 사람들이 계단을 사용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밤중에 가로등도 없는 계단을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다들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외지인들은 이런 계단이 있는 줄도 모를 테고, 마을에 오래 산 사람들마저 더 이상 이 계단을 이용하지 않는 추세였다.


그나마 예전에는 이 계단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예 없지 않았는데 준혁이 지나간 이후로는 그런 사람들도 없어진 것 같다. 지금까지 준혁이 이 계단을 지나가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준혁은 아직도 이 계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무래도 다음 누군가가 오기 전까진…, 준혁은 계속 이 계단에서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


가끔 돌아다니는 괴담 중에는 자신의 불운이나 액운을 타인에게 떠넘기는 이야기도 있다. 예를 들자면 봉투 속에 소액의 돈과 머리카락과 같은 사람의 일부를 넣어 길가에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면 돈 봉투를 주운 사람에게 원래 주인의 액운이 넘어간다는 거다.

실제로 그런 방식으로 불운이나 액운이 다른 이들에게 전달되는지는 확인할 수 없는 법이지만, 생각나는 이야기가 하나 있어 추가해 보기로 했다.


***


21.


“받으세요.”


종환이 선영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그건 화려한 포장지에 싸인 주머니였다. 은은한 빛깔의 주머니 바탕엔 화려하고 뭔가 설명하기 힘든 붉은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주머니 윗부분을 묶고 있는 끈은 오늘 선영이 입은 카디건보다 더 짙은 빨간색이었다.

선영은 종환이 내민 주머니를 보면서 어린 시절 초등학교에서 만들었던 복주머니를 떠올렸다.

물론 종환이 내민 주머니는 자기가 어린 시절 조악하게 만들었던 복주머니보다 깔끔한 모양새였다. 선영은 처음엔 남자가 만든 거라고 여겼지만 모양새가 정교한 것이 어딘가에서 사 온 것 같다고 생각을 고쳤다.


이 속에 뭐가 들어 있을까?


선영은 궁금해졌다. 주머니를 받기 전에 남자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며 살폈다. 요새는 바이러스 때문인지 여자고 남자고 주위 사람들은 죄다 마스크를 하고 다녔다. 그래서 종환의 얼굴에 어떤 감정이 서렸는지는 잘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그전에도 종환의 얼굴엔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사람이 냉정하다는 느낌은 아니었으나 무표정해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선영은 그런 종환이 항상 섭섭했다. 자신은 꾸준히 종환에게 감정을 어필했건만 종환은 선영의 그런 행동에 딱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종환은 선영이 자기 곁에 머물러도 상관없다는 태도였지만 여전히 그에게 어떤 얘기도 해주지 않았다.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말해주는 법이 없었다.


그래도 최근에는 많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종환은 선영에게 뭔가를 표현하지 않았고 그 점이 선영에겐 좀 서운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웬일일까?


오늘 종환이 선영에게 뭔가를 건넸다. 값비싼 물건은 아닌 것 같지만 처음 받아보는 선물이다. 종환이 드디어 선영의 관심에 보답을 해주는 것 같았다.


선영은 내심 기뻐했다.


“고마워요.”


선영은 종환이 내민 그 주머니를 고이 받았다. 단순히 주머니라고 생각했는데 속에 뭔가 잡히는 것이 느껴졌다.


“여기서 열어보지는 말고요.”


종환이 얘기했다. 선영은 주머니 겉 부분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파악했다.

단단한 금속 재질에 가늘고 둥그런 모양, 작은 크기. 틀림없는 반지였다. 주변에 사각거리는 것이 반지를 포장지 같은 것으로 감싼 거 같았다.


선영은 무척 기뻤다. 종환이 드디어 내 마음을 받아준 거야.


심지어 이번에 준 것은 반지였다. 종환 역시 자신과 함께하고 싶은 거라며 선영은 크게 내색은 안 했어도 속으로는 행복해했다.


그날 종환은 선영에게 다른 설명도 없이 급하게 돌아갔다. 선영은 종환이 쑥스러워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선영은 종환의 그런 행동도 좋았다. 그래서 종환과 헤어진 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주머니를 꺼냈다.


종환이 자신한테 준 선물이다.


선영은 기뻐하며 주머니의 끈을 풀었고 주머니를 기울여 속에 있는 것을 털었다.


그리고 주머니 안에서 나온 기괴한 것들을 보고 얼어붙었다.


- 왜 이런 게 여기 들어 있담?


그때 주머니 안에서 굴러떨어진 것은 낡은 반지와 그 낡은 반지를 감싸고 있던 푸석한 머리카락, 암만 봐도 부적처럼 보이는 낡은 종이 한 뭉치였다.


22.


“집 전화로 이상한 전화가 자주 온다고? 비슷한 일? 글쎄….요즘은 다들 핸드폰 쓰지 않나. 스팸이나 이상한 설문 같은 거 아니면 뭐….”

카페 안에서 후배 은정의 질문에 선배인 선아는 그렇게 대답했다. 은정의 집 전화번호가 어디서 노출이 된 건지 이상한 전화가 수시로 걸려온다는 이야기였다.


요새는 핸드폰을 쓰니까 집 전화는 덜 쓰게 된 지 꽤 오래였고, 최근에 은정의 집으로 걸려오는 전화는 의도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설문조사뿐이었다.


악질적인 장난 같은 건 아니지만 성가신 일이었고 은정은 이것이 자신의 집에만 일어나는 일인지 다른 집에도 비슷한 일이 있는지 주위 사람들한테 물어보는 중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핸드폰 생기기 전에 그런 일이 있었어.”


처음 선아는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실제로는 은정의 집에 걸려오는 이상한 전화와는 큰 관련이 없었지만, 선아가 겪은 일은 조금은 으스스하고 특이한 경험담이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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