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담 : 이야기를 전하는 자 -31-

현실의 무서움과 괴담 사이에서 (1)

by이사금

#031화 현실의 무서움과 괴담 사이에서 (1)




그건 선아가 어렸을 적 아직 핸드폰이 나오지 않아 사람들이 집 전화만 썼을 때의 일이라고 했다. 당시에도 무작위로 남의 집에 전화를 걸어 장난을 치는 인간들이 제법 있었다고 했으니 남의 집 전화번호가 유출되어 손해를 보는 일이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여튼 어린 시절 선아는 전화 받는 일로 동생이랑 자주 실랑이를 벌였다고 한다.


왠지 집으로 오는 전화를 받는 것도 다른 데 전화를 거는 것도 꺼리는 성향의 사람들이 제법 있다. 선아도 그런 부류의 사람인지도 모른다. 선아는 그때 그냥 귀찮아서 그랬다고 했지만.

하여간 집에 전화가 걸려오면 선아도 선아의 동생도 전화를 받기 싫어 떠넘기다가 결국 언니인 선아가 전화를 받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고 했다.


어느 날 전화벨이 울렸고, 그때도 동생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선아가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 걸려온 전화는 잘못 걸려온 전화, 그것도 어린아이가 잘못 건 전화였다.

바바바- 아이의 혀 짧고 귀여운 소리와 함께 옆에선 아이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성이 ‘그거 이모네 집 아니야, 잘못 걸었어’라며 아이를 타이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화는 곧 끊어졌고 딱히 잘못 걸린 전화에 대해 사과를 받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다지 불쾌하지도 않고 어찌 보면 상당히 귀여운 일화였다고.


아마 그 아이는 이모 집에 전화를 걸다가 아무 번호나 눌러서 선아의 집에 전화를 걸게 된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다음에 이어지는 선아의 일화는 좀 오싹한 종류의 이야기였다.


선아의 부모님이 집을 비운 한밤중에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도 한참 자는 시간에 전화를 걸거나 메시지를 보내면 은근 민폐라고 한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때에도 한밤중에 갑자기 걸려오는 전화라는 것은 상당히 귀찮고 짜증 나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또 집에 남은 두 자매는 전화 받는 일을 서로에게 떠밀었다고 한다. 하지만 동생은 자는 척하면서 울리는 전화벨을 무시했고, 결국 견디다 못한 선아 쪽에서 거실로 나가 전화를 받아야만 했다.


보통 한밤중에 그렇게 전화를 걸었으면 피치 못할 사정이 있거나 다급한 일이 생겼을 경우일 것이다.


하지만 선아가 받은 그 전화는 달랐다.


“여보세요?”


선아가 전화를 받자 전화기에서 들려온 소리는 소름이 끼쳤다고 한다.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야! 반드시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야! 반드시 죽여버릴 거야…!”


선아로선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당시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은 상대방을 죽여버리겠다면서 다 쉰 목소리로 악을 쓰던 의문의 남자였던 것이다.


선아는 그때 어린 마음에도 엮이면 안 되는 미친놈이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목소리를 확인하자마자 선아는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지만, 그 뒤로도 전화벨은 몇 번 더 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선아는 그 전화를 다시 받을 엄두는 내지 못했다. 다행히 남자가 포기했는지 전화는 몇 번 울리고 난 뒤에 잠잠해졌다고 한다.

아직도 생각하면, 그것이 잘못 건 전화인지 아니면 남자가 엉뚱한 집에 화풀이를 하려고 아무 전화번호나 눌렀던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그것은 선아가 겪은 일 중에서 가장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고 한다.


23.


“개나리 노란 꽃그늘 아래- 가지런히 놓여 있는 꼬까신 하나-”


그날은 해맑은 봄이었다.


노란 꽃이 수북하게 핀 따스한 봄날이었다. 샛노란 개나리꽃이 햇살처럼 빛나는 시간이었다. 그 꽃밭 사이 어딘가에서 다정한 목소리로 누군가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꽃들 사이를 걸어가던 민지는 그 노래를 알고 있었다.


민지는 아직 두 살밖에 안 된 아기였지만 그 노래를 잘 기억했다. 왜냐하면 그 노래는 평소에 민지의 어머니가 자주 불러주던 노래였기 때문이다.


민지는 노래에 이끌리듯 노란 꽃 사이를 정처 없이 걸어갔다. 아장아장 넘어지지도 않고 꽃밭 사이를 멈추지 않고 걸어갔다.


“안녕, 꼬마야?”


꽃들 사이에 누군가가 있었다. 아기는 모르는 남자 어른이었다.

민지는 그의 목소리가 아까의 목소리와 같다는 것을 느꼈기에 왠지 무섭지 않았다. 이내 꽃 사이에 숨어 있던 그가 민지에게 서서히 손을 뻗었다. 민지는 그가 부르는 노래가 좋았기 때문에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가 웃는 모습이 어린 민지의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남자와 민지와 눈이 마주치고 약간의 시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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