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삶이 힘든 이유를 현실에서 찾을 때가 있다.
예를 들면 경제적인 어려움, 건강, 인간관계 등에서 문제를 찾는다. 물론 그것들은 분명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비슷한 상황 속에서도 어떤 사람은 무너지고 어떤 사람은 성장한다.
같은 실패를 경험했는데 누군가는 좌절에 갇히고, 누군가는 그것을 발판으로 삼는다.
도대체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삶을 결정하는 것은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긍정심리학의 창시자 마틴 셀리그먼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 사람들이 경험하는 무기력의 상당 부분이 현실 때문이 아니라 현실을 해석하는 방식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시험에 떨어진 두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한 사람은 “나는 원래 능력이 없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은 “이번에는 부족했지만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어”라고 생각한다.
사건은 동일하나 관점에 따라 상황이 바뀐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언제나 현실 그 자체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해석을 경험한다.
비가 오는 날을 어떤 사람은 우울한 날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바카라을 읽기 좋은 날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감을 어떤 사람은 잃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깊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은 하나인데 삶은 여러 개가 된다.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의 능동성은 행동 이전에 관점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능동적인 삶을 이야기할 때 종종 행동을 떠올린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하고, 더 부지런해야 하고, 더 많은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이 바라보는 만큼만 행동하기 때문이다.
가능성을 보는 사람은 도전한다. 가능성이 없다고 믿는 사람은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 희망을 보는 사람은 견딘다. 끝이라고 믿는 사람은 포기한다.
결국 행동의 차이는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인간이 모든 것을 빼앗겨도 마지막까지 빼앗기지 않는 자유가 있다고 말했다.
바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자유다.
그는 극한의 수용소 환경에서도 같은 현실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누군가는 절망 속에서 무너졌고, 누군가는 그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발견했다.
그 차이는 환경이 아니라 관점이었다.
우리는 종종 삶의 주도권을 환경에 넘겨준다.
좋은 일이 생기면 행복할 수 있고, 문제가 해결되면 괜찮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삶의 방향키는 늘 외부에 있게 된다.
반면 관점을 바꾸는 사람은 다르다.
그들은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어려움을 없는 척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을 선택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삶의 주도권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다.
어쩌면 능동성이란 현실을 통제하는 능력이 아니라 현실을 해석하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이 바뀌면 같은 풍경도 달라 보인다.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현실에 부여한 의미다.
오늘 당신은 어떤 관점으로 삶을 바라보고 있는가?
지금 붙잡고 있는 문제를 혹시 이미 결론이 난 실패로 해석하고 있지는 않은지, 현재의 부족함을 한계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지, 무기력에 빠져 헤어 나올 구멍 하나 없다고 여기지는 않는지, 내 삶은 매일 똑같아라고 여겨지는 않는지
삶은 우리가 보는 만큼만 보인다.
그리고 때로는 상황이 바뀌어서 인생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관점이 바뀌어서 인생이 달라진다.
능동적인 삶은 세상을 정복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새롭게 하는 데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