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능동적이지 못한 내 모습을 바라보며

by이지

<삶의 능동성 키우기>라는 주제로 연재를 시작한 이유는 나는 그 누구보다 내 삶의 능동성을 갈망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특히 육아휴직 중인 나의 사정을 고려할 때, 하루를 주체적으로 이어나가는 느낌보다 하루라는 시간에 이끌려 보내는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요즘은 아이들이 모두 잠든 육퇴라는 시간 아무것도 할 힘이 남아있지 않다는 핑계를 두고 타인의 브이로그를 자주 본다. 부끄럽지만 그것이 연재가 밀린 이유이기도 하다.


브이로그 안에서는 아침에 일어나 정갈하게 침대를 정리하고, 커피를 내리고, 운동을 하고, 바카라을 읽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걸어가는 사람들의 하루를 본다. 영상 속 삶은 언제나 단정하고 충실해 보인다. 누군가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누군가는 꾸준히 공부를 하고, 누군가는 자신만의 루틴을 지키며 하루를 살아간다.


그런 영상을 보고 있으면 이상한 만족감이 밀려온다.


마치 내가 그들의 하루를 함께 살아낸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영상을 끄고 나면 또 다른 감정이 찾아온다.


허무함.


나는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고, 해야 할 일은 그대로 남아 있으며, 하루는 조금 더 지나가 있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생각해 보니 브이로그는 나에게 일종의 대리 경험이었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누군가의 움직임을 보며 만족감을 느꼈다. 노력하지 않았지만 누군가의 성취를 통해 잠시 충만함을 얻었다. 마치 여행 프로그램을 보며 여행한 기분을 느끼고, 요리 영상을 보며 배부름을 상상하는 것처럼 말이다.


문제는 대리 경험이 실제 경험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데 있다.

타인의 삶을 보는 동안에는 충만한 감정을 느끼다가도 현실의 내 삶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브이로그를 오래 본 날일수록 이상하게 더 공허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온라인카지노에 ‘삶의 능동성’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데, 정작 내 삶은 왜 이렇게 주체적이지 못할까.


나는 왜 자꾸 눕고 싶고, 미루고 싶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을까.


한동안은 스스로를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의지가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게으른 것이 아니라 지쳐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고, 가족을 돌보고, 내일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흔히 능동적인 삶을 말할 때 무언가를 이루고 성장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새로운 도전을 하고, 목표를 세우고, 성과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삶에는 그런 시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버텨야 하는 시기도 있다.


꿈을 향해 달리기보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건너는 것이 더 중요한 날들도 있다.


그런 시기의 능동성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


아이에게 웃어 주는 것.


설거지를 하는 것.


산바카라을 나가는 것.


하루를 기록하는 것.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사소한 일들이지만, 사실은 자신의 삶에 참여하는 행동들이다.


생각해 보면 무기력의 가장 큰 특징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에서 관객이 되어가는 것이다.


나는 살아가고 있지만 내 삶을 이끌고 있다는 느낌은 없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볼 뿐이다.


브이로그를 보며 타인의 삶에 몰입하는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내 삶의 관객이 된 사람이 타인의 삶에서는 잠시 주인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다.


내 삶의 관객석에서 다시 일어나 무대 위로 한 걸음 들어오는 것이다.


창문을 여는 것.


바카라 한 페이지를 읽는 것.


휴대폰을 내려놓고 아이와 눈을 마주치는 것.


오늘 하고 싶었던 일을 단 5분이라도 해 보는 것.


그 작은 행동들은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


하지만 나와 세상의 관계를 바꾼다.


나는 더 이상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참여하는 사람이 된다.


어쩌면 삶의 능동성은 대단한 추진력이나 강한 의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삶의 능동성은 내 삶에 다시 참여하는 힘일지 모른다.


완벽한 하루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것.


거창한 목표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선택하는 것.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는 대신 내 삶의 작은 장면 하나를 직접 만들어 보는 것.


우리는 종종 능동적인 사람이 되기를 꿈꾼다.


하지만 진짜 필요한 것은 더 열심히 사는 능력이 아니라, 내 삶으로 돌아오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타인의 하루가 아니라 우리의 하루다.


아무리 작더라도 스스로 선택한 행동 하나.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직접 살아낸 순간 하나.


삶은 그런 순간들로 조금씩 방향을 바꾼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능동성을 거창한 성취로 정의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삶의 능동성이란,


누군가의 삶을 구경하는 시간을 멈추고 다시 내 삶에 참여하는 것이다.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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