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 한 줄, 이유 한 줄, 다음 할 일 한 줄만 남겨 봅니다
안녕하세요 (꾸벅)
출근길은 괜찮으셨나요? 아침 공기가 제법 차가워졌습니다. 따뜻한 커피 한 잔 들고 자리에 앉으시면 아마 밤사이 쌓인 메일과 메시지부터 열어 보시겠죠.
오늘은 '요약'에 대해 적어 보려고 합니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그래서 한 줄로 하면 뭐예요?"라는 질문을 생각보다 자주 듣습니다. 한 시간짜리 회의가 끝난 뒤에도, 몇 번씩 답장이 오간 긴 메일을 전달할 때도, 윗분께 지금 상황을 말씀드릴 때도 결국 듣는 쪽이 원하는 건 짧은 몇 줄입니다. 그런데 막상 줄이려고 하면 어디를 남기고 어디를 버려야 할지 손이 잘 안 갑니다.
사실 요약은 제가 예전부터 붙잡고 있던 단어이기도 합니다. 일을 잘하고 싶어서 자기계발서를 찾아 읽다 보면 문해력이든 글쓰기든 보고든, 연습 방법으로 "요약하기"가 빠지지 않고 나왔습니다. 읽은 내용을 제 말로 짧게 다시 적어 보는 것만큼 읽는 힘과 생각하는 힘을 같이 길러 주는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였는데, 해 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저는 예전에 어떤 시험을 준비하면서 기본서를 다섯 번 필사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 필사할 때는 노트 두 권 분량이었는데, 다섯 번째에 이르니 10페이지도 안 되게 줄어들더라구요. 그때 좀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같은 내용을 여러 번 읽고 옮겨 적다 보니 무엇이 뼈대이고 무엇이 살인지가 조금씩 보였고, 살을 덜어 내고 남은 게 결국 요약이었습니다. 그 뒤로 일을 하면서도 긴 이야기를 줄여야 하는 순간마다 이 경험을 자주 떠올립니다.
요약을 하면 보통 글자 수를 줄이는 일로 생각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긴 문장을 짧게 바꾸고, 형용사를 지우고, 비슷한 말을 하나로 합쳤습니다. 그렇게 줄인 글은 분명 짧아졌는데, 받는 사람은 여전히 "그래서 제가 뭘 하면 되죠?"라고 다시 물어 왔습니다. 짧게 줄이기 전에 먼저 했어야 하는 일이 있었던 거죠.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결국 무엇을 알아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찾는 일입니다.
세 줄로 줄일 때 쓰는 순서
그래서 요즘은 긴 이야기를 줄일 때 세 줄을 정해 두고 그 칸을 채우는 식으로 합니다. 순서는 이렇습니다.
1) 결론 한 줄: 무엇이 정해졌는지, 혹은 무엇을 해 달라는 건지 먼저 적습니다. 듣는 사람이 이 한 줄만 읽고 창을 닫아도 일이 굴러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씁니다.
2) 이유 한 줄: 왜 그렇게 정해졌는지를 한 문장으로 붙입니다. 이유가 빠지면 결론이 갑자기 떨어진 지시처럼 읽히고, 다시 묻는 질문이 꼭 따라옵니다.
3) 다음 할 일 한 줄: 누가, 언제까지, 무엇을 하는지 적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나서 일이 흐지부지되는 건 대부분 이 줄이 비어 있을 때였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한 시간 동안 행사 준비 회의를 했다면, "다음 주 행사 장소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 기존 장소가 같은 날 다른 일정과 겹쳤습니다 / 금요일까지 새 장소 후보 두 곳을 받아 보기로 했습니다" 정도로 줄입니다. 회의에서 오간 다른 이야기들, 누가 어떤 의견을 냈고 어떤 안이 나왔다가 빠졌는지는 이 세 줄 아래에 따로 둡니다. 궁금한 사람은 아래까지 열어 보면 됩니다.
세 줄이 잘 안 나올 때는 제목부터 써 봅니다. 이 이야기를 메일 제목 한 줄로 쓴다면 뭐라고 쓸지 생각해 보는 겁니다. 제목이 안 나온다면 아직 제가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는 원문을 한 번 더 읽거나, 이야기를 한 사람에게 "제가 이해한 게 이게 맞을까요?" 하고 짧게 여쭤봅니다. 줄이는 건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았습니다.
말로 요약할 때도 비슷합니다. 예전에 독서에 대해 적어 둔 글에 "상대의 말에서 줄기를 파악하고 그 줄기를 토대로 가지를 쳐 나가듯 이야기한다"는 문장을 쓴 적이 있는데요. 윗분께 상황을 말씀드릴 때 저는 줄기에 해당하는 결론부터 꺼내고, 질문이 들어오면 그때 가지를 하나씩 붙입니다. 처음부터 가지를 다 늘어놓으면 듣는 분이 줄기를 직접 찾아야 해서, 대화가 길어지고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뒤로 밀리곤 했습니다.
같은 이야기라도 누구에게 전하느냐에 따라 세 줄의 순서는 조금씩 바뀝니다. 윗분께 드리는 요약이라면 결론 다음에 "그래서 정해 주셔야 할 것"을 한 줄 넣습니다. 바쁜 분일수록 읽고 나서 무엇을 판단하면 되는지가 바로 보여야 답도 빨리 왔습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넘기는 요약이라면 다음 할 일을 맨 위로 올립니다. 그분에게는 왜 그렇게 됐는지보다 오늘 무엇부터 손대면 되는지가 먼저 궁금할 테니까요.
그래서 요약을 쓰기 전에 저는 받는 사람 얼굴을 한 번 떠올려 봅니다. 이 사람이 이 세 줄을 읽고 나서 바로 무엇을 할지 그려지면 잘 줄인 거고, 그게 안 그려지면 다시 고칩니다. 긴 메일을 그대로 전달하면서 "아래 참고 부탁드립니다" 한 줄만 붙이는 경우도 많은데, 받는 쪽에서는 그 긴 글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합니다. 세 줄을 위에 얹어 드리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시간을 꽤 아껴 드릴 수 있었습니다.
줄이지 않고 그대로 남겨 두는 것
세 줄로 줄이는 연습을 하다 보면 반대로 줄이면 안 되는 것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는 두 가지만큼은 손대지 않으려고 합니다.
1) 숫자와 날짜, 이름입니다. "다음 주쯤"과 "다음 주 목요일"은 듣기에 비슷해도 일하는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말입니다. 요약하면서 이런 걸 뭉개면 나중에 다시 확인하는 데 시간이 더 듭니다.
2) 상대가 직접 한 중요한 말입니다. 예전에 영업을 하면서 거절의 이유보다 "어떻게 되면 되는지"를 여쭤본 적이 많았는데, 그 대답은 제 말로 요약하지 않고 하신 말 그대로 적어 두었습니다. 제 요약을 넉 달 뒤에 보면 제 생각만 남아 있더라구요.
둘 중에서 저는 두 번째를 제일 조심합니다. 요약은 결국 제 머리를 한 번 거쳐서 나오는 글이라, 제가 듣고 싶은 쪽으로 조금씩 기울어지기 쉽습니다. 그때는 분명 잘 줄였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 다시 보면 상대가 실제로 무슨 말을 했는지는 흐릿하고 제 해석만 또렷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 줄 요약 아래에는 꼭 원문을 그대로 붙여 둡니다. 메일이라면 원래 메일을 그대로 아래에 두고, 대화라면 상대가 한 말을 따옴표로 남겨 둡니다. 나중에 "이게 맞았나?" 싶을 때 바로 대조해 볼 수 있어서, 한 번 이렇게 해 두면 마음이 꽤 편해집니다.
하나 덧붙이자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이야기도 조심해야 합니다. 결론이 안 난 회의를 요약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정해진 것처럼 써 버릴 때가 있더라구요. 그래서 정해지지 않은 건 세 줄에 억지로 넣지 않고 "미정"이라고 따로 한 줄을 둡니다.
요약은 따로 시간을 내서 연습하기가 쉽지 않아서, 저는 하루를 마무리할 때 그날 있었던 일을 세 줄로 적어 보는 걸로 연습을 대신합니다. 오늘 무엇이 끝났는지, 무엇이 걸려 있는지, 내일 아침에 무엇부터 할지 정도입니다. 이렇게 적어 둔 하루치 요약이 쌓이면 일주일을 돌아볼 때도 편하고, 제가 어떤 일에서 시간을 많이 쓰는지도 보이더라구요.
요약을 잘하고 싶어서 이런저런 방법을 찾아봤는데, 결국 제게 남은 건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결론, 이유, 다음 할 일 세 칸을 정해 두고 채우되, 숫자와 상대의 말은 줄이지 않고 그대로 두는 정도입니다. 이렇게 하고 나서는 "그래서 뭐예요?"라는 질문을 받는 일이 확실히 줄었습니다.
오늘 출근해서 처음 여는 긴 메일 하나를 세 줄로 줄여 보려고 합니다. 결론, 이유, 다음 할 일 순서로 적어 두고, 그 아래에는 원래 메일을 그대로 붙여 두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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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무탈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