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분이 오늘 무엇을 정하면 되는지부터 말합니다
안녕하세요 (꾸벅)
한 주 잘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은 회사에서 매일같이 하면서도 매번 어려운 '업무 보고'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사실 보고는 제가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지적을 받았던 일이고, 그래서 가장 많이 적어 둔 주제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재밌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업무 보고 잘하는 법을 찾다가 이 글을 들어오셨다면,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보고를 잘하는 핵심은 딱 두 가지입니다.
1. 듣는 분이 오늘 무엇을 정하면 되는지를 첫 줄에 말하는 것
2. 1안, 2안, 3안을 들고 가되, 그중 하나를 내가 먼저 고르는 것
보고는 일을 다음 단계로 넘기는 자리입니다. 매주 진행 상황을 올려야 하고, 중간중간 결정을 받아야 하는 일도 생기죠. 보고가 잘 풀려야 일이 앞으로 갑니다. 반대로 보고가 길어지고 결정이 안 나면, 그 주의 일이 통째로 밀립니다.
저는 한때 보고 자료만 꼼꼼하게 준비하면 보고는 잘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숫자를 다 맞추고 슬라이드를 순서대로 넘기면 되는 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보고를 마치고 나왔는데 정작 결정된 건 하나도 없었던 날이 많았습니다. 한참 설명한 끝에 "그래서 오늘 제가 뭘 정해 드리면 돼요?"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제가 핵심을 전혀 전달하지 못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일을 잘하고 싶어서 보고에 관한 바카라과 글을 꽤 읽었는데요. 잘하는 분들의 보고에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짧았고, 첫 줄에 결론이 있었고, 본인 생각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도달한 결론이 바로 '무엇을 정하면 되는지'와 '내가 고른 안'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보고 때마다 잘된 것과 안 된 것을 적어 두기 시작했는데, 그동안 알게 된 것들을 차근차근 정리해 보겠습니다.
1. 보고 전에 빈칸 문장을 먼저 채웁니다
첫 번째로 알게 된 건 보고는 자료를 만들기 전에 할 말이 먼저 정리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보고 전에 빈칸이 있는 문장 몇 개를 먼저 채워 봅니다. 1) "오늘 정해 주셨으면 하는 건 ○○ 하나입니다." 2) "한 줄로 요약하자면 ○○입니다." 3) "지난주엔 ○○을 했고, 이번 주엔 ○○을 합니다." 4) "안 하면 ○○, 하면 ○○가 좋아집니다." 5) "제가 이걸 여쭤보는 이유는 ○○ 때문입니다." 채우다 보면 할 말이 정리되더라구요. 못 채우는 칸이 있으면 거기가 아직 준비가 덜 된 부분입니다.
결정을 받으러 가는 보고라면 첫 번째 문장을 맨 앞에 둡니다. 듣는 분은 이 한 줄로 '끝에 내가 뭘 골라야 하는구나' 하고 들을 준비를 하시거든요. 이 칸이 안 채워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땐 보고라기보다 공유에 가까운 거라서, "오늘은 공유만 드리려고요"라고 먼저 말하면 듣는 분도 편하게 들으십니다. 진행 보고는 세 번째 문장 두 줄이면 충분했습니다. 지난주에 한 일 하나, 이번 주에 할 일 하나. 결과가 아직 없을 때 특히 좋습니다. 결과가 없으면 할 말이 없는 것 같아서 오히려 길게 설명하게 되는데, 이 두 줄이면 멈춰 있지 않다는 게 바로 전해집니다.
2. 1안, 2안, 3안을 들고 가고, 하나는 내가 고릅니다
두 번째는 고르는 일을 상사에게 넘기지 않는 것입니다. 예전에 행사 장소를 정하는 보고를 한 적이 있습니다. 후보 세 곳의 장단점을 표로 정리해 갔고, 꽤 잘 만든 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디가 좋은지 물으셨을 때 저는 세 곳 모두 장단점이 있다고만 답했습니다. 그러면 본인이 다시 다 비교해야 하는 것이냐는 말이 돌아왔는데요. 그때를 생각해 보면 좀 창피하네요. 저는 일을 다 해 간 줄 알았지만, 사실 가장 어려운 일인 고르는 일을 그대로 넘기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제가 제일 지양하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상사에게 바카라임을 전가하는 자세요.)
그 뒤로는 어떤 보고든 1안, 2안, 3안을 정리해 가고, 그중 하나를 제가 먼저 고릅니다. 예를 들어 행사 장소라면 1) 회사 근처: 넓고 퇴근 후 바로 올 수 있음, 2) 경치 좋은 곳: 분위기는 좋지만 이동에 한 시간, 3) 작년 장소: 익숙하지만 인원이 늘어 좁음. 그리고 이번 행사의 목적이 참석률이니 1안으로 가겠다고 첫 문장에 씁니다. 이렇게 드리면 대부분 그 자리에서 정해 주시더라구요. 해 보면서 알게 된 것도 있습니다. 제가 고른 안을 맨 처음에 쓰고, 안마다 좋은 점 하나와 걸리는 점 하나만 적고, 이번에는 하지 않는 안도 하나 넣고, 고른 이유는 하나만 말합니다. 이유를 다섯 개씩 늘어놓으면 오히려 약해 보였습니다.
3. 있어 보이는 단어는 풀어 쓰고, 모르면 모른다고 합니다
세 번째는 보고 자료에 있어 보이는 단어가 늘어날 때를 조심하는 것입니다. 고도화, 최적화, 시너지 같은 것들인데요. "그게 구체적으로 뭐예요?" 한마디에 말이 막혔던 적이 저도 몇 번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일 있어 보이는 단어 하나를 골라 초등학생도 알게 풀어 봅니다. 고도화라면 "버튼을 세 번 누르던 걸 한 번으로 줄인다"처럼요. 풀어 쓸 수 없으면 아직 제가 이해하지 못한 단어라서, 그런 단어는 뺍니다.
그리고 보고 중에 답을 모르는 질문이 오면 모른다고 첫 줄에 말합니다. 예전에는 모른다는 말을 최대한 뒤로 미루려고 앞에 설명을 길게 붙였는데요. 일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나 봅니다. 지금은 "아직 모릅니다. 내일 오전까지 확인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언제까지 알아볼지만 붙이면 모른다는 말도 충분히 답이 됩니다. 이렇게 했을 때 오히려 대화가 제일 깔끔하게 끝났습니다.
제가 한 가지 확실하게 느낀 점이 있다고 한다면, 보고는 듣는 분이 오늘 무엇을 정하시면 되는지부터 알려 드리는 일이라는 점입니다. 자료가 세 장이어도 그 한 줄이 있으면 보고가 되고, 서른 장이어도 그 한 줄이 없으면 설명으로 끝납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1) 보고 전에 빈칸 문장부터 채우기 2) 1안, 2안, 3안 중 하나를 내가 먼저 고르기 3) 모르면 기한을 붙여 모른다고 말하기, 이 세 가지를 지켜 보려고 합니다. 다들 보고 첫 문장은 어떻게 시작하시나요? 댓글로 알려 주시면 저도 배우겠습니다.
+) 가끔은 1안, 2안, 3안을 다 드렸는데 4안은 없느냐고 물으시는 분도 계십니다. 그러면 다 마음에 안 드신다는 뜻이라, 저는 새로운 것으로 빠르게 다시 만들곤 합니다 ㅎㅎ...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일을 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겪은 일로 적는 연재, "진짜 일을 잘한다는 것" 2권이 월·수·금 아침 8시에 이어집니다. 온라인카지노북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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