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유를 늘어놓기 전에, 상대의 걱정부터 듣습니다
안녕하세요 (꾸벅)
화요일 점심은 잘 챙겨 드셨나요? 월요일을 겨우 넘기고 나면 화요일 오후가 생각보다 길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설득'에 대해 적어 보려고 합니다. 회사에서 하는 일의 꽤 많은 부분이 결국 설득입니다. 윗분께 일정을 조금 늦춰 달라고 말씀드릴 때도, 옆 팀에 일을 부탁할 때도, 고객에게 제안을 드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영업을 하다 보니 남들보다 이 일을 조금 더 자주 하는 편인데, 하면 할수록 설득은 말을 잘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저는 준비한 이유를 최대한 많이 꺼내 놓는 게 설득이라고 믿었습니다. 장점을 하나라도 더 말하면 상대가 넘어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유를 많이 말할수록 상대의 표정은 점점 굳어 갔습니다. 고개는 끄덕이는데 마지막에는 "좀 더 생각해 볼게요"로 끝나는 일이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은 제 설명을 듣는 내내, 자기가 걱정하던 이야기가 언제 나오나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걱정을 먼저 듣기
그 뒤로 순서를 바꿨습니다. 제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상대가 무엇을 걱정하는지부터 묻습니다. 사람이 무언가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때는 대부분 이유가 있습니다. 시간이 부족할까 봐, 윗선에 설명하기 어려울까 봐, 해 봤다가 일이 더 늘어날까 봐. 이 걱정이 풀리지 않은 채로는 제가 아무리 좋은 이유를 말해도 귀에 들어가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요즘은 이런 질문으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1) "이 일을 하신다면 가장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어디일까요?"
2) "전에 비슷한 걸 해 보셨을 때는 어땠어요?"
3) "이게 된다면, 어떤 모습이면 좋겠다고 생각하세요?"
첫 질문에서 걱정이 나오고, 두 번째 질문에서 그 걱정이 어디서 왔는지가 보입니다. 마지막 질문을 하면 상대가 원하는 결과를 상대의 입으로 듣게 됩니다. 이 세 가지를 듣고 나면 제가 준비해 간 이유 중에 절반은 필요 없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가 정말 궁금했던 건 그중 한두 개뿐이었습니다.
걱정을 들을 때는 바로 반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라는 말은 듣는 쪽에서는 걱정을 무시당한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대신 "그 부분이 걱정되실 수 있겠네요" 하고 한 번 받아 둡니다. 맞다고 맞장구치는 것까지는 아니고, 잘 들었다는 표시 정도입니다. 이렇게 한 번 받아 두면 상대도 굳었던 어깨를 조금 풀고 자기 이야기를 더 꺼냅니다.
예전에는 상대가 망설이면 고집이 세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걱정을 하나씩 들어 보면, 대부분은 그 사람 자리에서 당연히 할 만한 걱정이었습니다. 결정한 뒤에 바카라임을 지는 쪽은 결국 그분이니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걸 알고 나서부터는 망설이는 상대를 저와 같이 풀어야 할 고민을 가진 사람으로 보게 됐습니다. 마음이 그렇게 바뀌니 질문도 훨씬 편하게 나왔습니다.
상대의 말로 이유를 세우기
걱정을 다 들었다면 이제 제 이야기를 할 차례입니다. 이때 제가 가장 신경 쓰는 건 상대가 앞에서 했던 말을 그대로 다시 쓰는 것입니다. 상대가 "보고할 때 설명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면, 제 이유도 그 말에서 시작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위에 설명하기 쉬워야 하니까, 한 장짜리로 정리해서 드리면 어떨까요?" 이런 식입니다.
내용은 같아도 상대가 쓴 단어로 말하면 듣는 쪽에서 받아들이는 속도가 확실히 다릅니다. 사람은 남이 내놓은 결론보다 자기가 먼저 말한 걱정과 바람에서 나온 결론을 훨씬 쉽게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파스칼이 <팡세>에 남겼다는 말 중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사람은 대개 남이 찾아낸 이유보다 스스로 찾아낸 이유에 더 잘 설득된다."
처음 이 문장을 봤을 때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는데, 일을 할수록 이 말이 맞다는 걸 자주 느낍니다. 설득을 잘하는 분들을 보면 자기 이유를 밀어붙이기보다 상대가 스스로 "그럼 이렇게 하면 되겠네요"라고 말하게 만드는 데 능숙했습니다. 결론을 상대가 먼저 꺼내게 두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온 결론은 상대가 직접 정한 일이 되고, 자기가 정한 일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끝까지 챙기게 됩니다.
이걸 위해 제가 자주 쓰는 방법이 몇 가지 있습니다.
1) 선택지를 하나만 들고 가지 않습니다. 1안, 2안, 3안을 들고 가서 고르게 합니다. 하나만 들고 가면 할지 말지를 묻게 되는데, 여러 개를 들고 가면 대화가 어느 쪽이 나을지로 넘어갑니다. 고르는 순간 상대는 이미 함께 고민하는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2) 좋은 점을 먼저 말하고 본론을 꺼냅니다. 영업을 하면서 몸에 밴 습관인데, 상대가 이미 잘하고 있는 부분을 먼저 짚어 드리면 대화가 훨씬 부드럽게 흘러갑니다. 다만 그냥 하는 인사말로 들리지 않게, 실제로 좋았던 부분을 짚으려고 합니다.
3) 요청받은 것에 하나를 더 얹어서 갑니다. 상대가 걱정했던 부분을 미리 풀어 둔 자료 한 장이면 충분합니다. 내 걱정을 기억하고 준비해 왔다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마음은 꽤 많이 열립니다.
윗분을 설득할 때는 조금 더 조심스럽습니다. 일정을 늦춰야 하거나 방향을 바꾸자고 말씀드려야 할 때, 예전에는 제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부터 길게 설명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듣는 쪽에서는 제 사정을 들어 달라는 말처럼 들렸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그분이 평소에 가장 신경 쓰시는 게 무엇인지부터 떠올려 봅니다. 숫자를 먼저 보시는 분이면 숫자로, 일정이 밀리는 걸 제일 싫어하시는 분이면 일정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마감은 그대로 지키면서, 중간 확인만 한 번 줄이는 쪽으로 가 보면 어떨까요"처럼, 그분이 이미 하셨던 말을 앞에 두고 제 제안을 뒤에 붙이는 것입니다.
메일이나 메신저로 설득할 때도 순서는 같습니다. 글로 부탁할 때는 얼굴을 보지 못하니 상대의 걱정을 물어볼 기회가 적습니다. 그래서 보내기 전에 받는 사람이 이 글을 읽고 가장 먼저 무엇을 걱정할지 한 번 생각해 보고, 그 답을 첫 문단에 미리 적어 둡니다. 시간이 얼마나 드는지, 누가 무엇을 하면 되는지, 안 되면 어떻게 되는지. 이 세 가지 중 하나만 먼저 풀어 줘도 답장이 오는 속도가 꽤 달라졌습니다.
밀어붙이지 않기
한 가지 조심하는 게 있습니다. 상대가 그 자리에서 결정하지 못하면 그날은 그냥 둡니다. 예전에는 대답을 꼭 그 자리에서 받아 내야 할 것 같아서 한 번 더, 또 한 번 더 이유를 꺼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받아 낸 대답은 며칠 뒤에 다시 뒤집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등 떠밀려 한 대답이라 그분 안에서는 아직 결정이 안 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오늘 바로 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말씀하신 부분 정리해서 다시 드릴게요" 하고 일어서려고 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정리해서 다시 보내 드립니다. 이때 정리한 내용도 상대가 했던 말 순서대로 적습니다. 그러면 다시 읽는 분도 자기가 했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결론까지 가게 됩니다.
해 보니 설득은 제가 말을 많이 할수록 오히려 멀어지는 일이었습니다. 상대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먼저 듣고, 그 걱정을 상대의 말 그대로 받아 두고, 그 말 위에 이유를 하나씩 쌓아서, 마지막 결론은 상대가 꺼내게 두는 것. 그렇게 하고 나서부터는 "좀 더 생각해 볼게요"라는 말을 듣는 일이 확실히 줄었습니다.
오늘 오후에 누군가에게 부탁할 일이 있다면, 준비한 이유를 꺼내기 전에 한 번만 먼저 물어보려고 합니다. "이 일에서 가장 마음에 걸리시는 게 뭘까요?" 그 대답 안에 제가 해야 할 말이 거의 다 들어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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