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가 편할 수 있는 보고 방법

저는 보고할 때 늘 1안, 2안, 3안을 들고 갑니다

by김도경 dkkim

상사에게 보고를 마치고 나왔는데, 정작 결정된 건 하나도 없었던 적이 있으신가요? 그러면 한숨부터 나옵니다. 아, 이거 빨리 결정돼야 하는데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먼저 들고는 하죠. 저는 예전에 거의 매번 그랬습니다. 돌아보니 제 보고 습관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이건 분명히 고칠 수 있는 것이라서, 비슷한 경험이 있으시다면 참고가 되셨으면 합니다.


1.

열심히 조사해서 보고에 들어갔습니다. 상황과 문제, 그리고 고민한 내용을 빠짐없이 설명했습니다. 제 딴에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보고가 끝날 때마다 돌아오는 질문은 늘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그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습니다. 결정은 윗분이 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카라임을 상사에게 떠넘기는 태도였습니다. (지금의 저는 이런 태도가 정말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면 이런 점이 좋고, 그래서 제 생각은 이쪽이다. 이 한 줄이 필요했습니다. 주인의식이라는 게 이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한번은 행사 장소를 정하는 보고였습니다. 후보 세 곳을 찾아 장단점을 표로 정리해 갔고, 꽤 잘 만든 표라고 생각했습니다. 팀장님은 표를 한참 보시더니 결국 어디가 좋은지 물으셨고, 저는 세 곳 모두 장단점이 있다고만 답했습니다. 그러자 팀장님은 그러면 본인이 다시 다 비교해야 하는 것이냐고 되물으셨습니다. 그때 당시를 생각해 보면 좀 창피하네요.

저는 일을 다 해 간 줄 알았지만, 사실 가장 어려운 일인 고르는 일을 팀장님께 그대로 넘기고 있었습니다.

바카라임을 전가하는 것이죠. (지금의 제가 제일 지양하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상사에게 바카라임을 전가하는 자세요.)


2.

그 뒤로 보고하는 방식을 바꿨습니다. 요즘은 어떤 보고든 1안, 2안, 3안을 정리해 가고, 그중 하나를 제가 먼저 고르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행사 장소라면 이렇게 정리합니다. 1) 회사 근처: 넓고 퇴근 후 바로 올 수 있음, 2) 경치 좋은 곳: 분위기는 가장 좋지만 이동에 1시간, 3) 작년 장소: 익숙하지만 인원이 늘어 좁음. 그리고 이번 행사의 목적이 참석률이니 1안으로 가겠다고 첫 문장에 씁니다. 이렇게 드리면 팀장님은 대부분 그 자리에서 정하십니다. 1안으로 바로 가거나, 2안의 이동 시간을 줄일 방법이 없는지 하나만 물어보시는 식입니다. 어느 쪽이든 회의는 훨씬 짧아졌습니다.


첫째, 제가 고른 안을 맨 처음에 씁니다. 1안부터 차례로 설명하면 듣는 분은 끝까지 들어야 결론을 알 수 있습니다. 결론을 먼저 들으면 나머지는 그 이유를 확인하면서 듣게 됩니다.

둘째, 안마다 한 줄씩만 씁니다. 좋은 점 하나와 걸리는 점 하나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길어지면 다시 비교표가 되고, 한 줄로 줄여지지 않는다면 아직 그 안을 제가 잘 모른다는 뜻이었습니다.

셋째, 하지 않는 안도 하나 넣습니다. 이번에는 하지 않고 다음 분기로 미루는 안을 함께 두면, 왜 지금 해야 하는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 안이 골라지는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

넷째, 고른 이유는 하나만 말합니다. 이유를 다섯 개씩 늘어놓으면 오히려 약해 보입니다. 이번 일의 목적 하나에 맞춰 한 줄로 말하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3.

처음에는 제가 먼저 고르는 것이 건방져 보일까 걱정했습니다. 막상 해 보니 반대였습니다.

윗분들은 먼저 골라 오는 사람을 더 편하게 여기셨습니다.

틀렸다면 틀렸다고 말해 주시면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펼쳐 놓고 어떻게 할지 묻는 쪽이 오히려 일을 더 얹어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보고서를 쓰다가 막히면 빈 종이에 1안, 2안, 3안부터 적어 봅니다. 세 줄이 써지지 않으면 아직 보고할 때가 아니라는 신호로 받아들입니다. (생각보다 자주 막힙니다) 혹시 내일 보고가 있으시다면, 첫 줄에 내가 고른 안부터 적어 보세요. 회의가 꽤 빨리 끝날 겁니다. +) 가끔은 1안, 2안, 3안을 모두 드렸는데 4안은 없느냐고 물으시는 분도 계십니다. 그러면 다 맘에 안 드신다는 뜻이니까 저는 새로운 것으로 빠르게 만들곤 합니다 ㅎㅎ...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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